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美
우리나라에서 혈액형과 MBTI로 성격을 파악하듯, 발리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때면 서로 별자리를 자주 물어보고 별자리로 성격을 파악한다. 내 생일은 4월말이라 친구들이 별자리를 물어볼 때 황소자리라고 대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 고집세구나!”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그렇다! 나는 고집이 세고 어쩔 땐 이런 성격이 미련함이 되기도 한다. 내가 미련할 때를 나열해보겠다... 일단 음식,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질릴 때까지 먹으러간다. 상황에 따라 자주 여러번 가지 못할 때면, 가장 큰 사이즈를 시켜서 질릴 때까지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사람에게도 그렇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친구들이 "미련보스"라고 부를 정도로 상처를 받아도 정을 잘 못뗀다.
발리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아쉬탕가요가를 수련한다고 하면 모두가 ‘너는 치열한 수련자구나, 엄청난 자기절제를 하는 아이구나.’ 라고 바라본다. 그렇지만 최근 계속 몸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로 아침요가를 이어갈 때도 나의 미련한 성격이 발동했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나의 상태를 보면서 아쉬탕가요가를 잠깐 쉬는게 낫지 않겠냐고 권유했고, 심지어 오후에 참여하는 하타요가수업의 요가강사도 나에게 휴식을 권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만 쉬어보고, 그래도 아쉬탕가가 좋으면 다시 이어나가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달콤했지만 달콤함은 잠시뿐, 아침엔 역시나 내 몸은 요가원을 향하고 있었고 ‘힘들면 10분만 수련하고 오자’라고 다짐하며 수련을 이어나갔다. 몸도 지속적으로 아프고, 수련도 생각처럼 가볍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마음 한 켠엔 ‘미련맞게 다시 발리에 오겠다고 고집을 피워 고생한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하루는 인도네시아친구가 찬팅과 노래수업에 나를 초대했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70여명의 다양한 국적의 수련자들과 열성적으로 찬팅과 노래를 하다가 정말로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이런 즐거움을 경험하려고 발리에 다시 온거라는 확신이 들면서 내 미련맞은 성격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쉬탕가수련과 우붓생활을 현재 좋은 컨디션이 아니더라도 이어나간다는건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들이라는 반증이라는 것, 나의 미련맞은 성격이 발동할 때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는 신호구나!
몸이 피로해도 매일 아침의 아쉬탕가수련을 좋아해.
이유모를 감기몸살이 있어도 우붓의 삶을 좋아해.
질릴 때까지 먹을 양을 시킬만큼 이 음식을 좋아해.
상처받을 마음까지 감수하더라도 이 사람을 좋아해.
동전의 양면처럼 미련맞은 성격을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나니, 나는 인내심이 강하고 내가 좋아하는걸 명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나는 그 이후 한 고비를 넘긴듯 부담없이 아침수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나의 성격에 대한 다른 이의 칭찬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몇일 전, 나에기 휴식을 권했던 친구는 한 고비 넘기고 수련을 즐기는 나의 과정을 지켜보며,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나라면 그만 뒀을거라고, 너의 황소고집이 참 감탄스럽다고. 분명 한달 전 다른 친구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때는 와닿지 않았고 사탕발린 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제는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런 칭찬을 들은 날, 우붓시내를 걷다가 매일아침 함께 아쉬탕가 수련하는 남자를 우연히 마주쳤다. 우리는 3개월 넘게 함께 수련했지만 그 날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너랑 옆에서 나란히 수련하는 날은 에너지가 참 좋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그래? 나 요즘 맨날 울고, 짧게 수련하고 가는데.”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그게 좋다는거야. 힘들어하면서도 매일 와서 매트에 서는건 정말 좋은 자세야.” 라며 기운을 돋아주었고, 그 날 나는 그 친구의 응원 덕분에 하루종일 날아갈듯 기분이 좋았다.
3달전 쯤, 오후에 방문한 우붓의 한 요가원에서 만난 남자가 “너 되게 스피릿츄얼spiritual하게 입었네.” 라고 말했었다. 발리에서 구매한 옷을 입었을 뿐인데... 사실 난 이 표현을 듣자마자 참 거슬렸다.
스피릿츄얼한 옷은 뭐지…?
그 날 저녁 함께 아쉬탕가를 수련하던 대만친구 - 나는 이 친구를 발리에서 만난 두 번째 스승으로 생각한다 - 와 밥을 먹으며, 나는 그 친구에게 스피릿츄얼한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매트위에서 호흡이랑 움직임을 의식하기도 바빠. 너는 수련하면서 오, 이게 스피릿이다. 라고 느껴?” 라는 심오한 질문에 친구는 요가철학의 일부를 설명해주었다.
우리의 뇌는 경험을 통해 생각, 감정, 감각, 느낌을 각인시키고, 그게 기억에 남아서 비슷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똑같이 반응하게 만들어. 예를 들어, 처음 먹은 사과가 달지 않고 신맛만 있었다면 그 다음 다른 사과를 보더라도 ‘저건 시고 맛이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요가수련을 열정적으로 할 때면, 그런 잠재인상(삼스카라, samskara)이 제거되고 새로운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 그게 내가 생각하는 요가수련을 할 때의 스피릿이야.
우리 함께 열정적으로 수련해서 삼스카라를 불태우자!
사실 그 때 친구의 설명을 100%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친구가 설명한 그대로를 경험하고 있었다.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내 미련맞은 성격을 수련을 이어가다보니 어느 순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다른사람의 칭찬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달 전 우붓의 유명한 카페에서 멕시코국적의 남자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인도의 기타인 시타(sitar)를 연주하는 뮤지션이었는데, 20년 넘게 요가수련을 했고 매일아침 꾸준히 혼자 요가수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매일 아침 혼자수련을 목표로 했지만 한없이 게을러졌던 나로서는 그의 습관을 선망했다.
'난 정말 죽어도 그게 안되던데 어떻게 매일 빠짐없이 수련을 하냐'는 나의 질문에 그 친구는 피아노를 예를 들어 대답을 해주었다. 초등학생이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느리고 하기싫고 버벅거리지만, 20년을 꾸준히 피아노를 친다면 능숙하게 악보를 외운 습관대로 치지 않겠냐며.
경험이 습관이 된 것일 뿐이라고, 매일 아침 꾸준히 매트 위에 서는 경험이 습관이 되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최근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스피릿이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져있는 개념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는 매일 아침 매트위에 서는 행위만으로도 스피릿츄얼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게으름이라는 부정적인 태도를 성취감이라는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꾸는 과정일테니 말이다.
아직도 서울에 돌아가면 매일 꾸준히 수련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두려움과 의심이 가득하다. 그렇지만 4달동안 발리에서 몸이 무겁더라도 아침마다 꾸준히 요가원으로 향하던 경험이 나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걸 생각하면 어딘가 모르게 뿌듯하고 자신감이 솟는다.
나는 황소자리라서 황소고집도 있지만 황소처럼 강인하게 나아가는 힘이 있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오늘은 가장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인 요가수트라 2장 33절을 떠올린다.
부정적인 생각들에 의해서 마음이 교란될 때, 반대의 긍정적인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vitarka badhane pratipakasha bhavanam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