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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28. 2022

<육사오(6/45)> 리뷰

그래도 본전은 보장


<육사오>

★★★


 2007년 <날아라 허동구> 이후 연출작으로는 무려 15년 만에 돌아온 박규태 감독의 신작, <육사오>입니다. 설정과 포스터만 보면 언제 스쳐지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처럼 보이지만, 어째 시사회 입소문이 조금씩 올라오더니 개봉 전날이었던 지난 23일은 기어코 전체 예매율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경쟁작들과 덩치를 비교해 보면 엄청난 성과죠.



 우연히 1등 당첨 로또를 주운 말년 병장 천우. 심장이 터질듯한 설렘도 잠시, 순간의 실수로 로또는 바람을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갑니다. 학창 시절의 머나먼 기억들을 쥐어짜 로또가 날아갈 자리를 계산한 천우는 철조망을 넘어 북으로 향하지만, 이미 그 로또는 북한 병사 용호의 손에 들어간 이후였습니다. 무려 57억짜리 로또 용지 한 장을 둔 남과 북의 예상치 못한 대치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1등 당첨 로또가 북한으로 넘어간다니, 로또와 관련된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면 한 번쯤은 떠올릴 법한 발상입니다. 본인이 직접 구매한 로또라면 구매 증빙이든 뭐든 어떻게 잘 해서 찾아볼 수 있겠지만, 주운 로또가 넘어갔으니 구제할 방법은 직접 넘어가는 것뿐이겠죠. 그냥 넘어가기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그걸 하필 북한 병사가 주워 협상을 요구한다면 절로 한숨부터 나오겠습니다.



 코미디로 시작해 코미디로 달려 코미디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같은 코미디 장르의 영화라고 해도 그 농도나 활용법이 천차만별인데, <육사오>는 개중에서도 코미디의 비중과 역할이 상당히 큽니다. 대부분의 상황은 코미디를 양념으로 가미하기보다는 애초에 뼈대와 재료부터 코미디 연출을 위해 준비되어 있죠. 모든 것이 시작된 대전제부터가 그러니 따질 것도 없습니다.


 출발점이 가볍고 유쾌하니 꽤나 과감합니다. 조금이라도 진지한 영화였다면 설득력을 깎아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그저 조금 더 많은 웃음을 노릴 수 있기에 집어넣습니다. 천우와 용호뿐이었던 대립각이 3대 3으로 불어나고, 커질 대로 커진 판은 남과 북의 병사가 자리를 바꾸는 막장 상황까지 돌진합니다. 당연히 말도 안 되지만, 거기서 나오는 웃음의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그렇게 하길 선택합니다.



 의외로 타율이 나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영화다 보니 최신 트렌드를 바짝 반영하지는 못해도, 여느 실망스러운 코미디 영화의 낡은 웃음보다는 훨씬 앞서가죠. 일차원적인 몸 개그나 화장실 개그 대신 캐릭터의 특성이나 영화적 상황을 활용한 웃음이라 보는 맛이 있습니다. 군대를 무대이자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젊은 남성 관객만을 노리지 않는 것도 큰 특징이겠구요.


 고경표, 이이경, 음문석, 곽동연, 이순원, 김민호 등 주요 출연진들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역할을 해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보통 비슷한 영화들엔 홀로 자신의 색을 버리지 못해 다른 캐릭터들은 물론 영화 전체에서 겉도는 인물이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인데,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파악한 영화답게 이런 면에서도 누수 없이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죠.



 다만 설정으로 시작 단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들이 그렇듯, <육사오> 또한 벌인 판을 제대로 수습할 방책을 찾지 못합니다. 남과 북이 57억짜리 로또를 두고 대치하는 데까지는 흥미로우나, 이 이후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예측 가능하거나 말이 안 되는 실망스러운 선택지뿐이죠. 그를 타파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말이 안 되는 무리수가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내길 말 그대로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웃음을 위한 무리수와 무리수가 겹치고, 타율이 좋다고는 해도 딱히 오래가지는 못하는 웃음이 잦아든 뒤 남는 것은 구멍이 숭숭 뚫린 각본뿐입니다. 이걸 들고 할 수 있는 최후의 해피엔딩이라곤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인물과 상황이 서로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 그림이죠. 사실 남북 군사분계선과 군대 조합이면 목숨이 오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지라 더욱 급작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웃으려면 내려놓을 것이 많은 영화지만, 그렇다고 그 이상을 희생해야 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도입부 내내 스스로가 그런 영화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 작품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어렵죠. 보여주는 대로 보기만 하면 웬만한 최근 영화들 이상의 장르적 재미를 보여주는 것도 분명한 성과겠구요. 이처럼 좋은 의미로 기대를 벗어난 영화도 정말 오랜만이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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