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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Dec 17. 2019

스반홀름 공동체1

19.06.16 스반홀름 1일차(덴마크42일차)

어떤 모습을 상상했든 처음 마주한 스반홀름은 훨씬 강렬했다.




오늘은 덴마크에 오고자 결심했던 이유, 스반홀름(Svanholm)으로 가는 날이다. 스반홀름은 에코 공동체이자 실험 공동체로 농업을 기반으로 공동생활을 하는 마을이었다. 한국에는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공동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스반홀름을 통해서 우프(WWOOF)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고 고민할 것도 없이 덴마크행을 결심했다. 덴마크, 내 삶에 없던 단어가 그렇게 생겨난 것이었다. 삼쇠에서 처음 마주한 덴마크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인상을 남겼다. 삼쇠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뒤로하고 덴마크행의 목적지, 스반홀름을 향해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삼쇠에서 스반홀름으로 가기 위해서는 ‘로스킬데(Roskilde)’를 거쳐서 가야 한다. 마침 생일을 맞아 로스킬데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짐을 낑낑 끌고 길을 나섰다. 로스킬데에서 스반홀름(Svanholm)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가볍게 산책했다. 날이 좋아서 힘겨운 여정을 앞두고도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특히 어제 봐두었던 카페에서 브런치 뷔페를 먹었는데 손 떨리는 가격이었지만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브런치였다. 신선한 연어 샐러드와 채소들, 갓 구운 빵과 치즈들, 소시지와 햄, 살라미와 요거트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접시 가득 꾸역꾸역 좋아하는 것들을 채워 자리에 앉았다. 따사로운 햇빛과 선선한 바람, 맛있는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며 쇠얀과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고 길게 나누었다. 문득 왜 한국에서는 이 별 것 아닌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채 살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삶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을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나누고 좋아하는 것으로 차려진 식사를 천천히 먹는 것. 행복한 삶은 생각보다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시간에 맞춰 로스킬데에서 스키뷔(skibby) 지역으로 넘어가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한가로운 일요일 한낮이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참 기다려 230R 버스에 올랐다. 유모차와 휠체어가 들어가는 넓은 자리에 캐리어를 싣고 앉았다. 이리저리 미끄러지는 캐리어를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친구가 도와주어 고정 벨트를 채웠다. 덴마크에서는 자주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도움의 손길들이 다가온다. 오후스에서 ‘Den gemle by’의 출입구를 알려주었던 아저씨와 경로가 바뀐 버스의 새로운 정류장을 알려준 아주머니, 로스킬데에 도착해 낑낑거리며 짐을 끌고 가는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도와주겠노라 말했던 아저씨와 아주머니. 모두 짧았지만 충분히 따뜻한 마음을 나눠 받았던 순간이었다.     



버스는 점점 도시 외곽으로 벗어나는 듯했다. 창밖으로는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드넓은 평원과 깨끗한 하늘이 안내자가 되어 우리를 점점 먼 곳으로 데려갔다. 삼쇠에서 자주 보았던 집들이 드문드문 나타나더니 조그마한 읍내 같은 곳에 다다랐다. 삼쇠의 타냐비야처럼 스키뷔(Skibby) 시내였다. 이곳에서 내려 315A로 갈아타고 이삼십여 분을 더 들어가야 스반홀름이 나왔다. 버스는 굽이굽이 마을 곳곳을 들렸다가 스반홀름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큰길에서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선 대로를 따라 쭉 들어가야 스반홀름 공동체가 있는 마을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십여 분을 걷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스반홀름 주민들을 만났다. 어느새 도로는 양옆으로 우거진 숲으로 들어섰다. 빼곡한 숲을 관찰하며 조금 더 들어가자 멀리서 조그만 흉상이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흉상의 앞면이 향해 있는 곳이 바로 스반홀름의 입구였다.     



길목으로 들어서자마자 탁 트인 길 끝으로 사진에서만 보던 건물이 나타났다.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내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잔디밭 야외 테이블에는 식사가 한창인 수십 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저녁 식사 시간인 듯했다. 캐리어를 끌고 광장을 가로질러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한두 명의 사람들이 다가와 새 자원봉사자냐고 물었다. 이미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다른 이들이 다가와 인사했다. 우리와 같은 우퍼들이었다. 우퍼들은 우리의 짐을 함께 거들며 안내해주었다. 식사가 마련된 건물이었다. 일단 한쪽에 짐을 부려놓고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건물 안에는 뷔페식으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음식을 담고 실내 식당이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는 듯했다. 뭔가 체계적으로 혹은 규칙적으로 일이 진행될 거란 예상을 모두 빗나갔다. 다들 우리에게 인사하고 반겨주었지만 서둘러 담당자에게 안내하거나 뭔가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그저 환영해, 밥 먹어, 하고 자유로이 인사할 뿐이었다. 조용한 삼쇠에서 단출한 우퍼들과만 지내다가 갑작스레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정신도 없이 식사를 시작하자 긴장감이 몰려왔다. 어떤 모습을 상상했든 처음 마주한 스반홀름은 훨씬 강렬했다.     


9명의 우퍼들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영어로 대화가 오가고 처음 보는 이들과 대화도 해보기 전에 얼굴을 맞대고 식사하려니 자꾸만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꾸역꾸역 밥을 먹는 동안 머릿속에는 이곳을 떠날 날만을 꼽아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당장에 다음 주에라도 나가자고, 어디서든 우프를 새로 알아보거나 삼쇠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만 차올랐다. 얼른 나만의 아늑한 공간으로, 낯선 얼굴들이 없는 곳으로 숨고 싶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모두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지내야 한다니.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공동생활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앞으로의 공동체에서의 생활이 두렵기만 했다.




*스반홀름(Svanmholm)

스반홀름 우프 신청은 덴마크 우프 홈페이지 또는 스반홀름 자원봉사 신청을 통해 가능하다. 최소 한 달부터 1년까지 기간 설정이 가능하며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연초까지는 자원봉사자를 받지 않는다.

https://svanholm.dk/english/volunte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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