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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Oct 18. 2023

이젠 성공이 아닌 행복을 향해 달리자

개인과 사회의 밸런스

작년에 한참 흥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다시 보고 있다. 며칠 전에 9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보다가 첫 번째 봤을 때랑 다르게 느낀 점이 있어서 기록해볼까 한다.


본인을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 칭하는 방구뽕은 학원 버스를 장악하고 어린이 12명을 산으로 데려가 4시간 동안 놀았다는 이유로 미성년자 약치유인죄 피의자가 된다. 피의자 변호를 맡은 우영우는 그와 그의 어머니를 대면하면서, 그 둘이 재판을 임하는 자세가 꽤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정신이 좀 이상해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며' 심신 미약을 명목으로 죄를 감형시키려 하지만, 방구뽕은 재판 중 본인이 학원버스 운전기사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권했다고 인정하는 등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영우는 방구뽕과의 면회 중 그의 아이들에 대한 신념을 들으며 아쿠아리움에 갇힌 고래를 연상시켰던 것처럼, 무한경쟁사회에 놓인 어린이들의 실태를 재판 중 알리며 그의 사상 자체를 변호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를 미성년자약치유인이 아닌 사상범으로 죄명을 바꾸어달라고 판사에게 요청한다. 심신미약이 인정받는다면 죄는 감형될 수 있어도 그의 사상과 주장은 부정될 것이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


초등학생 때 나는 배웠다.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사회는 부모와 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또래친구들을 만나면서 사회를 단계적으로 경험하고 배운다. 그렇게 한 사회에 소속되어 나의 세상을 사회의 메시지로 채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상범이란 현존 사회 체제에 반대하는 사상을 가지고 개혁을 꾀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또는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을 뜻한다. 즉, 현존 사회에 벗어난 사상을 가진다는 것은 그 사회에 소속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 9화를 보면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구뽕의 엄마는 심신 미약이라는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서라도 그를 지역사회에 다시 소속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지만, 그는 사회 밖으로 나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회 자체의 문제점을 수면 위로 올리고 싶었던 것이구나.


지금은 세상을 떠난, 영국 태생의 철학자 앨런 워츠는 동양철학에 관한 훌륭한 강연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사용했다. "만약 내가 원을 하나 그려놓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 또는 원반, 또는 공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이 벽에 뚫린 구멍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깥쪽보다 안쪽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 두 면은 항상 함께 다닌다. '바깥'이 없으면 '안'도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있는 장소가 우리의 사람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장소'라는 말은 물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문화적 환경도 가리킨다. 우리는 문화라는 바닷속에서 헤엄친다. 이 바다가 워낙 침투력이 뛰어나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때문에 우리는 그 바다에서 나오기 전에는 그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 에릭와이너, 소크라테스익스프레스


2021년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심리상담을 받았었다. 심리상담 첫 세션에서 선생님은 내가 번아웃이라고 했고, 직업을 그만두는 대신 일을 하면서 심리적 부담을 덜 방법을 같이 모색해 보자고 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정말로 정말로, 지푸라기이더라도, 회사를 가뿐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다면 제 월급은 얼마든지 드릴게요.라는 심정으로 주 1회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하였다.


4개월의 심리상담은 허무하게도 퇴사로 끝이 났다. 심리상담사 선생님의 달콤한 설득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상담기간 동안 내가 길러온 가뿐한 마음은 회사를 다닐 목적이 아닌 퇴사를 결심하고 입 밖으로 꺼낼 용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제는 회사를 그만둔 지 2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깊이 몸 담았던 성공과 경쟁이라는 바다 밖으로 나와 그 안의 실태를 선명히 바라본다. 회사에 지친 친구들은 줄지어 나에게 퇴사를 고민한다는 상담을 늘어놓고, 해외에서 만나는 외국인들도 한국의 치열한 경쟁사회에 대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분위기이다.




스페인에 올 준비를 하던 3-5월, 한국에서 나는 정말 두려웠었다. 입 밖으로 꺼낼 만큼 용감하진 못했지만, 누가 들어도 나의 결정이 성공과 경쟁의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발버둥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때는 그 두려움의 의미를 잘 몰랐었는데, 이번 드라마 에피소드를 보면서 선명해졌다. 평생 속해있던 사회를 향해 '나는 이렇게 살지 못하겠다고, 내 사상과 맞지 않다고' 인정할 시에 잃을 소속감이 두려웠던 것이다.


퇴사 고민으로 속앓이를 진하게 하던 친구가 최근 나에게 말했다. "너의 힘들었던 시절을 내가 지금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다는 게 놀라워. 그땐 개인적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사회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고난은 기회이다.

대게 내가 원하는 것과 주변사람들의 판단, 평가를 저울질할 때 마음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때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과정에서 나를 알아가는 기회를 만난다.


우리가 사회의 소속감에 한 발 다가갔던 유치원시절처럼, 불완전하더라도 정해진 기준과 다른 나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은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사회 속에서, 오늘도 개인적 이유를 탓하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이건 우리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고.


획일화된 성공이 아닌 나에게 맞는 행복을 향해 달리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건 사회가 점점 다양한 인생의 모습을 포용한다는 뜻이겠지. 나를 알아가는 - 그 과정 중에 있을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사랑과 영감을 담아 이 글을 통해 지지와 응원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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