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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Aug 13. 2022

발리스피릿

모든 것과 소통하기


팬데믹 이후 세계적인 관광지 발리에서 유일하게 “덜” 침체기를 겪었고 가장 빨리 회복한 지역은 우붓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요가. 우붓엔 여러 요가원에서 다양한 요가를 경험할 수 있어 전세계에서 요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우붓의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요가원 요가반yogabarn에 가면 은은한 광기어린 내공이 느껴지는 요기yogi부터 요가를 전혀 해보지 않은 관광객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요가반에서는 마치 열린 마음을 가지는데에 요가수련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유난히 많은 사람들과 자주 눈이 마주치고, 미소와 대화를 나눈다.

7월 중순 경, 하루는 일요일 4시 인요가 수업을 들으러 수업 10분 전 리셉션에 도착했지만, 이미 마감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발리가 정말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실감한 날이었다. ‘괜히 뛰어왔네.’라는 생각을 하며 리셉션을 돌아나오는 길에 해맑게 나를 부르는 남자애를 발견했다. 그는 지난 금요일 댄스수업에서 나를 봤다며 말을 걸었고, 4시 인요가 수업은 어디서 등록하면 되는지 나한테 물어왔다. 나는 그 수업은 이미 마감됐다고, 나도 들으러왔다가 못들어갔다고 대답을 했고,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나누며 요가반 안에 있는 카페로 이동해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이탈리아인이었고 한국인이 창시한 단전호흡을 뉴욕에서 처음 시작해서 꾸준히 수련하고 있다고 했다. 발리엔 여러 번 와봤고, 이번엔 리턴 날짜를 정하지 않은 채 오픈티켓으로 여행을 왔는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수영도 한 번 못했다며 내일 돌아가는걸로 리턴일자를 확정했다고 말했다. - 실제로 나도 그즈음 2주 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이상기후를 실감한다는 현지인들의 걱정을 자주 들었고, 맑아지길 기다리다 지쳐 우붓을 잠시 떠나 해가 쨍하게 뜨는 바다지역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 오늘 너를 만날 줄 알았으면 날짜를 확정하지 말껄! 비행기 스케줄을 바꿀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어.”라고 덧붙이는 말에 ‘이런게 그 유명한 이탈리안 남자의 플러팅인가’ 싶었지만, 당황한 마음을 숨기고 “그럼 언제 왔는데?” 라고 되물었다. 신기하게도 그가 도착한 날은 계속 우붓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날이었다. 나는 농담반 진담반, 그리고 플러팅을 차단하듯 “야… 우붓 계속 날씨 좋았는데 너 온날부터 비가 왔어!! 너가 구름을 몰고 온거같은데, 내일 비행기탈 때 구름 같이 가져가. 모레부턴 비가 안오겠다 하하” 라고 대답했다.



그는 우붓이 코로나 이후 많이 변했다며 특히 요가반이 상업적으로 변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예전엔 더 다양한 국적, 연령대의 선생님들의 다양한 요가수업이 있었는데 지금은 젊은 선생님들의 제한된 종류의 수업만 있다며 그 좋은 선생님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요가수업의 에너지는 선생님이 좌우하는데 이번에 들은 수업들은 선생님의 에너지가 부족해서 이럴거면 차라리 유투브 요가를 듣겠다고 생각했다며 신랄한 비판을 이어갔다. - 나는 이탈리아 사람과 처음 대화해봤는데, 정말 말이 많고… 직설적이었다. 대화에 낄 틈이 없었고, 호불호가 매우 강해서 좋은 거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동시에 마음에 들지 않는 걸 얘기할 때 그는 motherf*ck, bullshit이라는 표현을 때려넣듯 사용했다.

나는 이번이 발리여행이 처음이라 코시국 전 우붓이 어땠는지 알지 못하기에 그의 얘기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저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난 지금도 충분하게 너무 좋은걸…” 이라고 말하며!




