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이 전부다
우붓에서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이 5주차에 접어든 지금, 처음으로 아쉬탕가 요가원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보통 새벽수련 마치고나면 고요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서 아무랑도 대화하지 않고 나오는데 지난주 금요일 레드클래스 후 먼저 한 여자분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한국인인가- 추측했지만 대만에서 왔다며 인사했고, 우리는 서로의 낯선 이름을 부르기까지 꽤나 버벅거렸다.
일요일에 수련마치고 로컬시장에서 코코넛을 하나 집어 노상까듯 계단에 앉아 빠르게 마시고 집에 걸어오는데 누군가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뚫고 “chi!!!”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둘러보니 같이 수련하는 대만친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친구가 달리는 스쿠터 위에서 나를 불렀던 순간은 꽤 오랫동안 그림처럼 남을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아침식사를 함께하고 싶었지만, 숙소에서 호스트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기에 그저 아쉬움만 삼켰다. 가벼운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서로 메신저를 공유하고선 헤어졌다.
월요일, 우붓에는 홍수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서울에서도, 우붓에서도, 새벽에 비가 내리면 그렇게… 수련 가기가 싫다. 빗소리에 습관처럼 알람을 끄고 요가를 가지 않았고, 다음주 출국 전까지 몇 번이나 더 가야하는지 세보며, 발리에서의 요가수련의 설렘도 잠시일 뿐- 타성에 젖은 마음을 관조하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전 11시쯤 그 친구한테 메신저가 왔다. “지혜, 오늘 왜 안왔어? 비가 많이와서?”
이런 따뜻한 관심을 받은지가 언제였더라…
2019년 초 서울에서 아쉬탕가 새벽수련을 시작하면서 3년 동안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커뮤니티였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나누는 사람들과 오가며 눈인사하고, 가끔 토요일 아침에 함께 커피를 마시다보면 같은 관심사를 통해 금방 가까워지곤 했다. 그렇게 서로 아침에 모닝콜을 해주거나, 오지 않은 날엔 문자로 안부를 물으며 서로의 여정을 지지하고 응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만친구의 관심어린 문자에 나는 내일 수련 마치고 같이 아침을 먹자고 제안했고, 친구는 자기 수련시간이 길텐데 괜찮냐며 조심스럽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화요일 아침, 우붓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비가 쏟아졌고 나는 습관대로 알람을 미루며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친구가 날 기다릴 것이기에 가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고 우비를 쓰고 터벅터벅 요가원으로 향했다.
나는 맨 앞줄에 매트를 깔았고, 그 친구는 세번째 줄에서 이미 자기 수련을 시작한 상태였다. 나보다 훨씬 많은 자세를 매일 수련하는 것 같았고, 그 친구는 나보다 20분 정도 일찍 왔는데도 20분정도 늦게 수련을 마쳤다. 덕분에 나는 내 수련을 마치고 그 친구를 기다리면서 교호호흡과 가벼운 명상을 이어갔다.
수련을 마치고 나는 친구에게 인도전통 의학분야인 아유르베딕ayurvedic 식당을 제안했고, 역시나 요기yogi스럽게 그녀의 긍정적인 호응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함께하는 첫 식사였고 서로의 억양이 낯설었지만, 우리는 서로 아쉬탕기ashtangi - 아쉬탕가ashtanga요가를 하는 요기yogi - 라는 공감대로 술술 대화를 풀어나갔다.
이 친구는 10년 전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을 시작해서 지금은 대만에서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1년에 한 번 자기 스승이 있는 인도 요가원에 가서 두어달씩 수련하고 온다고 했다.
나는 3년간 함께 하던 선생님이 한국을 떠나서 지금은 따르고 있는 스승이 없는 상태고, 한국에서 요가강사 자격증도 따고 요가수련을 위해 우붓에 올 정도로 요가열정이 크지만 가르치는데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본인도 처음엔 그랬다고, 본인도 나처럼 대만에서 200시간 TTC(Teacher Training Course)를 마쳤을 때는 수업을 할 자신이 없었는데 인도에서 선생님을 찾고 그 선생님과 매년 TTC를 하면서 확신을 가졌다고 말하며, 원하면 언제든 인도로 오라며, 자기와 함께 지내면서 같이 수련하자고 고마운 제안을 주었다.
짧은 시간 대화를 통해 이 친구를 보며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요가강사로서 얼마나 큰 자신감을 심어주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이 친구를 생각하며 귀찮은 마음을 이끌고 요가원을 향했던 나를 보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나누는 도반의 존재가 요가수련자로서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 잊고 있던 커뮤니티의 소속감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2년 전 나는 회사에서 지원해주던 화상영어수업을 통해 한 미국인 튜터를 만났었다. 정말 랜덤하게 만난 사이였지만, 그 튜터는 10년 가까이 불교공부를 한 친구였고, 우리의 화상영어 주제는 언제나 불교철학과 요가철학이 얼마나 닿아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영어울렁증이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기에 평생 영어공부에 관심이 안 생길줄 알았는데, 이 튜터와 6개월 이상 함께 수업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더 나누고 싶어서 영어공부에 최선을 다했었다. 그리고 그와 대화를 하며 느꼈던 불교교리에 기반한 튜터의 가치관을 본받고 싶어 나도 작년 초반에 1년과정의 불교수업을 등록하기로 결심했었다! 그 튜터에게 이 소식을 전했을 때, 그는 나에게 이런 메세지를 보냈다.
Through building meaningful
relationships with others
builds this path of practice
for us in the future.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게
앞으로의 수련의 길을 만들어주는거야.
요가선생님이 한국을 떠나고, 최근 1년 동안 혼자 요가수련을 이어나가며 불교공부를 같이 했던 커뮤니티에 마음을 붙이고 싶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수련의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쯤, 발리에서 다시 아쉬탕가요가를 제대로 시작해보자고 다짐하고 왔던 이번 여행 중, 오늘 만난 대만친구는 예전에 미국인 튜터가 해주었던 저 말을 상기시켰다.
수련의 길을 잃었다는 느낌은 결국 선생님이 떠나고 우리의 커뮤니티가 분산되면서 오는 단절감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혼자 수련을 이어갈지 다른 요가원을 찾아볼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는데,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커뮤니티에 자리잡는 것이 결국 수련을 이어나가는 길이라는걸 알아차린다.
덧붙여 코로나로 인해 요가원이 문을 닫을 때에도, 온라인 수업과 다른 장소에서 수업을 이어나가셨던, 그리고 본인이 한국을 떠날 때에도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꺼내본다. 아주 나중에 내가 요가선생님이 된다면 나의 미래의 학생들에게도, 어쩌면 수련의 전부일 수 있는, 커뮤니티의 힘을 체험시켜주고싶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지금, 굳은 신념과 막중한 책임감을 다져가는 과정임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