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의 연애는 쉽고 내 연애는 어렵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후기

by 빈공간의 미학

1. 색함과 서투름

요즘 정말 많은 연애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나는 solo, 돌싱글즈, 환승연애, 하트시그널, 솔로지옥 등 40개가 넘는 연애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거나 방영했었다고 합니다. 최근 재미있게 본 프로그램 하나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 Netflix 시리즈이고,, 제목은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입니다.(이하, '모태솔로') 프로그램의 형태는 여느 연애 프로그램과 비슷합니다. 다만, 구성원들이 '모태솔로'라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바로 출연자들이 '모태솔로'라는데 있습니다. 잘 생기고 예쁜 친구들인데 그들 사이에서 흐르는 어색함과 서투름이 포인트입니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내내 20대 초반 이성 앞에서 뚝딱거리던 나, 허세부리던 나, 술부심부리던 나, 선긋기 못하고 욕먹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온 출연진들의 나이는 26살부터 30살 사이입니다. 출연자 중 [민홍]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는 10대와 20대 초반에 겪는 감정들을 지금에서야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은 이제야 느끼고 있었습니다. 겉모습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어색함과 서투름이 관찰자들에게 쾌감을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을 떠올리면서 아내와 함께 과거의 구남친, 구여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었네요.


2. 건 없는 이성적 끌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애 프로그램은 '나는 solo'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보지 않지만 최근까지도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solo'의 가장 큰 재미는 외적 모습이 주는 이성적 끌림과 현실적 조건 사이의 괴리에서 서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모태솔로'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습니다. 조건이고 뭐고 서로 자신이 끌리는 사람에게 관심을 표시합니다. 아직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출연진들은 서로 조건에 대해서 잘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그냥 너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왜 있는지, 없다면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처음 시작하는 연애의 기억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건을 따지지도 않았지만 현실적 조건이 장벽이 되면 극복해 버리겠다는 패기가 있었죠. 출연진들이 보이는 상대의 조건에 대한 무관심은 그 시절 순수했던 기억을 다시 불러왔습니다.


3. 연애경험과 성숙함의 상관관계

우리는 연애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연애 박사가 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을 왜 해", "지금 고백하면 안 되지", "본인의 상황을 너무 모르네", "상대방 마음도 고려해야지" 등 저도 보면서 온갖 훈수를 뒀네요. 원래 남의 연애는 쉽고, 내 연애는 어려운 법입니다. 저를 포함한 연애 박사님들의 말만 들으면 우리는 상대방을 너무 잘 배려하고 이해하기에 세계의 평화가 도래할 것만 같습니다. 현실은 본인들도 어려움의 연속이면서 말이죠. 단순히 연애의 횟수와 경험이 좀 더 좋은 연애, 성숙한 사랑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방영되었던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30대, 40대 할 것 없이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상처되는 말들과 행동으로 마무리한 모습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 방송이 끝난 뒤까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볼썽사나운 모습들도 있었죠. 저는 '모태솔로'의 마지막을 보면서 연애 경험과 성숙함 간의 상관관계는 전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도]가 자신의 아픔을 정리하는 모습, [민홍]이가 정중하게 자신의 느낀 불편함을 상대에게 말한 방식, [재윤]이가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고 상대에게 마음을 표현한 용기를 보았을 때, 한 개인의 성숙은 연애 경험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4. 모든 경험에는 시작이 있다

'모태솔로'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느낀 감정은 불안함과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들이 보이는 서투름과 어색함에서 저의 20대가 떠오르면서 같은 실수들을 하지는 않을까 불안했고, 20대 중반이 넘은 출연자들이 나름의 이유로 연애를 하지 못하고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바보 같다고 하면서 남들은 다하는 연애와 사랑이 본인에게는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연애하고 사랑하는 건 나이와 상관없이 어려운 일 같습니다. 연애와 사랑은 언제나 상대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나 자신이 하나의 세계이듯 연애와 사랑의 상대는 또 다른 하나의 세계입니다.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만난다는 일이 어떻게 쉬운 일일 수 있겠습니까? 연애와 사랑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시해도 됩니다. 그는 상대를 생각하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힘든 일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이제 첫 시작점에 있을 뿐입니다.


5. 출연자들에 대한 응원

점점 더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늦어지는 것을 넘어 포기하는 경우들도 많이 생기고 있죠. 출연자분들도 각자 연애를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이유들이 있더군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다가 못했던 경우도 있고, 왕따와 스토킹 같은 트라우마로 인한 두려움, 부모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대인 관계 형성 자체의 어려움과 같은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감정마저 통제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환경이 안타깝습니다. 연애와 사랑이 성공과 실패로 치환되는 지금의 상황이 많은 이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연애와 사랑은 결과가 아니며, 나 자신과 새롭게 맞이하는 세계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않되 조심스럽게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결말이 아니라더라도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출연진 분들이 자신들의 어색함과 서투름을 보며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걸 바라보는 우리도 너무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분들을 함께 응원하면 좋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삶에 철학과가 준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