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앞에서 즉흥댄스를 추게 될 줄이야
우리는 우붓을 떠나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오기 전에 기대했던 것처럼 우붓에서 1달 장기 숙소를 구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 어차피 여러 번 짐을 싸고 옮겨야 될 거면 발리섬을 돌아다니며 모험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첫 번째 행선지는 울루와뚜 Uluwatu
울루와뚜는 발리섬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전 세계 서퍼들이 모이는 서핑스폿이자 꾸따, 스미냑에서처럼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서핑을 하진 않지만 우붓의 요가커뮤니티가 울루와뚜로 옮겨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뿐더러, 가보고 싶었던 요가원이 울루와뚜에 위치하고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울루와뚜로 향했다.
아침요가, 점심에 바닷가, 오후엔 책도 읽고, 저녁에 일몰까지.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탁 트인 바다와 마음 붙일 요가원 하나 있으니 마음이 풍요로웠다.
12일이 지나고 울루와뚜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지금까지 들른 식당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울루가든에 가서 식사를 하며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식당 이름에 걸맞게 야외 테이블과 정원의 조화가 예쁜 곳이었는데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발리니즈 전통댄스 공연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직원들은 메뉴를 나누어주며, 댄스공연에 대한 설명이 적힌 종이도 나누어주었고, 거기엔 소셜댄스이니 발리니즈 댄서가 관중 중 한 명을 초대해 함께 춤을 추는 형식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니 댄서가 당신을 고른다면,
축복받은 자가 되어 그녀와 함께 춤을 추세요!
안내문을 읽은 S의 반응은 이랬다. “와 너무 기대된다! 나도 선택받고 싶어. 정말 재밌겠다!!!” S를 작년에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는 어딘가 겨울왕국 올라프와 닮은 구석이 있다. 크고 반짝이는 눈과 해맑게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어딘가 둥둥 떠있는 순수함과 수다스러움까지.
식사를 마치고 8시가 되어 악대가 연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발리니즈 댄서가 예쁜 전통복을 입고 등장해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멀리서만 봐도 팔꿈치, 손가락, 눈동자와 고개의 움직임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춤에 매료되어 즐겁게 공연을 구경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테이블을 지나다니며 댄스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S는 신이 나 팔을 들어 “여기요! 얘 춤추고 싶대요~~~ "를 외치며 나를 무대로 이끄려는 것 아닌가. 그의 팔을 급하게 끌어내리며 말했다. “제발. 진심. 제발… 저기 나가서 춤추는 거 상상만 해도 사지에 힘이 풀리는 거 같아.”
댄서는 계속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자고 권하는데, 한 명, 두 명, 세 명…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절하고 있었다. S는 그 장면을 보더니 다시 번쩍 손을 들어 자기를 지목해 달라고 외치다가 결국 그녀가 보지 못하자 혼자 무대로 뛰어나가 자진해서 춤을 추고 싶다고 말해 악대는 그를 환영하며 연주소리를 키워 댄스공연을 이어나갔다.
발리니즈 댄서를 보며 호흡을 맞추는 여유까지 보이며 춤을 즐기는 S의 공연은 마치 연출된 장면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어우러졌고, 카메라를 들어 그 모습을 찍고 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너네는 발리에 살고 있냐, 전통댄스를 따로 배우냐 등등을 관심가지고 질문할 수준이었다.
춤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S를 대단하다고 격려하며 소감을 물어보니 지금은 약간 부끄러운데 엄청 재미있었다면서 나에게도 권했다. 나는 윽, 생각만 해도 사지에 힘이 풀릴 것 같이 공포스럽다고 못할 것 같다고 말하자, S는 말한다.
“네가 재능에 대해 고민할 때 내가 말한 거 기억나? 너는 재능이 참 많은데 어딘가 막혀있는 것 같다고 했던 말. 이게 딱 그 부분이야. 너는 가끔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느라 현재에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맛보지 못하는 것 같아. 어차피 다 모르는 사람들인데 어때! 셀프이미지 따위 집어치우고 네가 현재와 연결되어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 그 모습 자체가 매력을 끌 테니까.”
현실이 흘러가는 강이라면 완벽주의는 고정된 그림이니, 완벽한 순간에 집착하지 말고 흘러가고 변화하는 현실을 포용하세요.
특정 순간에 대한 집착은 긴장을 발생시키기에, 일을 할 때는 열정적으로 하되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 균형을 찾으세요.
-Yung pueblo, Lighter-
잘 추는 거에 집착하지 않아서 긴장 없이 조화로운 춤을 선보였던 거라는 걸 알고 나니,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잔뜩 상기되어 기쁘게 저녁식사를 즐기는 S를 보며 ‘해볼까? 말까? 할 수 있을까? 오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무렵 1부가 끝났다.
‘에잇 그냥 해볼걸…’ 아쉬움이 남을 찰나, 2부가 시작되었다. 또 다른 댄서가 등장해서 공연을 이어갔고 이어서 파트너를 찾을 차례가 왔는데 역시나 아무도 초청에 응하지 않아 그녀는 무대에서 꽤나 먼 우리 테이블 부근까지 와서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제가 할게요!” 나는 손을 들었고, 이왕 할 거 제대로 자유롭자 싶어서 신발도 벗고 맨발로 뛰어나갔다.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보다 내가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자 바로 앞에서 울리는 악기연주는 쩌렁쩌렁하니 정말 나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댄서를 바라보며 동작도 따라 해 보고, 같이 빙글빙글 돌면서 조화를 이루어나가다 보니 어려울 게 없었다. 어느새 관객석을 돌아볼 여유도 생겨 S를 향해 해냈다는 듯이 손도 흔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정신없이 테이블로 들어왔고, 식사를 마치고 하나둘 자리를 뜨는 사람들은 우리 테이블을 지날 땐 박수와 미소를 보내주었다. S의 말이 맞았다. 매력적인 사람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 현재의 기쁨을 충만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물음으로 끝난 지난 글의 대답이 된 경험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완벽에 대한 상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두려움에 막히던 패턴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두려움에 맞서 지금, 현재 자체를 즐기는 기쁨을 맛보았다.
머리로 생각하고 적절하게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만이 존재하는 기쁨을 느끼고 나누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