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벚꽃 명소 : 2호선 신림에서 대림

꽃은 가까이, 사람은 멀리 하고 싶은 출근길에 쓰는 글

by 김제리



신대방 방향으로 학교를 다니더니 출근까지 이어집니다. 대림부터 신림역 사이에는 브로콜리 머리처럼 빡빡한 나무들이 빛납니다. 벚꽃축제를 갈 필요가 없다고 여길 정도로 장관이에요. 감상에 젖어 세 정거장 정도 지나면 당산역을 지나칩니다.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엷은 분홍색 덤불이 보입니다. 손톱만 한 광경을 보며 감상에 젖습니다. 이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회사는 어디에 있든 멉니다. 예. 마음의 거리를 말해보았습니다. 시름을 잊고자 팔짱을 끼고 눈을 감습니다. 황량한 겨울의 온도는 간 데 없고 조용하게 봄이 왔습니다.



30분이던 출근시간이 1시간 30분, 왕복 3시간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시간을 활용해보고 싶은 마음에 넷플릭스에서 <겨우, 서른>을 보았어요. 오랜만에 재밌게 보는 중국 드라마입니다. 극 중 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홀로 설 수 있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더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에게 해주는 조언이에요.) 남편과 귀여운 아들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절대적인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구자는 극 중 누구보다 당당합니다. 극 중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해서 계속 이어 보게 돼요. 자막에 멀미가 나서 끄기 전까지는요.


회사에 도착하기 세 정거장쯤 남았을까요. 부장님이 오늘도 카톡을 보냅니다. 좋은 아침이니 업무를 내놓으라는 내용이지요. 왜 아침 회의는 출근시간 정각에 맞춰서 시작해야 할까요? 출근이 아홉 시인데 아홉 시 정각에 회의실에서 모여하는 나... 갑을병정 중에서 정쯤 되는 게 아닐까요? 이제는 별 일이 아니아도 조건반사로 얼굴만 보면 부아가 치밉니다. 반응이 비합리적인걸 머리로는 알지만 분노가 잠재워지지 않습니다. 사무실에 발이 닿기 전에도 마음은 요란하고 봄은 천진합니다. 황량한 겨울에도 살아남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걸 보면 살아있는 존재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어서 어두운 시기 뒤에는 잠깐이라도 꽃을 피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보든 말든 때에 맞춰 피어나는 봄을 보면 더 잘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출근시간 전 카톡에 안 읽은 척을 하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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