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하기 16.
나는 더 강해져야 했고,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아이에게 '불쌍한' 싱글맘이 아니라 '성공한' 싱글맘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이혼'이라는 것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세상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준비 중이던 '창업'이란 것이 내게 처음에는 단순히 '나의 일'에 대한 열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혼이라는 인생의 폭풍을 겪으면서 그것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도 끝내 이루어야 할 삶의 목표'가 되었다. 아니, '내 인생'이 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두 시간 간격으로 모유수유를 하면서 밤새 창업 제안서를 썼고,
갓난쟁이를 최대한 남편과 양가 부모님들께 맡기고 일을 했으며,
회사에 복직을 한 후에도, 집을 나와 친정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도 잠을 줄여가며, 그 와중에 몹쓸 '이혼'이란 놈까지 진행하면서도 짬짬이 창업을 준비했다.
창업에 미쳐있던 내가 기존 '피고용인' 마인드를 벗어나 '사업가'로 변태 하고자, 쉽게 말해서 '정신개조'를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다독(多讀)이었다. 나는 성공한 사업가들의 추천 필독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것들은 대부분 인문학, 철학 분야의 고전이었다. 인생에 대한 통찰과 삶의 지혜로 넘쳐나는 그 책들을 읽으며 나는 그것들의 정수를 체화함으로써 나라는 인간을 지배하는 소프트웨어와 나아가 나의 삶 전반을 개조하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늘 실패했다. 그 고결하고 숭고한 선인들은 내가 도저히, 어떠한 노력을 해도 도무지 해낼 수 없는 것을 번번이 가르쳤다.
"가정을 다스림은 나라를 다스림의 근본이다." - 공자, '대학'
"가정의 화목은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다." - 홍자성, '채근담'
"가정의 불화는 개인의 비극을 초래한다." - 셰익스피어, '햄릿'
"가정의 조화는 개인의 행복과 안정을 가져온다." -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가정의 조화와 질서는 국가의 조화와 질서의 반영이다." - 플라톤, '국가'
"가정은 사랑과 덕이 실천되는 첫 번째 학교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가정의 화목은 천하의 평화로 이어진다." - 장자, '장자'
"가정교육은 인간 형성의 기초이며, 사회의 근간을 이룬다." - 루소, '에밀'
"가정은 개인이 사회와 연결되는 첫 번째 공동체이다." - 헤겔, '법철학'
"가정 내에서의 도덕적 행위는 인간의 도덕적 성숙을 이끈다." - 칸트, '실천 이성 비판'
"가정의 화목은 학문의 시작이며, 인격 수양의 기초이다." - 율곡 이이, '격몽요결'
"가정을 다스림은 목민관의 첫 번째 임무이다." -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
이런 학창 시절 도덕책에서나 봤을 상투적인 문구들이 득도의 길로 달려가는 나의 발목을 자꾸만 잡아챘다.
'자네, 가정을 파탄 내놓고 무엇을 배워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라며 하나같이 나를 힐난했다. 정확하게 내가 받은 느낌을 설명하자면, 그들의 가르침은 심히 고상하기 이를 데 없어 나 같은 가정 파탄범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기는커녕 내가 옆에서 바라볼만한 곁조차 내어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배우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 오너라.'
라며, 소소한 깨달음이라도 얻고자 자신들을 졸졸 좇는 추종자를 문하생으로 들이기는커녕 시종으로도 취급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배움터에서 매양 내쳐졌다. 나는 지혜와 진리에 다가가려고 노력할수록 배척당했고, 그로 인해 괴로웠다. 하지만 그러한 배척의 괴로움이 나의 지난 결혼생활과는 비할 바 없이 가벼웠기에, 나는 옛 현자들의 멸시에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문하생이 될 수 없다면 도둑이 되어서라도 배우리라 이를 악물었다. 당신들이 아무리 내게 가정부터 먼저 다스리고 다시 오라 재차 내쳐도 나는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나는 그토록 이혼에 진심이었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 사업가 일론 머스크는 이혼을 세 번이나 했어, 이거 왜 이래. 두 번 이혼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까지 했고. 화목한 가정일랑 고매한 당신들이나 많이 하쇼."
나는 위대한 삶의 스승들 앞에 침을 탁 뱉고 돌아섰다.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한 사람이 자신의 굳은 결심을 180도 바꾸기까지, 손가락을 '탁' 튕기는 시간으로 충분하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나와는 성격도 취향도 달랐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모르게 서로 잘 통하는 구석이 있었고 무엇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기에 고교 3년 내내 함께 하교를 하며 더 친해졌다. 당시만 해도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로 대학을 가는 여학생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에, 우리는 서울에서 재회하여 대학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며 종종 보던 세월만 20년 가까이 되었다.
