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의 작별을 앞두고

by 사고 뭉치

나에게 여름은 다양한 소리로 기억되는 계절이다. 여름이라고 했을 때 단연 그 소리의 대표주자인 매미를 빼놓고 얘기 할 수 없을 것이다. 낮과 밤의 시차를 두고 매미의 대항마로 귀뚜라미와 펼치는 소리의 공방전이 뜨겁기만 하다. 여름도 그 절정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신호. 여름은 이젠 가을에게 슬쩍 자리를 넘겨줄 채비를 마친 셈이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더위도 잊을만큼 마냥 신났던 시절로 데려다 주는 마법을 부리곤 한다. 어린 한 때, 할머니와 잠시 보내던 시골의 여름은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던 서민들에게 그나마 숨통을 트게 해주었다. 특히 나 같은 꼬맹이에게는 냇가에 벌거벗고 놀기에 둘도 없는 좋은 계절로 남아 있다. 그 행복했던 순간은 여름 방학이란 멋진 이벤트가 그야말로 살맛나는 무대의 대미를 장식해 주었다.


‘탐구 생활’로 대표되는 6년 동안의 초등학교 여름 방학 과제는 제 시간에 마무리 해본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방학은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던지. 개학을 코앞에 둔 일주일의 기억이란 졸린 눈을 비비가며 후회하던 경험을 6번씩이나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 때가 되면 신기하게도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고, 그 나지막한 울음이 나의 다급한 동심을 잠시나마 어루만져 주었다.

그 당시 여름을 대표하는 다른 소리로는, 삼륜차가 빗길 위를 스쳐가던 소리, 그 빗방울이 넓은 연잎에 탁탁하며 떨어지던 소리, 청개구리가 놀라 그 옆 논두렁으로 퐁당하며 들어가던 소리, 어쩌다가 구입한 시원한 ‘오란씨’라는 음료의 병뚜껑 따던 소리, 선풍기 날개가 달달거리며 힘겹게 돌아가던 소리......


할머니가 종이부채로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밤새 바람을 일으키며 클레멘타인 노래를 흥얼거리던 소리, 으슥한 밤에 우물가에서 연달아 몸에 물을 끼얹던 소리, 귀찮은 모기가 귓전에서 연신 앵앵거리던 소리, 장마가 기승을 부리다가 잠시 짬이 생기면 소독차가 굉음을 내며 동네를 이리저리 휘젓던 소리, 그 뒤를 좋아라하며 구름 속 같은 소독약을 헤집고 따라가며 재잘대던 소리, 마당에서 다들 둘러앉아 쳐다보던 수박이 시원스레 “쩍”하며 반으로 갈라지던 소리, 이토록 추억 속의 여름은 귀를 쟁쟁거리며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 추억의 흐름이었다.


새벽녘에 글을 쓰려고 창문을 열다보니 더운 기운을 몰아낸 귀뚜라미의 잔잔한 멜로디가 귓전에 다가온다. 동이 서서히 트면서 동네 이곳저곳에서 마치 ‘나 아직 죽지 않았어.’하듯이 매미가 우렁차게 맴맴거리며 등장한다. 하지만 매미 소리가 한 풀 꺾인 느낌이다, 새벽 공기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하늘색도 깊어지고 있다. 올해도 매미와 서서히 이별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열심히 활동하는 여름의 전령사를 보내주려니 왠지 매미의 일생이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몇 주일도 못사는 생을 위해서 흙 속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17년이나 머문다는 사실이 극적이기 까지 하다. 무려 50여 년 전 나와 함께했던 지금 매미 조상들의 여름도 역시 그랬다. 그 짧은 기간 짝을 구하기 위해 수컷들은 그토록 애타게 울어 댔던 것이다. 짝짓기와 산란이 끝나면 여름의 끝과 함께 매미의 생은 막을 내린다. 90%는 어둠 속에서 준비하고, 단지 10%만 빛과 소리를 누리는 삶이다. 그러나 그 10%는 누구보다도 뜨겁고 강렬하다. 그래서 매미는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동시에 순간을 불태우는 존재로도 기억된다.


이젠 그 시원한 냇가에 몸을 담글 처지도 못되고, 올해는 어찌하다 보니 수박 한 덩어리 사 먹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처럼 귓가를 맴돌던 지금의 매미 울음은 내년 여름에도 또 다시 찾아올 것이란 메시지만을 남긴 채 일생을 마무리 중이다. 별다른 것 같지 않은 시원섭섭한 중년의 여름도 이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잦아드는 매미 소리와 함께 여름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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