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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Dec 08. 2024

나는 왜 늘 남을 먼저 생각했을까?

나는 늘 남을 위해 살아왔다아니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조금 더 자라서는 친구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결혼 후에는 남편의 다정한 아내로그리고 아이들에게는 헌신적인 엄마로 살아왔다나라는 사람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누군가가 내게 너 덕분에 행복해라고 말해줄 때라고 믿었다

 그런데점점 이상했다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웃는데나는 왠지 웃고 싶지 않았다한숨이 늘고사소한 말에도 짜증이 났다내가 그렇게 바라는 그들의 행복이 왜 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걸까

 어느 날아침 식사를 준비하다 말고 갑자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손에 들고 있던 프라이팬은 불 위에 놓인 채로 달궈지고 있었지만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그 순간내 안에서 터져 나온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늘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지?”*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게 당연했다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던 작은 존재들이었으니까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밥을 차려 먹고옷을 입고하루를 살아갈 줄 안다남편 역시 마찬가지다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그들의 삶이 내 책임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그 질문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나는 정말로 그들만을 위해 살아왔던 걸까아니었다사실 나는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모습을 충족시키며 안심하려 했던 것 같다나를 필요로 하는 그들의 모습이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해줬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그런 삶이 얼마나 허약한지그리고 얼마나 나를 소진시키는지나를 잃어버린 채로 타인의 기대만 좇아서는 끝내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시장에서 우연히 화구 세트를 발견했다어릴 적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나이를 먹으면서 그림은 일상에서 멀어져 있었다그 화구를 바라보며 이게 나를 찾을 실마리가 될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화구 세트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작은 종이를 펼치고 선 하나를 그었다한참을 고민하다가 삐뚤삐뚤 그려진 선은 어색했지만 묘하게 나를 끌어당겼다선 하나가 또 다른 선을 불러왔고점점 그림은 형태를 갖췄다완벽하지 않았지만그 속에는 지금의 내가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나를 찾는 길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사소한 행동 하나로도다시 내 안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 이후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아주 작은 변화였다차 한 잔을 홀로 마시는 10혼자 산책을 나서는 30그 시간 동안나는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오늘 내 기분은 어땠지?” 

 그 작은 질문들이 모여나를 다시 찾는 여정이 시작됐다내가 무엇을 좋아하고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알게 되면서 삶의 중심이 조금씩 로 이동했다

 지금도 여전히 가족을 위해 아침을 차리고집안일을 한다하지만 이제는 다르다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나를 잃지 않고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그러니 당신도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나는 왜 늘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할까?”* 그 질문이 당신을 새로운 길로 이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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