내가 이혼 난리통 시점에 준비하고 있던 창업은 그 친구를 공동창업자로 두고 진행하고 있었다. 몇 개월 차이로 결혼한 우리는 우연찮게도 신혼집을 지척에 얻게 되어 자연스레 서로 더욱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당시 창업 준비로 혈안이 되어 있었던 나와 야망 있는 백수였던 그 친구와의 만남에서 주요 화두는 단연 나의 창업 아이템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 혼자 창업을 준비하다 보니 너무나 막막하여, 나는 그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고 친구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잡지식을 던져주는 패턴이었던 것이, 시간이 흘러 내가 창업 공모전이나 정부지원 사업에 몇 차례 선정이 되는 것을 본 친구는 '뭔가 될 것 같다'며 어느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저 '도움을 준' 그 친구를 공동창업자로 삼고, 그녀와 신박한 사업을 멋들어지게 성공시킬 꿈에 부풀어 있었다. '20년 지기 절친과의 스타트업 성공기'. 나는 우리와 미래의 우리 회사 보도자료의 타이틀을 이렇게 일기장에 적어두기도 했다. 이렇게 20년 지기이자 서로의 첫 사업체를 평생 함께 키워가자며 꿈과 비전을 공유하던 공동창업자는 나에게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행복한 가정보다 내 사업의 성공이 더 중요했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자 남편 대신 내 옆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그 친구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토록 고대하던 시드 투자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와 나는 사업 상 별 중요치도 않은 어떤 아이디어를 두고 그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의견을 주고받다 이내 티격태격하기에 이르렀다. 단지 서로가 서로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고 비즈니스 관련 주제인지라 서로가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 자체에도 간극이 있어 대화가 앞으로 나가지도 끝을 맺지도 못한 채, 각자 주장을 내세우고 상대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며 그 자리를 맴맴 돌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덤덤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핸드폰 너머의 친구는 점차 빠르게 감정이 고조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그녀는 일순간 부아가 치밀었는지 답답함과 어이없음에 대한 감정적 표현을 넘어 별안간 내가 세상을 살며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무시와 경멸, 그리고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게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나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 별 것도 아닌 일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닥치는 대로 말을 내뱉을 수 있는지 실로 경악했다. 그것도 남편보다도 의지하고 남편 이상으로 신뢰하던 나의 20년 절친이자 사업 동반자가 말이다. 내게 있어 그녀는 평생을 나와 함께 할 사람이었다. 나는 말문이 탁 막혔다. 난데없는 맹공에 반쯤 얼이 빠져 그녀의 감정쓰레기에 불과한 말들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절대로,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결코 바뀔 것 같지 않았던 나의 결심과 생각이 급격히 요동쳤다. 동시에 아무리 격한 부부싸움에도 꾸벅꾸벅 졸면서 무논리 대꾸로 일관하기는 했어도 끝까지 나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남편이 떠올랐다. 내 진정한 영혼의 단짝인 줄로 여겼던 그 친구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나의 영혼까지 난도질하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고, 내가 내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고 내 인생을 망쳐놓은 나쁜 놈이라 이를 갈던 나의 남편은 정작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 아이를 보지 못하는 고통까지도 안겨준 나에게 그때까지도 상처 주는 말 한마디 한 적 없이 내가 그에게 자행하는 영혼의 난도질을 그저 말없이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불현듯 내가 존경하던 김승호 회장의 '돈의 속성'이란 책의 한 글귀가 탁 떠올랐다.
'진정한 친구는 두 명도 많고, 가족의 지지가 모든 것의 기초다.'
나는 내 가족인 남편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자체를 쥐 발톱의 세균만치 하찮게 여기는 친구와 내 인생을 건 사업을 함께 시작하고, 평생을 함께 하려 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러움을 넘어 한스럽기까지 했다.
결국, 그 순간 그렇게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내 마음은 '남편과의 재결합 시도'로 휙하니 돌아섰다. 그것은 MCU(Marvel Cinematic Univers,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타노스가 건틀렛을 낀 손가락을 탁 튕길 만큼의 짧은 순간이었고, 손가락을 튕긴 후의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였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튕겨 내 정신을 돌려놓은 타노스는 다름 아닌 나의 20년 지기였다. 손가락 튕기는 소리에 정신이 든 나는 비로소 그간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왔던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힘들었던 나의 지옥 체험 같은 이혼 과정 내내,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지금 어떻게 되어가는지, 내가 괜찮은지 물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당시 우리는 하루에도 수 만개의 대화와 수 십번의 통화를 하곤 했었는데도 말이다.
그날 그녀는 내게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은인이 되었다. 어떤 친구도 가족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지고지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었다. 위대한 옛 현인들도 해내지 못한 그 일을 무척이나 쉽게 해낸 그녀를 과연 내 인생의 은인이라 칭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날로 더 이상 나의 친구는 아니다.
친구에서 은인으로. 나의 구(舊) 친구 현(現) 은인인 그녀는 아마도 오랫동안 나에게 감사와 경멸이라는 양가감정을 줄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나 아이러니하지만, 결국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