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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유효함에 대하여

by 빈공간의 미학

1. 제가 평소 좋아하는 단어가 몇 개 있는데 그중에서 "유효하다"란 단어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유효함'에 대해서 생각하면 나에 대해 성찰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2. "유효하다"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본래의 효과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래의 효과가 있다'는 말은 지금은 효과가 있지만 장래에는 효과가 없어질 수도 있으며, 본래의 효과가 아닌 다른 효과가 있는 상태일 수도 있음을 내포합니다. 저는 이것을 "무효하다"라고 통칭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유효한 것'은 현재 특정한 효과를 내고 있지만 그것이 앞으로도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고 보장해주지 않으며 언제든지 '무효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3. 유효함은 특정 시점에 한정되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지식, 경험, 능력, 판단 등은 언제든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나의 경험은 유효한가?", "나의 지식은 유효한가?", "나의 태도는 유효한가?", "나의 관계는 유효한가?", "나의 판단은 유효한가?". 상황과 조건 등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여전히 유효한 것들이 있는 반면 이미 무효한 것들과 무효해질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4. 유효함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 몇 가지 따라오는 삶의 좋은 장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타인의 비판을 수용할 용기가 생깁니다. 사람은 타인에게 엄격해도 자신에게는 관대해지는 법입니다. 누군가의 비판에 거부감이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내가 가진 것들 또는 나의 행동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타인의 비판이 '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유효하지 않음에 대한 비판'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비판을 수용할 용기를 줌과 동시에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둘째,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특정한 이유로 나의 사고와 행동이 정해지면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것을 경로의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로의존성을 끊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 경로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만 다른 경로로 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과 이뤄온 것이 유효한지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경로의존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얻게 됩니다.


셋째, 타인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누군가와 대화하면서도 벽에 대고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는 상황이 많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런 주장을 계속해서 하는지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저 사람의 주장이 애초에 말도 안되는 것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원래 유효했을 수도 있었던 주장이 시대와 상황의 변화 과정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태로 변했음을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주장을 왜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게 됩니다.


넷째, 지속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지식, 경험, 관계, 판단들은 시시각각 유효성을 잃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배우고 적용하면서 유효한지 검증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철회합니다. 배움이 당연한 삶의 과정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5.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솝우화집에 있는 일화입니다. 어느 허풍 떠는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로도스'라는 그리스 남동쪽 먼 곳에 있는 섬에서 멀리뛰기 시합에 참여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어마어마한 거리를 뛰었다고 자랑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뛰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로도스에 자신의 증인들이 여럿 있다고하며 그들이 오면 증명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걸 지켜보던 구경꾼 중 한 명이 말합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png

이 일화는 과거의 영광과 기억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현실에 충실하여 자신을 증명하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우리는 때로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고 그 기억으로 현재를 날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성숙해진다는 것은 삶에 유효함이 있음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통해 현재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 아닐까요? 제 자신에게 이야기해 봅니다. "나의 현재는 유효한가?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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