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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pr 14. 2023

추억 속으로

2020. 10. 08.

조카는 제법 ‘옹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목젖을 울려 어떤 소리를 내보낸다기보다 입맛을 다시다 쩝 하고 나는 정도의 소리나 찡얼거리는 소리가 겨우 아기가 내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목청을 사용해서 “에에-“ “으에” “허!” 하는 소리를 낸다. 울음 소리도 할아버지를 진땀나게 하기에는 충분한 정도로 우렁차 졌다. 옹알이를 할 때 아기가 내는 소리를 흉내내서 따라해주면 교감이 되서 좋다는 올케의 말 덕분에 조카가 “으에“ 하고 한 마디를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아빠 엄마가 중구난방으로 “으에” 하고 대답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점점 자기주장을 확실히 하는 아기를 보며 동생은 “내 딸이 어떤 목소리를 갖고 있을지 궁금해.” 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저 숨 쉬고 젖병을 빨고 이틀 동안 변비로 고생하다가 쾌변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분명하게 갖고 있지만 점점 더 ‘사람’으로 성장해가면서 그저 생명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목소리, 자기의 얼굴을 다른 사람의 얼굴과 분별해서 인지하는 자아, 고유의 성격과 적성을 형성해간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이 아기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될까.

사진을 찍는 각도에 따라 올케를 빼닮았다가 동생(보다 나의 아기 시절에 더 가까운) 얼굴이 나타났다가 하는 조카는 대체로 순한 편이다. 다른 아기들에 비해 찡얼거림도 덜하고 큰 소리로 우는 경우가 적다(물론 아직 100일의 기적이 끝나지 않았다). 대신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은데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팔다리를 파닥파닥 허공 중에서 헤엄을 친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진짜 배가 고프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 중에 활동량이 가장 많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성격은 자기 아빠를 닮으려나 싶기도 하다. 온 동네 놀이터를 누비며 모래밭에서 헤엄을 치던 유년 시절의 동생이 딱 저 모양으로 팔다리를 휘둘렀었다(왜 걔는 항상 모래밭에만 들어가면 드러눕고 헤엄을 쳤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내 얼굴을 닮고 동생의 성격을 가진 새로운 존재라니. 우리는 동생과 나의 어린 시절을 되짚으며 조카가 성장해갈 모습을 상상했다. 조카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 사진은 지현이 아기 때랑 진짜 많이 닮았제?”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아빠에게 “엄마는 내가 이런 성격으로 클 줄 알았나?”라고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는 단호하게 “아니.” 하고 대답했다. 표정만으로도 진저리를 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보통 만만치 않은 성장 과정을 겪었으니까.

일찍부터 자기 주장과 실행력을 탄탄하게 갖춘 나는 여태껏 세 번의 가출과 한 번의 가출 미수의 전력을 갖고 있다. 최초의 가출은 약 2세 경 일어났다. 동생을 출산하고 외할머니댁에서 산후 조리를 하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던 날. 엄마와 외할머니, 이모, 여자들이 짐을 싸고 있던 시각 남자들은 근처 이모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고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이종사촌 언니 오빠에게 2세 지현이를 맡겨 놓았는데 유달리 성장이 빨라 돌에 이미 뛰어다녔다던 아기 지현이는 모두가 한눈을 판 사이 당당하게 맨발로 집을 나갔다.

고와 스톱이 몇 차례 오가고 잠시 눈을 돌린 남자들은 이내 아기가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큰일 났다. 여자들이 알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 부랴부랴 뛰어나온 남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2세 지현이를 부르며 찾아다녔다. 어찌저찌 기적같이 누군가가 아기를 찾았는데 하마터면 영영 잃었을 거라고 아찔해했다. 집에서부터 큰길로 겁도 없이 한참을 내려오던 아기를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려준 건 어묵을 팔고 있던 포장마차 아주머니였다. 큰 대로변으로 이어지는 길 끝, 인형을 품에 안은 아기가 신발도 없이 투닥투닥 걸어 내려오는 걸 발견한 아주머니는 ‘가출 아기’라는 걸 단번에 파악하고 덥석 안아다가 어묵을 쥐여준 뒤 보호하고 있었다. 그 길 너머는 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이었고 어묵 아주머니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2세 지현이는 인파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여자들이 남자들을 혼내며 말했다.

