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백수는 플랜 B가 없다 (1)

엄마, 나 조금만 더 기다려줄 수 있어?

by 김제리

"한국인들은 잠깐 쉬면 큰일 나는 줄 알아. 일 안 하면 자기가 개쓰레기라고 생각한다니까?"


늦잠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찝찝하다는 말에 그녀가 무심한 말투로 답했다. 마치 저건 수박이고 저건 참외지,라고 말하는 듯한 담담한 말투가 힘내라는 말보다 위로가 됐다.


4대 보험도 안 내고 출퇴근도 안 한다. 상사는 딴 동네 아저씨가 되었다. 눈 대신 그의 미간을 보던 시간이 무색해졌다. 퇴사를 한 지 1년, 놀고먹은 지는 반년이 되었다. 9급 공무원 공부를 봤고, 떨어졌다. 이모티콘도 그려보고, 글쓰기도 배워보고, 서울출판예비학교도 도전했다. 중간중간 아파서 쉬고 안 돼서 방황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5월이 되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지만 이 정도로 안 풀려도 되나? 인생 망했다. 싶다가도 철야예배를 다녀오고 나서는 그래, 내 인생 끝이 아니지. 싶다가도 자책한다. 무한반복.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공황장애가 다시 재발하면 어떡하지? 1년이 넘는 공백에 뭐 했냐고 물으면 공무원 시험 준비했는데 떨어졌다고 하면 마이너스일까. 이전 직장처럼 사람을 견디지 못해서 퇴사하면 내 인생은 실패일까... 염려가 뱀처럼 가늘고 길게, 몸을 둘러싸 똬리를 튼다.


둘 중 하나다.


"나, 결혼해. " or "결혼하고 싶어!!!" 혹은

"연봉이 생각만큼 안 올라서 (이직) 고민 중이야." or "내가 웃기는 거 얘기해 줄까? 직장에서....! "


웃기는 거 얘기해 준다고 말한 친구는 보통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이처럼 우리가 결혼과 직장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주로 소망을 말하거나 듣는 편이다. 왜냐하면 모아둔 돈은 다 썼고, 남자는 없으며, 직장을 어떻게 구해야 할 지도 막막한 백수이기 때문이다.


친구 회사 점심시간에 찾아가 먹고 터벅터벅 걷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60대 중년 여성의 입가에 주름이 움직였다.


" 방금 놀다 와서 싱글벙글 웃어도 모자랄 판에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야. 별거 아니야. "


“찹쌀떡 사 왔어. 하나 먹어”


“알겠어…”


초록 접시에 떡 하나를 담아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윈도우의 파랗고 푸른 화면이 켜지기도 전에 코부터 눈까지 뜻뜨미지근한 기운이 부풀어 올랐다. 눈가 맺힌 눈물은 두 갈래 세 갈래로 흘렀다. 울면서 사람인사이트를 뒤적거렸다.


소리 죽여 울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뭐 해, 너 우는 거야 설마?”


엄마는 내가 우는 모습을 싫어한다. 네 친할머니를 닮아 눈물이 많다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항상 핀잔을 주곤 했는데, 33년째 자주 우는 딸은 이제 개의치 않고 운다.


“문 닫아줘, 맞아 나 울어. ”


“왜 울어, 너만 취업 못해서 그래? 친구랑 무슨 일 있었어? 운다고 달라져??”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취업 못해서 마음이 쪼그라든 건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는 생산자인 동시에 관리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신의 T.. 위로보다는 질문이 먼저였다.


“나도 아는데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 문 닫아줘. “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기왕 들킨 거 숨길 거 없다 싶었다. 남은 눈물과 콧물을 훌쩍이며 찹쌀떡을 먹으며 울고 있었는데, 엄마가 나타났다.


“네가 돈이 없어서 그래. 이번만 주는 거니까 그냥 써.”


60대 중년 여성, 아마 서울시 관악구에서 가장 씩씩할 엄마의 손에는 5만 원권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돈이 생겼다고 눈물이 바로 그치지는 않았다. 한참을 울면서 찹쌀떡을 먹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나서야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이 날의 기억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출근길 벚꽃 명소 : 2호선 신림에서 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