다음날 오후, 그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그는 발리가 처음이라 마냥 즐거운 나한테 실망감을 안겨준 건 아닌지 신경쓰였던 것 같다. 공항가는 길에 자신이 뱉은 말을 주워담듯 그래도 우붓이 좋은 점을 한보따리 메시지로 보내왔다. 그는 수년간 집에서 혼자 수련을 이어가는 약20년차 명상가였기에- 그는 흔하게 알려진 요가스타일에 대해 too plain 이라고 표현하며 나에게도 우붓에서 기공수련, 단전호흡, 여러종류의 호흡수련, 위빠사나 명상들을 경험해보라고 추천했다. - 한 번씩 우붓에 오면 수련에 대한 열정을 재충전하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그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어제는 선생님과 요가수업에 맞추어져있던 초점이 우붓에 여행오는 사람들로 옮겨졌다. 우붓은, 그리고 우붓의 요가원들은 수년간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요가수련을 해온 사람들이,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수련경험을 가지고 더 깊은 체험을 하러 방문하는 장소였다.

더욱이 내가 수련하는 마이솔스타일 아쉬탕가는 선생님의 구령 아래 이어가는 수련이 아니라 학생들의 각자의 수련을 선생님이 개별로 봐주기에 그저 학생들의 존재 자체가 요가원의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그와 다르게 나는 지금의 우붓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느끼는 걸수도 있겟다고 이해가 됐다.



이탈리아친구가 가고 다음날부터 신기하게도 정말 우붓은 날씨가 좋아졌다. 2주동안 비가 오고 먹구름에 해가 가려져있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늘은 맑고 화창했고 걸을때면 적당히 선선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고, 낮에는 수영을 하기에도 적당한 날씨였다. 숙소 호스트는 요즘이 자기가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우붓 날씨라고 소개하며, 내가 떠나기 전에 다시 우붓스러운 날씨로 돌아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마치 2년 이상의 긴긴 팬데믹을 견뎌온 발리를 예전같지 않다고 투덜댄 사람을 향한 발리영혼의 응징이었을까? - 아울러 그 친구는 팔과 다리에 심한 멍이 들어있었는데 발리에서 어두운 밤에 인도로 걷다가 뚜껑없는 맨홀에 빠져서 다쳤다고 말했다. 발리에서 걸어다니면서 뚜껑없는 맨홀을 보며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여러번 했지만, 이런 아찔한 일을 실제로 겪은 사람은 처음봤다.




이번에 발리에 두 달 머문 후 나는 친구를 만나러 3주 간 호주에 들렸다. 나는 코시국 전후의 발리를 비교하던 이탈리아 남자애처럼 발리와 호주를 계속 비교하며 투덜댔다.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라는걸 알면서도, 호주에서 생활하는 친구 앞이라는걸 알면서도. motherf*ck이나 bullshit이라는 격한 표현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너무 많이 투덜댄걸까? 나는 호주영혼의 응징을 받았다.

공항 도착하자마자 유심사기를 당해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장소 외에선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었고, 항상 쓰고다니는 선글라스가 부러졌다. 바다에 에어팟을 떨어트린 줄도 모르고 파도에 뛰어놀다가 내 에어팟은 망망대해 속으로 사라졌다. 호주음식은 맛있었지만 자극적이라서, 한국에서 챙겨갔으나 발리생활 두 달동안 한 번도 먹지않았던 소화제와 제산제를 매일 복용해야했다.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호주에 들른 덕분에 내가 얼마나 발리를 좋아했는지 실감했고, 확신에 가득차서 한국행 항공권을 취소하고 다시 발리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끊어 우붓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발리에 다시 돌아온지 4일차인 어제 저녁, 겨울이었던 호주로부터의 급격한 날씨변화와 소화장애로 피로한 몸을 이끌고 요가원을 향하던 길에 수많은 관광객으로 들끓는 우붓센터에서 본 노을은 그저, 찬란했다. 그리고 이 순간이 정말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호주에서는 훨씬 예쁜 노을을 만나도 감사하다는 생각은 안들었는데…  감사하는 마음은 내 올해 새해목표 1순위일 정도로 애써 노력해야했던 마음이었는데… 저절로 올라오는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이 순간이 참 벅차고 좋았다.




우리는 공간 속에서도 소통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공간에 있는지에 따라 그 공간도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한다.


오늘의 에세이 내용이 모든 것이 상호연결(연기법, 緣起法)되어있다고 바라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달려있다고(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로 받아들일 수도 있겟다. 어떤 방향으로 해석해도 가능하다는 면에서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다는 공 사상, 空 思想으로 이어진다고 생각이 드는걸 보니, 나도 꽤나 경력 있고 개성이 뚜렷한 요기yogi라는 생각이 든다. 우붓에 다시 돌아와 이 곳의 요가 에너지를 이루는 한 구성원으로서 다시 지낼 수 있어서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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