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연봉협상(X) 연봉통보(O)

협상이라 적고 통보라 부른다.

by Eric Kim

"회사에서 점심을 안 줘서 힘들지는 않고?"

"하하.. 네..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더라고요."

소름이었다.

회사 입사 면접 때, 점심은 주냐는 내 질문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다.




말로만 듣던 연봉협상.


당시 나는 입사한 지 반년 정도밖에 안된 때였기 때문에 해당사항은 없을 것이라 짐작을 하였다. 하지만 인생 첫 연봉협상이라는 사실은 나를 조금 설레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처음으로 사장님과 1:1 독대를 하는 자리였고, 내게 무언가를 물어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동안 무엇을 배웠고, 하였는지 정리하여 보기로 하였다.


정리하려 패기 좋게 펼친 A4용지에 두 줄을 쓰자 더 이상 쓸 게 없었다.

반 년동안 일을 배우는데 급급하고, 내가 친 사고들을 수습한 기억밖에 없었다.

이왕 할 말도 없고 어차피 '협상'은 존재하지 않을 거 같으니 마음 편하게 사장님 방으로 들어가자며 A4용지를 찢어버렸다.


전 직원이 순서대로 사장님 실에 갔다 오기 시작하였다.

한 명이 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그 사람의 손가락은 자판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아마 협상을 하며 있었던 대화나 결과를 친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틀림없다.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인 회사에서 친하게 지낸 사람은 N대리님 뿐이었던 나는 사소한 정보들이라도 얻기 위하여 귀를 토끼처럼 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나보다 1주일 먼저 들어온 동료가 사장님실에 갔다 와 자기 사수와 대화하는 내용이 내 귀에 들렸다.


"많이 올랐어?"

"오르긴 올랐는데.."


나와 1주일 차이나는 동료가 연봉이 올랐단다.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하지만 말 끝을 흐린 걸 보니 기분이 이내 찜찜해졌다.


그렇게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간 사장님실.

나를 보자 반갑다는 웃고 자리에 앉으라며 사람 좋은 '척'을 하신다.

아마 1년 중 모든 직원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이는 때가 이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잘 배우고 하고 있지?"

"네"

"회사에서 점심을 안 줘서 힘들지는 않고?"

"하하.. 네..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더라고요."


소름이었다.

회사 입사 면접 때, 점심은 주냐는 내 질문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다.


"이게 너의 첫 협상 자리인데 네가 아직 1년이 안됐잖아.."


이 첫마디를 듣는 순간 동료가 말꼬리를 흐렸던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그 뒤로도 수많은 대화를 하며 '네가 아직 1년이 안됐잖아'라는 말을 수시로 하셨고 10번째가 넘어갈 때부터는 횟수를 세는 걸 포기하였다.


나의 첫 연봉협상의 기대와 설렘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기대도 안 하고 들어온 자리였지만 '네가 아직 1년이 안됐잖아'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1년이 안됐다는 말을 몇 번이나 더 하려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내게 새로운 연봉이 적힌 계약서를 내미셨다.

거기에는 3% 인상이 적혀있었다. 그래도 오르긴 올랐다.

안 올려줘도 할 말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인간미가 있는 사장님이었다.


"영어가 필수인데 어떻게 계속 발전시킬 생각인지, 영어 시험 같은 걸 본다면 등록비는 1번 정도는 회사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데"

"저는 뭔가 보여주기 식 영어 점수를 위해서 시험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데? 다음 연봉협상 때 영어로 하는 거 어때? 네가 날 설득하면 연봉이 올라가는 거고 아니면 실패하는 거고"

"네 좋습니다"


당시의 나는 정말 다음 날이라도 퇴사할 생각으로 이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 두 번째 연봉협상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두 번째 협상을 앞두고 있다.

정말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다.


돈 많이 안 주면 퇴사한다고 협박이라도 해야 하나..

근데 퇴사는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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