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둘째들을 사랑하기로 했어

형제 중 한 사람이 아플 때

by 김제리

교양필수였던 심리학개론에서는 성격을 설명하는 학자가 등장한다. 그중 아들러는 출생순위가 인격에 큰 영향을 준다며 순위별 특징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오늘날에도 나름 견고하다. 유명한 강사가 장남, 둘째, 외동을 나눠서 성향을 설명하는 영상이 있을 정도다. 댓글에는 스스로 편이 된 사람들이 아우성이다. 여기에 아픈 형제자매가 있다면 관계는 복잡해진다는 게 나의 개똥이론이다.


오빠는 기포가 우글우글한 내 핸드폰 액정을 보고 돈이 없어서 못 사냐며, 왜 아빠엄마한테 사달라고 말 안 했냐고 물었다. 부모님이 사주는 건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오빠. 내 일은 내가 해결해야지. 왜 엄마아빠한테 내 핸드폰 액정필름을 사달라고 해?”


“아니 없으면 사달라고 할 수 있지. 나라면 그럴 텐데.”


“그건 내 선택지에 없어.”


오빠는 아주 조금 멋쩍어했다.


“나한테라도 사달라고 하지 왜”


“오빠 나한테 맨날 통장잔고 보여주잖아. 근데 내가 어떻게 사달라고 해.”


대화를 들으면 다정한 오빠와 무뚝뚝한 여동생이다. 들여다보면 우리가 걸어온 길과 가치관, 부모님의 양육태도까지 깃들어 있다는 건 살아본 사람만 안다. 오빠는 아프다. 경제 활동을 이어나가기 어렵다. 완쾌할 가망도 없다. 사회생활이 어려우며 나을 가망이 없는 질병. 공통분모를 지닌 질병은 많지만, 바로 맞추기는 어렵다. 오빠는 정신분열증-오늘날에는 조현병이라고 불리는-을 앓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사회생활 불가능은 아니다. 오랜 시절 친밀한 친구도 있고, 대화도 된다. 다만 스트레스가 일정선을 넘어서면 증상이 심해진다. 슬프고 괴로운 병이다. 다행히 오빠는 초기부터 약을 꾸준히 먹고 병원을 다녀서 상태가 호전된, 훌륭한 환자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가장 작고, 어렸던……. 만만했던 나는 아픈 이의 감정 기복을 그대로 받아냈다.


아픈 사람이 제일 힘들다는 건 알지만 그로 인해 짐을 나누는 건 고단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내가 둘째라는 변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힘들다. 부모님은 오빠를 이해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너는 알아서 잘한다는 말은 훈장인 동시에 부채의식이었다. 알아서 잘하는 딸에게는 왜 생일 케이크를 사주지 않을까. 동생인 내가 왜 먼저 이해하고 넘겨야 할까. 오빠는 10년째 주택청약을 부어주고 학자금을 내주고, 용돈도 주지만 내게는 왜 핸드폰 액정필름 사달라는 한 마디가 선택지에 없을까? 성인이니 스스로 하는 게 맞지만 등골을 빼먹지 못해 안달인 사람처럼 손해 본 기분이 들었다.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나 다른 생각이라니.





결말 없는 이야기는 현재진행 중이다. 서운함을 표현하고 작년 생일에는 아이스크림케이크를 받았다. 엄마에게 왜 오빠만 주택청약을 내어주냐며 한 마디 했더니 너는 알아서 잘하잖니,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정말 알아서 넣기는 했으니까. 가족관계가 제일 어렵다. 이 글은 엄마가 시골에 간 사이 혼자 집안일을 하면서 오빠 담배꽁초를 치우고 거실에 들어왔더니 아빠가 오빠 방을 치워주라고 말해서 열받아서 썼다. 물론 늘 1인칭 주인공 관점에 내게 불리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썼음을 유의하며, 아무도 비난하지 않으며 읽어주면 고맙겠다.


작년 생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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