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거울이다
나는 24살에 회계사시험을 합격했다. 공부를 시작한지 1년 4개월만에 단 한 번의 불합격 없이 1차, 2차를 거뜬히 합격했고 - 회계사 시험에서 이를 ‘동차합격’이라고 한다. - 그 해 2차 시험이 무지막지하게 어려웠던 탓에 전국의 동차합격생이 67명 밖에 없었다. 나는 그 67명 안에 들었고 우리 대학교 안에서 최연소 합격자가 되었다.
학교 안에서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모든 수험생들이 내 전공과 이름을 알고있을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이런 명예가 칼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2차시험준비 막바지에 우울증이 생겼다. 아무도 만나지않고 하루 14시간씩 1년4개월을 공부하면서 세상과의 단절감이 너무 깊어졌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동안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아 1년동안 연락하지 않은 친구들한테 힘들다고 속깊은 이야기를 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엄마의 전화 한 통에도 그냥 눈물이 났고,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었다.
시험만 끝나면, 합격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합격 후 다시 가을학기에 복학 했지만 학교생활 중에도 계속 이유없이 눈물이 나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남들이 보는 나는 졸업 전 탄탄한 취직을 보장받은 부러운 사람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쓰는 나는 그런 시선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될 것 같았다. 내가 힘들다는걸 이해받는건 불가능할거라 생각했고 눈물이 날 때면 숨었고 결국 다시 휴학을 했다.
가족들 앞에서도 힘들고 나약한 상태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하루종일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참을 수 없는 자기혐오감이 들었고, 끝없이 울었다. 밤에 가족들이 들어오면 나는 산책을 핑계삼아 밖에 나가 어두운 길을 걸으며 또 울었다. 하루는 울면서 길을 걷는데 멀리서 장보고 들어오는 엄마를 봤다. 엄마한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나는 또 숨었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하루였다. 가족들이 다 나가고 나는 또 울기 시작했으며, 그 날은 자기혐오감이 더욱 심해져서 자살에 대한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예상보다 일찍 들어온거였다.
결국 온 몸으로 울고 있던 모습을 들켰고, 너무나 당황하고 창피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손을 잡고 같이 나가서 산책을 하자고 했다.
엄마랑 나는 평일 대낮에 한참을 말 없이 걸었다. 엄마는 산책을 하는 동안 필라테스, 헬스장, 수영, 요가원 등 끌리는 간판이 있으면 어디든 같이 들어가보자고 했다. 그리고 뭐든 좋으니 마음이 내키면 바로 등록을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꽤 오래 걸었고, 새로 생긴 필라테스 센터부터 이용료로 천만원 단위의 보증금을 요구하는 으리으리한 헬스장까지 열 군데 넘는 운동센터를 구경했다. 집 근처로 돌아와 동네를 걷는데 ‘복싱’이라는 허름한 간판이 보였다. 들어가보니 건물 지하에 위치한 작은 복싱장이었는데 포근하니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어린 아이가 된 것마냥 엄마 손을 당기며 “엄마 나 여기가 마음에 들어.”라고 말했고 우리는 월10만원의 학원비와 함께 등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놀랍게도 복싱은 재밌었고 나는 점점 생기를 되찾았다. 처음보는 사람들과 아무 배경없이 그저 운동만 하는 시간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고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휴학기간동안 간간히 일도 했고 운동도 빼놓지 않고 했다. 덕분에 바쁜시즌을 마치고 다시 3월 복학 후 개강 첫 주, 기분이 색달랐다. 그간 왜 우울했지? 싶을 정도로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걸 몸소 경험한 순간이었다. 이유없이 아팠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괜찮아졌다.
Sound mind in a sound body.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손을 자주 씻고 비타민을 먹고 면역력을 챙기며 감기를 예방하는 것처럼 그 때의 경험 이후 마음의 면역력을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예전엔 날씬해지고싶어서 운동을 했다면, 이제는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
하루는 헬스장 GX프로그램의 요가수업에 참여했었는데 그 날의 수업은 아쉬탕가요가였다. 수업을 하면서 “이거다!”싶었다. 엄마랑 복싱장에 처음 갔던 날처럼 무지 끌렸고 마음에 들었다. 놓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수업 끝나고 선생님한테 가서 질문을 드렸다.
저 이 수업이 너무 좋아요.
이 스타일 요가를 전문적으로 배우려면 어디로 가야해요?
