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 2015
삶의 끝자락에 서면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덴마크로 떠나온 지 약 6개월. 5월 초순 처음 덴마크에 도착해 맞이한 매서운 바람을 기억한다. 근거리의 일본으로 길어야 3박 4일의 일정으로 다녀온 해외여행이 전부였던 나는 처음으로 멀고 긴 여행길에 나선 참이었다. 마치 신고식이라도 하듯 30kg짜리 짐가방은 분실됐고 맨몸으로 새벽의 코펜하겐 공항을 나섰다. 버스정류장에서 24시간 운영되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온갖 감정이 몰려왔다. 봄이 완연한 부산에서 출발해 입고 있던 옷가지는 5월의 덴마크 바람을 견뎌내지 못했다. 춥고 피곤하고 걱정되는데 또 눈앞에 펼쳐진 거리는 생경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이 추위에 떠는 몸과 함께 진동했다. 그 밤, 그 공기, 그 바람과 나. 그때 나는 어제도 내일도 없이 바로 거기, 바로 현재에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덴마크 생활도 6개월을 지나고 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하고 현지 공동체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지내는 터라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는 이곳에 깊숙이 발 딛고 있다. 겨우 이 정도의 시간으로 전혀 다른 문화권의 유구한 역사를 모두 체감하긴 힘들지만 이제 더 이상 이곳의 음식과 건물과 사람들은 낯설지 않다. 구글 지도에 의존해야만 한 발 한 발 디딜 수 있었던 코펜하겐의 거리도 부산 시내처럼 익숙하다. 처음 도착해 느꼈던 그 현장감이 이젠 많이 흐릿해졌다. 여행은 일상이 되었고 일상에 뒤따르는 권태와 우울이 지금 이곳에도 있다. 시간의 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많은 것들을 앗아가고 또 가져다 놓는다. 피할 수 없는 생의 끝은 우리가 눈치채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20대의 끝자락, 누군가가 삶의 끝자락에 서서 던진 질문이 어쩐지 지금의 내게도 조용히 울린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에서 큰 욕망도 품지 않고 살던 스토너에게 날아든 대학 진학 제의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스토너는 그 선택이 평생의 삶을 바꿔놓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농경학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농사꾼의 대를 이을 것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대학 생활은 스토너조차 예상한 적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연히 들었던 영문학 수업이 그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어떤 욕망을 일깨웠고 학문, 특히 문학에 대한 그의 열망을 살아 움직이게 했다. 그에게 대학과 문학 속 세상은 아늑한 도피처이자 유토피아였다. 평범한 시골 출신이자 그 누구보다 평범한 삶이었지만 가만히 있기만 해도 그의 삶은 언제나 격랑 가운데 있었다. 전쟁이 시작됐고 학생들의 절반이 전선으로 뛰어들었으며 그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대학에 남는 것이 전쟁-출전과 무관할 수가 없었다. 영문과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던 스토너는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어 대학 내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열심히 공부하고 바르게 소양을 갈고 닦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직면해야 했다. 출전하지 않는 이는 애국심과 정치적 편견에 의해 재단 당해야 했고 대학 내의 안정적인 지위는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온 이들의 몫이 됐다. 학문의 세계, 현실 세계와 유리된 안전한 도피처라고 생각했던 대학조차 정치의 세계였고 현실이었다.
2014년 대학원 첫 학기를 보낸 뒤 나는 참담한 마음이었다. 스토너의 ‘평범’의 삶의 궤적은 마치 내 삶을 반영이라도 하듯 포개졌다. 대학원이라는 전문적 영역은 내가 살아온 평범한 가정에서는 꿈꿔본 적도 없는 삶의 모양이었고 나는 우연처럼 운명처럼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대학교 4학년, 학문에 깊이 몰두해있을 때였고 그때의 나는 스토너처럼 학문의 세계가 현실 세계와는 떨어진, 안전하고 아늑한, 자아실현만을 위한 세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대학원 생활은 역시나 내 기대를 배반했다.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안전한 일이 아니었다. 공부할수록 현실의 어두운 영역은 더 잘 보이는 법이었고 세상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대학원 생활 자체도 현실이었고 정치적 선택과 행동의 영역이었다. 학문의 세계는 결코 아늑하지 않았다. 첫 학기를 보내고 여름 방학을 맞았을 때 펑펑 울며 대학원 생활을 지속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가 전쟁터로 나가지 않겠다는 것을 선택할 때처럼, 돌아온 이들이 자연스럽게 남아있던 자신보다 더 빠르게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을 때처럼, 나는 그 스토너처럼 그 무엇에도 연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저 나로 살고 싶은 마음. 그저 나이기만 하고 싶은 마음을 나도 그만큼이나 강렬하게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위선적인 것임을 안다. 어떤 세상에서 그것은 위선이 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견디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만으로도 책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내가 나이기만 하려고 선택할 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영역들을 대신하는 누군가가 있는 세상에서 그것은 위선이 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힘들다는 목소리조차 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연관된다. 겨우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한, 내가 나이기만 하겠다고 소리치는 일은 어떤 이에겐 상처가 된다. 스토너는 그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의 삶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처음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흙과 농사의 삶으로부터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의 바람은 단 한 가지, 바로 그저 ‘나’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문학을 품고 영영 그 세계에서 자유로이 유영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그가 서 있는 세상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아내를 평생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와 딸을 떨어트려 놓으려 했으며 결국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자와도 헤어져야 했다. 그는 정년을 보장받는 교수가 되긴 했으나 퇴직까지도 조교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그를 미워하는 학과장의 정치적 술수에 휘둘리며 고단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그저 자기 자신이고만 싶었으나 결코 그렇게만 살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의 미래를 위해 그가 떠나는 것을 내버려 두었고 끝까지 아내와 가정을 떠나지 않았으며 자기를 향해 날아드는 공격을 모두 견뎠다. 여느 소설적 인물처럼 역경을 딛고 성공이라 부를 만한 지위로 올라가지도 못했으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병상에 누워 지나간 삶을 회상하는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그런대로 순탄했고 어떻게든 살아왔으며 그는 사랑하는 문학과 평생 함께 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순간에 세상사의 한 가운데에 서 있곤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학과 통폐합을 겪었고 세월호를 무참히 지켜봐야 했다. 거기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든 없든 우리의 삶은 그런 것들로부터 연관되어지고 영향받는다. 예상치 못한 날에 등단 소식이 날아들었고 지금은 덴마크에 와 있다. 삶은 우리의 상상과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날에는 행복감에 몸서리치고 어느 날엔 바닥을 치며 눈물 흘린다. 현재는 강렬하고 현재에는 현재만 있다. 그러나 시간은 무참하고 모든 것을 순식간에 휩쓸어 간다. 그리고 언젠가, 어떤 끝자락에 섰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는 삶이란 현재를 강렬히 살아온 이뿐일 것이다. 너는 어떤 삶을 그렸으며, 어떻게 몸부림치며 삶을 살아왔는가. 어떤 풍랑 속을 건너왔으며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후회했는가. 넌 무엇을 기대했는가. 병상에 누워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스토너의 삶이 결코 의미 없지 않은 것은 그는 평생 자신이기를 애써왔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 세상을 등지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을 기대하든 우린 기대로부터 배반당할 것이고 실패해가는 인생만이 질문할 수 있는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