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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리 Jul 21. 2022

영화 <색, 계>를 보다

최근에 본 영화의 공통점

*스포로 점철된 리뷰입니다.


 헤어질 결심, 화양연화, 색, 계를 연이어 봤다. 아마 헤어질 결심에 푹 빠진 사람이라면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화양연화와 탕웨이가 출연했던 색, 계를 연이어 볼 확률이 높다. 그중 <색, 계>는 야해서 유명했던 영화다. 영화관에 상영될 당시 성인이었지만 볼 생각을 안 했다. 베드신이 여성 배우만 상품화시킨다는 생각과 여배우를 검색하면 베드신이나 19금 단어가 자동 검색어로 뜨는 일이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초반 장면. 우산 같이 쓰는 일이 이렇게 로맨틱한 일이냐고요.


 막상 본 색계는 야한 장면보다 두 배우가 서로를 보던 눈빛과 대사만 남는다. 주인공인 왕자즈(탕웨이)는 전쟁 당시 홀로 남겨진다. 가족이 있는 영국으로 불러주기를 기다리지만 아버지는 재혼을 한다. 연극부 선배 광위민을 좋아해서 극단에 가입도 한다. 단짝 친구도 선배를 좋아해서인지 왕자즈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 선배도 마찬가지.

 애국심을 전하기 위해 연극을 성공리에 상영한 후 돈을 모으기보다 실제로 일을 치르기를 원한 광위민은 남은 이들을 선동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친일파 매국노 을사오적 민족반역자인 남자(양조위)를 처단하자고 목소리를 낸다. 마침내 모두가 연극 동아리 전체가 '극'을 꾸민다. 지금으로 치면 20대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연극집단이 이완용을 죽이려고 암살단을 조직한 상황이다.

 연기를 가장 잘했던 왕자즈는 탕부인으로 둔갑해서 부부에게 접근한다. 유난히 경계심 강하고 아내에게 보석도 돌이라 말하던 남자(양조위)는 틈이 보이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분명 끌렸다. 둘은 데이트도 한다. 관계가 진전되자 왕자즈는 정부가 되기 위해 성경험도 억지로 만든다. 마음에도 없는, 창녀와 잔 경험이 있는 연극부원과 잠자리 연습을 한다. 보기만 해도 괴로웠다. 왕자즈 눈빛이 변해간다. 어이없는 건 이때 이(양조위)가 떠난다. 이 모든 과정을 애국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고, 희생과 비극이라고만 여겨졌다. 왕자즈는 극단에서 뛰쳐나온다.

자연스럽게 허리에 손을 얹는 둘을 보며 묘한 마음을 느꼈다.  


 몇 년 뒤 다시 왕자즈는 광위민을 다시 만나게 되고 탕 부인으로 다시 극을 시작한다. 영화 제목처럼 색, 계가 섞인다. 이때부터 왜 야하다고 하는지 알겠는 장면도 나오기 시작한다. 방에서 에어팟으로 보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남녀관계에서 육체를 섞는 일이 이전보다 가벼이 여겨지는 세상이지만, 실상 성관계는 생각보다 남녀를 지독하게 엮는다. 왕자즈는 이와 밤을 가진 뒤 의뢰한 우영감과 광위민에게 말한다.

 그가 연기라면 몇 수 위라고, 안을 때면 마치 뱀처럼 파고든다며.. 사로잡히는 건 내가 되고 말 거라고, 두렵다고, 마침내 그 사람이 내 심장에 들어오는 순간 내내 구경만 하고 있던 당신들이 뛰어들어와서 그 사람의 머리를 쏴버리는 상상을 한다고... 그녀가 빨리 그를 죽여달라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빼앗긴 무기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유로 극이 길어진다.




 만남이 이어지고 이는 왕자즈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한다.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반지를 낀 당신이 보고 싶었다는 명대사를 날리면서 말이다. 이때 눈빛이 흔들리는 왕자즈는 반지를 끼면 거리에서 도둑맞으면 어떡하냐고 묻는다. 이는 내가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에게 피하라고 속삭인다. 지켜준다고 말했던 남자는 대사가 무색하게 싱크홀에 말려들어가는 물처럼 몹시 재빠르게 세워둔 차로 뛰어들어간다. 그녀와 반지는 장면 그대로 남는다. 왕자즈는 핑크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에 낀 채로 거리를 방황했고 탈출로는 봉쇄된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여고생 3명이 하는 대화를 엿들었다. 담담한 어조로 너는 육체적 대화가 중요해 아니면 대화만 하는 관계가 좋아?라고 서로 묻고 답했다. 귀가 쫑긋했다. 막상 교제를 시작하면 몸으로 하는 대화가 하고 싶어 지는 게 순리라고 여기는 30대 여성이지만, 건전한 대화가 훨씬 중요하다고 하는 그들이 이해는 갔다.


 사실 몸이 섞이면 감정은 효모가 들어간 밀가루처럼 부푼다. 실제로 좋아하는  이상보다 마음이 깊어졌다고 착각한다. 착각이 아닐 수도 있다. 몸도 감정을 기억을 하니까. 그럼에도 몸으로 하는 대화가 전부가 아녔음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알았다. 왕자즈이와 나눈 육체의 대화도 무거운 다이아몬드 때문에 말한 게 아니다. 그가 보낸 눈빛과 문장이 그녀를 흔들었다. 비록 지켜준다는 말을 끝으로 개같이 빠르게 달려 나갔지만 말이다. (거친 표현을 그대로 두는 이유는 영화를   24시간이 지나지 않았고, 원래도 거칠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가장 허무했던 순간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3편 이어 봤고. 본의 아니게 모두 불륜이 소재로 들어갔다. 물론 <색, 계>가 가장 맵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지간히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결혼은 안 하는 편이 낫다. 사랑하는 척 결혼하지 말고 사랑해서 결혼하기로. 몸을 섞는 일만큼이나 눈이 마주치는 일도 마음을 요동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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