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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Dec 31. 2019

스반홀름 공동체2

19.06.16 스반홀름 1일차(덴마크42일차)

낯선 풍경과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붐비는 곳에서의 생활을 부정적으로만 그리고 있을 때 날아든 꽃과 쿠키는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스반홀름(Svanholm)
스반홀름 공동체는 1978년에 출발해 40여 년째 이어져 오는 실험 공동체다. 가족 단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며 유기 농업을 기반으로 공동생활을 한다. 전체 회의를 통해 공동체 운영의 모든 영역이 결정된다. 마을 자체에 약 30여 개의 직업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부에서 직업을 갖고 있다. 평균 10명 정도의 게스트(우퍼, 자원봉사자)가 마을 일을 도우며 숙식을 제공받는다. 스반홀름에서 생산하는 농작물과 유제품은 덴마크 전역에 납품되며 마을 카페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게스트 숙소로 향했다. 마침 식사를 끝낸 다른 우퍼들도 우리의 짐을 함께 들어주었다. 모두들 짐의 무게에 놀라며 얼마나 머무냐고 물었고, 연말까지 지낸다는 대답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다 함께 짐을 낑낑대며 들고 걷는데 정말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반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득하기만 했다.     




마을을 가로질러 ‘메인 빌딩’이라고 부르는 건물에 도착했다. 게스트 숙소는 그 빌딩 반지하였다. 

반지하로 향하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방공호 같은 어두컴컴한 복도가 나를 맞이했다. 속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터졌다. 삼쇠의 시골집은 여기에 비하면 너무도 아늑한 전원주택이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서자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티가 났다. 침대 커버와 이불도 지저분했고 방 구석구석 거미줄이 쳐 있었다. 더욱이 1인실이라 침대도 1인용으로 하나뿐이었다. 담당자는 미안한 얼굴로 하루 이틀 뒤에는 큰 방으로 옮겨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쁘게 오가며 새 커버와 이불을 날라 왔다. 남자 우퍼들은 어디선가 싱글 침대 하나를 구해와 방 구조에 맞춰 이리저리 가구들을 옮겨주었다. 고마운 풍경이었지만 어쩐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곁에는 무거운 짐이 퍼질러져 있고 천정으로 여러 개의 배관이 지나가는 작은 방은 스산했다. 걱정이 떨쳐지지 않았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던 삼쇠의 2층 방이 벌써 그리웠다.     




가구 배치를 끝낸 외국인 친구들이 자리를 떠나고 한국인 우퍼들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보다 먼저 생활 중인 예지&유곤 커플과 찬빈씨였다. 나는 마치 비밀을 캐묻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이곳 생활에 관해서 물었다. 예지, 유곤, 찬빈씨는 별 고민 없이 괜찮은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처럼 그들의 편안한 차림과 표정은 밝았다. 그들의 반응에 조금쯤 안도했지만 그들도 떠나고 먼지 쌓인 침구와 휑한 방을 마주하자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과연 어떻게 이곳에 정을 붙여야 할지, 쇠얀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선 간단하게 쓸 용품과 잠옷만 꺼내고 가방은 통째로 구석으로 치웠다. 당장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려면 청소부터 해야할 것 같았다. 쇠얀과 함께 침구며 베개, 쿠션들을 몽땅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양 끝을 잡고 하나씩 털 때마다 눈앞에서 먼지가 불꽃놀이 하듯 터졌다. 삼쇠에서 한 달을 지내며 쓸어도 쓸어도 언제나 바닥에는 모래가 깔려있고 돌아서면 거미줄이 쳐지던 시골 생활에 나름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거짓말 같았다. 과연 이 이불을 덮고 알 수 없는 얼룩이 남아있는 매트리스 위에서 잘 수 있을지, 머리 위로 배관이 서너개씩 지나가는 답답하고 스산한 방에서 반년이나 잘 지낼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청소를 마무리하고 가방을 뒤져 사진을 몇 장 찾아냈다. 삼쇠에서 히라씨에게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힘들까봐 친구가 선물해 준 그림을 덴마크까지 들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도 그저 웃어넘겼는데 이제야 그 말이 이해가 됐다. 나는 응급처치를 하듯 쇠얀이 들고 온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즉석 사진들을 책상 앞 벽에 오밀조밀 붙였다. 그런 다음 한국에서 엄선해서 들고 온 책들을 한눈에 보이도록 책상 한쪽에 올려두었다. 어떻게든 정감 가는 풍경이 필요했다.     


얼추 방 정리가 끝나갈 즈음 누군가 똑똑 방문을 두드렸다. 예지씨가 ‘웰컴 쿠키’라며 직접 만든 쿠키 한 접시를 선물로 건넸다. 잠시 뒤에는 덴마크 친구 ‘아나스’가 주위 숲을 다니며 직접 딴 꽃을 선물이라며 주고 갔다. 꽃병과 쿠키 접시를 서랍장 위에 올려놓자 방이 한층 편안해졌다. 낯선 풍경과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붐비는 곳에서의 생활을 부정적으로만 그리고 있을 때 날아든 꽃과 쿠키는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평생 작은 동네에서 익숙한 사람들과만 살다가 마주한 크고 넓은 세상이 내겐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더욱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친절만큼 사소한 부딪힘 또한 가볍지 않았기에 지레 앞으로의 나날들이 걱정됐다. 하지만 한국인 우퍼들의 말처럼 생각보다 괜찮은 생활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며 가구를 옮겨주던 사람들, 꽃과 쿠키를 건네며 환영 인사를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지내는 곳이라면 조금 더 마음을 열어봐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스름이 내리는 창밖을 보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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