선생님은 유명한 요가원을 두 군데 소개시켜줬고, 나는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요가를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시작한 아쉬탕가요가를 지금까지 놓지않고 수련하고 있고, 6년동안 아쉬탕가만큼 “이거다!”싶은건 또 없었다.
요가를 더 배우고 싶어서 발리에 왔다. 처음엔 두 달 발리에서 생활하고, 호주에 가서 유학하고 있는 친한 친구를 만나고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었다. 즐거운 발리생활을 마치고 한껏 들뜬 마음으로 친구를 만나러 호주에 갔지만 호주의 생활은 발리에 비해 즐겁지 않았다.
빌딩숲 한 겹, 높고 답답한 아파트 두 겹, 두꺼운 옷 세 겹. 발리에서 가벼운 원피스 하나 걸치고 자연 속에서 맨발로 뛰어놀며 풀어헤쳐진 자유로움이 다시 겹겹이 포장되는 기분이었다.
호주 생활이 하루, 이틀 지나가면서 점점 초반의 밝은 모습을 잃고 발리만 그리워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친구는 이럴거면 다시 발리로 돌아가라고 농담삼아 말했다.
다시 가도 될까? 부모님께 뭐라고 말하지? 또 일 안하고 놀거냐고 잔소리를 들으면 어떡하지?
왜 다시 가고싶은지 한 움큼 정리한 다음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발리 다시 돌아가고싶어.”라고 운을 띄우자마자 엄마는 바로 “그래라, 한국 너무 덥고 답답한데 날 선선해지면 들어와라” 라고 흔쾌히 이해했다. 그리고 엄마는 전화할 때 내 목소리만 들어봐도 발리에 있을 땐 그렇게 밝고 생생하더니 지금은 훨씬 어둡다며 혹시 호주가서 친구랑 싸운건가 싶었다고 했다. 아무리 멀리있고 얼굴을 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너무나 흔쾌히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엄마에게 참 고마웠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시공부를 하면서 “딸은 엄마의 거울이다.”라는 문구를 책상에 붙이고 공부하는 친구를 보았다. 우리를 키우느라 본인의 꿈을 포기하신 엄마를 생각하면서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게 그 친구의 포부였다. 나도 대학교 때 취직 준비를 하면서까지 알게 모르게 그 친구의 문구처럼 엄마의 거울로서, 치열하게 살고 성공한 모습을 보여줘야한다는 일종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졌던 것 같다.
좋은 직업을 가졌지만 매일 방에서 나오지 않고 울기만 하던 내 모습을 보는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때도 엄마는 거울을 보는 기분이었을까?
이번 경험으로 목소리만 들어도 내 기분이 어떤지 알고, 내가 원하는걸 바로 존중해주는 엄마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딸은 엄마의 거울이라는 말의 참의미를 되새긴다.
엄마는 내가 성공한 모습을 볼 때 자랑스러운게 아니라, 내가 행복한 모습을 볼 때가 제일 자랑스러운거였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학교와 사회로부터 받은 주입식 관념이 당연한거라고 오해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난 어렸을 때부터 심어진 그런 압박감에서 오는 감각의 신호를 무시한 채 성공을 향해 달렸다. 겉으론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고, 힘든 모습을 숨기다보니 힘든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 때 가족한테까지 보여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점점 단절된 채 살아갔다.
내가 괴로울 때 엄마가 내민 도움의 손길이 다시 나를 세상과 연결될 수 있게 만들었다. 완벽하지 못해도 괜찮고, 힘들 때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는 경험으로부터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용기가 생겼다.
어떤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스스로를 괴롭게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때면 그게 당연한게 아니라는 결론에 얼룩져있던 나의 거울은 점점 깨끗해지고 투명해진다. 그리고 맑고 깨끗해진 거울처럼 나의 연약함을 세상에 드러내는만큼 나도 타인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딸은 엄마의 거울이라는 말이 모든 타인의 모습이 나의 거울에 투영된다는 믿음으로 확장되었다.
How much more attractive and less exhausting are imperfections and vulnerability?
불완전함과 연약함을 드러내는게 얼마나 더 매력적이고 덜 소모적인지!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 라는 말로 상대의 힘듦을 억누르기보다는, 같은 뜻일지라도 내가 겪은 힘든 상황을 통해 타인의 힘듦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내보자. 나의 단절감을 연결감으로 바뀌는 순간이 된다.
이 미친 세상에 세상이 아닌 우리를 믿고 서로를 응원하는 우리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