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게 말걸기

19.06.03 삼쇠섬 25일차(덴마크29일차)

by 김지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면 충분하다.




편안한 주말을 보내고 새로운 주간을 맞았다. 오늘부터 다시 밭일을 시작했다. 밭일은 몸이 고되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고요한 밭 한가운데서 혼자 일하는 시간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환해졌다. 농사가 체질에 맞다기보단 아무래도 사람과 부딪히며 함께 하는 일이 내겐 버거운 것 같았다.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스타일과 예민함을 갖고 살기에 어떤 삶이 더 낫다, 모자라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시간, 나는 나와 다른 성질의 삶을 동경해왔던 것 같다. 종종 낯선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관계를 맺고 많은 친구를 사귀고 어디에서나 사랑받는 친구를 볼 때면 나와는 다른 그 삶의 모양에 놀라곤 한다. 이제껏 내가 만나온 세상은 자기 안으로만 파고드는 사람보다 손을 들고 나서는 사람에게 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왔다. 덕분에 사춘기 시절 나는 내가 가진 우울과 예민함을 애써 지우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친구의 모습을 흉내내려 하기도 했다.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운 ‘서비스 마인드’는 차츰 내 진짜 모습을 나 스스로도 잊게 만들었다. 잘 웃는 사람, 착한 사람, 친절한 사람은 공공연한 칭찬의 수식어였다. 하지만 쉽게 웃음 짓는 얼굴 뒤에 가려진 내면의 불편함과 비관적인 생각과 관계 맺음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또렷이 내 안에 있었다. 그 응축된 에너지는 애꿎게 가장 가까운 이들을 향해 분출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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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오기 전, 당연하게도 나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사소한 것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예민함을 갖고 있고 나만의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관계 맺는 일에 힘겨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밖에 나서면 나는 저절로 웃음으로 포장하고 불편한 자리와 관계를 거절하지 못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글을 쓸 때에만 나는 솔직해졌다.



낯선 곳,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곳. 내가 살던 곳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던 가치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곳. 내 삶을 구성하던 문화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곳에서 나는 내 삶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상황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내가 일하는 방식과 내 언어 세계까지. 영어 문법과 영어권 문화를 자연스럽게 소화하지 못하는 나는 한국어로 떠오른 생각을 내가 아는 영어 단어로 1:1로 매칭시켜 말했고 내가 자주 쓰는 단어를 통해 내 생각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땡큐와 쏘리를 난무하고, 저스트(just)와 리를(little)을 자주 넣어 말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길 원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기 위해 나오는 솔직한 행동들이 나라는 사람을 내가 다시 보게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예민하고 감정적인 동요가 크고 때때로 비관적인 생각으로 치우치고 약간의 강박을 가진 이런 나로 살아도 나쁘지 않다고. 이게 내가 가진 나이므로, 내가 애써 하지도 못하는 사교성과 친절함과 애교를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많은 친구를 가진 내 친구의 삶만큼 몇 안 되지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있고 많이 모나고 예민한 내 삶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비로소 나는 하기 시작했다. 내게 필요한 건 스스로를 잘 아는 것만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긍정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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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와 주방에서 불편한 일을 겪은 다음날, 베티는 내게 먼저 와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제는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했어. 나는 어제 high한 상태였어. 바쁘고 힘들고. 그래서 내가 너에게 다정하지 못했어. 내가 너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베티는 과장된 태도로 미안해, 라고 말하지도 않고 천천히 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내 눈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베티가 많이 밉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음이 다 풀어지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행동을 똑바로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도 않고 타인에게 준 상처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을. 내가 그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느 때처럼 괜찮아, 오케이, 하지 않았다. 그저 “Yes, I understand.” 라고 했다. 그게 그 순간의 솔직한 내 심정이었고 참 오랜만에 나는 솔직한 내 모습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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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집엔 다섯 명의 식구가 살고 있다. 오늘 새로 온 일본인 우퍼 ‘에코’를 포함해 나, 쇠얀, 히라, 베티, 에코 다섯 명이 같은 화장실을 쓰고 같은 주방에서 각자의 생활을 꾸리고 있다. 빵이나 우유가 떨어지면 함께 체크해 스티니에게서 받아오고, 갑자기 비가 내리면 누구든지 밖에 널려 있는 다른 누군가의 빨랫감을 안으로 들여놓는다.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다른 우리 안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자신으로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충분히 자기 자신으로 서 있으면서 아침이면 굿모닝, 하우 아 유? 묻고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고 타인에게 다정하지 못했음을 시인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요리해 먹고 다른 자세로 휴식을 보내지만 서로를 등지고 있지는 않다.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친근감을 갖고 있고 서로 다른 모습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베티의 진심 어린 사과를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내게 다정하지 않았던 그 순간을 모두 잊고 그에게 새로이 애정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상처받았고 그는 내게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그는 내게 진심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일과는 무관하게 적당한 마음으로 그와 함께 생활한다. 그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들을 애써 용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혹은 자꾸 되새기며 그 일이 내게 입힌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스스로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면 충분하다. 그렇지 못했던 순간에 대해 진심 어린 손을 내밀 수만 있다면 모두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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