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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Mar 29. 2020

사람의 일-빌딩그룹(Building group)

19.06.17 스반홀름 2일차(덴마크43일차)

스반홀름에서는 애초에 여자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하는 일)/ 남자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하는 일) 같은 구분은 없는 것 같았다.



스반홀름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긴장하고 걱정스런 밤을 보내고 새로이 떠오른 햇살을 맞으며 첫 근무를 시작했다. 예지씨와 유곤씨, 찬빈씨와 함께 빌딩그룹 사무실로 갔다. 일과는 8시에 시작하는데 일단 사무실에 모여 15분간 회의 및 티타임을 가진다. 우퍼들은 그날그날 회의를 통해 정해지는 일을 맡게 된다. 회의는 빌딩그룹의 관리자들(주민들)끼리 진행하므로 우퍼들은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할 일이 정해지면 흩어지는데 오늘은 두 팀으로 나눠서 진행했다. 유곤씨와 찬빈씨, 쉐얀과 내가 한 조가 되어 메인 건물 뒷마당 잡초를 뽑는 일을 맡았다. 빌딩그룹은 건물 자체를 보수하는 일보다는 마을의 미화를 담당하는 일이라고 했다. 대부분 건물 주변, 운동장과 여러 시설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우리는 유곤씨의 설명에 따라 작업복과 신발을 갈아입고 장비들을 챙겨 뒷마당으로 향했다.


담쟁이 풀이 무성한 메인빌딩. 스반홀름 주민들의 주거공간과 게스트룸, 미팅룸 등이 있다


뒷마당은 블록 틈 사이로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구역을 정한 뒤 자리를 잡고 일자 드라이버나 길고 뾰족한 막대들을 이용해서 블록 틈새의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잡초를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뿌리까지 뽑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각자의 속도로 잡초를 정리했다. 마을 주민들이 오가며 일하는 우리와 눈인사를 나누었다. 하필이면 한 조로 모인 네 명의 우퍼 모두 한국인. 섬을 통틀어 한국인이라곤 쇠얀과 나밖에 없었던 삼쇠섬에서 떠나온 지 겨우 하루. 일하는 한국인 4명과 건물을 자유롭게 오가는 덴마크인 주민들 사이에서 묘한 동질감과 이질감이 함께 느껴졌다.


9시 50분쯤 되자 커피 브레이크(coffee break)라고 부르는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스반홀름에서는 각 부서마다 일과 시간 중 2-30분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 커피 브레이크가 되면 제각기 흩어져서 일하던 주민들이 모두 모여 차나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도 작업을 멈추고 유곤씨의 설명을 들으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무실에는 벌써 모인 사람들과 은은한 커피향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점심/저녁 배식이 이루어지는 메인키친



커피 브레이크가 지나자 점심시간이 금세 찾아왔다. 저녁과 마찬가지로 점심은 메인 키친이라고 부르는 건물에서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을 모두 모여 먹었다. 스반홀름 주민들뿐 아니라 밭에서 일하는 외부 직원들까지 모두 모이자 어제 저녁 식사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키가 훌쩍훌쩍 큰 사람들 틈새에 끼여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다시금 몸이 바짝 얼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뒤섞여 함께 식사하는 모습은 아직 얼떨떨했다. 대학교나 회사의 구내 식당처럼 대부분 의식할 필요 없는 그저 타인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또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많은 사람들 틈에 있는 경험은 내겐 아직 두려운 일이었다. 줄을 서 있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앞뒤로, 양옆으로 쉼 없이 눈을 맞추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라도 말을 붙여올세라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예초기 날을 정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예지씨


점심시간이 지나자 볕이 더욱 따사롭게 쏟아졌다. 오후 일과는 정비소 앞뜰을 예초기로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예지, 찬빈씨에게 예초기 사용법을 배우고 예초에 들어갔다. 쉽게 시범을 보이는 두 사람과 달리 예초기의 무게만으로도 벅찼다. 보호장비를 둘러쓰고 예초기를 들자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땀이 쏟아졌다. 두 사람의 설명에 따라 예초를 시작했다. 예초기 날에 맞아 돌멩이와 잡초 파편들이 온몸으로, 사방으로 튀었다. 헤드셋을 썼지만 거세게 돌아가는 전동날 소리가 우렁찼다. 전원 레버를 쥔 오른손이 금세 저려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을 때쯤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볕이 너무 뜨거워. 이제 그늘 아래에서 일해.”


업무를 총괄하는 TOKE가 다가와 장비를 정리하고 그늘 밑에서 잡초를 뽑으라고 말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무실에 장비를 정리하고 시원한 물 한 잔씩을 나눠 마셨다. 물 한잔에 “살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그늘 아래에서 수다 반, 잡초 뜯기 반 하며 쉬엄쉬엄 일했다. 



예초 장비를 착용한 쇠얀. 파편에 상처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긴 소매 옷은 필수.


빌딩그룹에서의 첫 업무는 짧았지만 강렬했다. 난생처음 써본 예초기의 무게와 감촉은 선명했다. 한국에서 예초기를 돌리거나 장비를 쓰는 일은 언제나 아버지와 사촌 오빠들, 남자들의 일처럼 여겨졌다. 아버지를 가장으로 어머니와 남동생이 있는 전형적인 한국 가족 안에서 30년 가까이를 사는 동안 나는 망치 같은 공구나 예초기를 손에 쥐어볼 일이 없었다.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애초에 여자들은 할 수 없는 일(하지 않는 일)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마 내가 해보겠다고 나섰더라도 아버지가 내 손에 예초기를 들려주는 일은 없었으리라. 명절 무렵 산소 예초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사람들은 언제나 남자 형제들뿐이었으니까. 


스반홀름에서는 애초에 여자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하는 일)/ 남자가 할 수 있는 일(해야 하는 일) 같은 구분은 없는 것 같았다. 동양인 여자 셋으로 구성된 팀에 예초기와 장비들을 맡기면서 그 누구도 우려의 표정 같은 건 짓지 않았다. “(여자인데) 할 수 있겠어?” 라는 물음 같은 건 없었다. 우리에게 다가온 걱정은 ‘여자가 하기엔 힘든 일이지’라는 우려가 아니라 ‘날이 더우니 쉬어가면서 해’라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었다. 오랜만에 아주 개운하게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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