2세에 탈출을 감행한 지현이는 한 살 더 먹고 더 똘똘하고 계획적으로 가출했다. 엄마가 동생과 병원에 가 있던 어느 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3세 지현이는 아빠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아기에게 “니 그럴 거면 집 나가!”하고 소리를 쳤는데 울음을 터트리고 포기를 선언할 줄 알았던 지현이는 씩씩하게 집을 나갔다. 동생을 엎고 골목길을 오르고 있던 엄마의 눈앞에 고무신을 신은 웬 아기가 씰룩씰룩 걸어 내려오고 있었는데 3세 지현이었다. 엄마는 황당한 얼굴로 “니 어디가노?” 물었고 지현이는 당당하게 “아빠가 집 나가라 했다.” 하고 대답을 했단다. 지현이 뒤에는 아빠가 몰래 숨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집 나간 지현이를 다시 키우기 위해 데려온 엄마는 아기가 등에 짊어지고 있던 가방을 열어보았다.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손바닥만 한 배낭 안에 야무지게 똘똘 말아 넣은 바지 한 장과 운동화 한 켤레가 들어있었다. 3세 아기는 도대체 어디서 배웠길래 집을 나갈 땐 짐을 싸야 한다는 걸 알았을까? 더욱이 먼 길 떠나는 방랑객답게 신발 챙길 생각은 어떻게 한 거지? 엄마는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우리 가족 안에서 오랜 시간 회자되어 왔는데 들을 때마다 재밌고 3세 지현이가 너무 멋져서 들어도 들어도 계속 듣고 싶었다.

이후 똘똘하고 강단 있게 자란 지현이는 지독하게 성깔 있는 사춘기 중학생이 되었다. 온갖 말썽을 피우며 엄마와 전쟁을 벌이던 중 청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가 “알았다! 내가 집을 나가면 되잖아!(사실은 이것보다 더 심하게 말했던 것 같다)” 하고 집을 나가려다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뺨을 맞았다. 때린 엄마도 놀라고 맞은 나도 놀라고 지켜보던 동생도 놀라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게 세 번째 가출 시도이자 미수 사건으로 종결된 가출이었다.

조카처럼 포동포동 귀여운 아기였던 나는 내 나름대로 잘 자랐지만 엄마의 염원대로 자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엄마는 열심히 우리를 키워냈고 빠듯한 살림에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모유를 먹이고 씻기고 설사병에 걸린 아기를 매일 같이 한 시간도 넘는 거리에 있는 병원에 데려가며 키워냈는데 큰소리를 치고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하는 걸 엄마는 꿈에서라도 상상한 적 없었을 것이다. 온 정성과 사랑을 쏟아 키워도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정성과 사랑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에게 똑같이 한다. 어쩌면 똑같이 당하기도 하려나? 그래서 철이 들고부터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니도 니랑 똑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라”다. 내가 생각해도 나 같은 딸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나는 엄마만큼 절대 못 할 거야.

지금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서 받은 무한한 사랑을 조카에게 ‘내리사랑’ 중이다. 내가 베푸는 사랑의 방식은 내가 받았던 사랑의 모양과 닮았다. 내가 아는 사랑은 내가 받았던 사랑이니까. 조카가 어떤 목소리를 갖고 어떤 당당함과 똘똘함과 성깔을 갖게 될지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와, 고모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은 예정되어 있다. 몇 번 가출해도 우리는 영영 이 아기를 사랑할 것이다(가출하기만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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