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남을 위해 살아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친구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결혼 후에는 남편의 다정한 아내로,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헌신적인 엄마로 살아왔다. 나라는 사람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누군가가 내게 “너 덕분에 행복해”라고 말해줄 때라고 믿었다.
그런데, 점점 이상했다.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웃는데, 나는 왠지 웃고 싶지 않았다. 한숨이 늘고, 사소한 말에도 짜증이 났다. 내가 그렇게 바라는 ‘그들’의 행복이 왜 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걸까?
어느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 말고 갑자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프라이팬은 불 위에 놓인 채로 달궈지고 있었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터져 나온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늘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지?”*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게 당연했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던 작은 존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밥을 차려 먹고, 옷을 입고, 하루를 살아갈 줄 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그들의 삶이 내 책임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그 질문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정말로 ‘그들’만을 위해 살아왔던 걸까? 아니었다. 사실 나는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모습을 충족시키며 안심하려 했던 것 같다. 나를 필요로 하는 그들의 모습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게 해줬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삶이 얼마나 허약한지, 그리고 얼마나 나를 소진시키는지. 나를 잃어버린 채로 타인의 기대만 좇아서는 끝내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우연히 화구 세트를 발견했다. 어릴 적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림은 일상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 화구를 바라보며 ‘이게 나를 찾을 실마리가 될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화구 세트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작은 종이를 펼치고 선 하나를 그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삐뚤삐뚤 그려진 선은 어색했지만 묘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선 하나가 또 다른 선을 불러왔고, 점점 그림은 형태를 갖췄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지금의 내가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나를 찾는 길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사소한 행동 하나로도, 다시 내 안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 이후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아주 작은 변화였다. 차 한 잔을 홀로 마시는 10분, 혼자 산책을 나서는 30분. 그 시간 동안, 나는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오늘 내 기분은 어땠지?”
그 작은 질문들이 모여, 나를 다시 찾는 여정이 시작됐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알게 되면서 삶의 중심이 조금씩 ‘나’로 이동했다.
지금도 여전히 가족을 위해 아침을 차리고, 집안일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나를 잃지 않고도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니 당신도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나는 왜 늘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할까?”* 그 질문이 당신을 새로운 길로 이끌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