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I’ll miss you
no coming, no going
발리에서 사람들을 만날때면 항상 이 문구를 생각한다. 흩어졌다 만났다 반복할 뿐, 완전한 만남도 완전한 헤어짐도 없다. 그러니 현재 내 앞에 놓여진 너와의 연결에 책임감을 가지고 진심을 다하며 지내자.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다보면 우리의 순간이 마음에 남고 그 추억을 언제든 꺼내볼 수 있으니, 이별은 없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발리생활이 50일차에 접어들고 10일 남은 지금, 이제는 정말 발리 두달살기를 마무리하는 기분이 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돌아다니기보단 혼자 꼭 가보고싶었던 식당을 도장깨기하듯 방문하고, 매일 아침 지금의 감정을 기록하듯 적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중이다.
내가 겪은 경험을 상대방이 온전히 경험하지 않았기에 ‘언어’를 매개로 전달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믿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아끼게 되었다. 그저 대화를 할 때는 최대한 듣고 관련하여 많이 물어보고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주려하지만 나의 속마음을 잘 꺼내진 않는다.
발리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빈도가 늘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 배경이 없기 때문에 그저 느낌에 집중한다. 이러한 순수성 속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만나본 사람들 중 그저 내 존재 자체를 환영해주는 것 같이 편안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갑자기 평소에 안하던 내 속에 있던 이야기가 술술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연 순간부터는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얼하든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즐겁고 그 친구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매 순간이 선물같이 감사할 뿐이다.
지난 금요일 밤, 집에 들어가기 아쉬운 마음에 들른 라이브바에서 우연히 한국인 5명 무리를 만났다. 발리에서 그렇게 여러명의 한국인을 만난건 처음이었다! 여러 한국인과 함께한 자리는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에 합석을 했고 그러자 약간의 어색함이 올라왔다. 나는 확- 바뀌는 큰 변화에 예민한 성격이라 새로운 환경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이런 상황에 최대한 티 안나게 적응하기위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떠들면서 최대한 불편함을 없애려고 애써본다.
적당한 대화를 나누다가 자리는 끝이 났고, 동갑내기 여자인 친구 한 명이 우붓에 지내는 동안 매일 밥 먹자고 연락이 왔다. 같이 수영도 하고 밥도 먹고 짧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조금은 편해지기 시작했고, 오늘은 친구가 우붓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그 친구가 하고 싶은걸 함께 했다. 아침요가, 점심식사, 언제나 맛있는 코코넛 아이스크림, 쇼핑까지… 마치 서울에서부터 같이 여행와서 우붓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것처럼 아쉬움을 나누며 알차게 돌아다녔다.
우리는 반나절 사이에 정말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했다. 여행, 커리어, 인간관계, 쇼핑취향, 각자 얼마나 현실적인 또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을 하는지 등등.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편해진 분위기에 나는 내 마음에 담아둔 여러 고민을 먼저 꺼냈고, 친구도 비슷한 경험을 나누며 공감해주었다.
오늘 이 친구는 하루종일 함께하는 동안 우붓에 더 남고 싶다며 아쉽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친구는 우붓에 대해 말했지만 나랑 함께있는 시간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이해했다. 왜인진 모르지만.
“저녁이 되기 전에 정말 가야겠지?”라며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포옹을 건넸고, 친구는 조금 눈물을 보였다. 그 순간 아까 말한 내 믿음처럼 그 친구만의 경험이기에 어떠한 감정의 동요인지 눈물의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고, 그저 마음으로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친구가 가고난 후, 혼자 카페에 남아서 올라오는 먹먹한 감정을 바라보았다. 머리로 이별은 없다고 다짐했지만 내 마음은 약 2달동안 여러번의 이별을 느꼈고, 지금도 나는 이별을 준비하는구나. 발리생활이 무르익는 요즘, 요가수련을 하다가 여기서 만난 고마운 사람들이 문득문득 떠오를때면 눈물이나곤 했는데, 오늘 그 친구의 눈물 덕분에 그 의미가 명확해졌다.
나는 의존적인 성향이 강해서 인간관계가 흔들릴 때 불안감을 크게 느낀다. 최악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상황에 안전함을 느끼듯 - 실제로 이런 생각의 패턴도 나의 걱정 많은 성격에 한 몫했다 - 나는 불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순간에도 이 관계의 끝을 염두하곤 했다. 몇 번의 이별을 통해 내가 상상했던 끝보다 훨씬 아프다는걸 겪은 지금, 그저 끝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만남도 이별도 없다고 포장하며 괜찮은 척 한건 아닌지.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어지려고 한건 아닌지 돌아본다. 그 친구의 솔직한 눈물이 참 부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