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울호수공원에서 작은 파쿠르 모임을 가졌다. 많은 어르신들이 가을의 끝물을 아쉬워하며 산책할 때, 나를 비롯한 파쿠르 동료들은 신나게 이곳저곳을 점프하고 움직임을 탐색했다. 어르신들이 지나가면서 "야마카시다!"하고 알아보기도 하고, 다른 어르신 무리들은 "어이 젊은 청년~ 이걸 뭐라고 불렀더라?" 하고 질문하셨다. 파쿠르를 보면 혼내거나 위험하다며 만류하는 어르신들이 익숙했던 내게 이런 질문과 관심은 생경한 일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와 그 윗 세대까지 파쿠르를 알아볼 정도면 파쿠르를 한국에 널리 알리겠다는 파쿠르 커뮤니티와 트레이서들의 오랜 열망은 다 이루어진 듯 하다. 이제 나는 뭘 해야할까?
아는 단계를 넘어서 사람들이 파쿠르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파쿠르 문화 바깥에 있는 일반인들이 이 글을 읽으면 '나 보고 건물 사이를 목숨걸고 뛰라는 소리인가?' 하고 반응할 것을 예상해 보면, 내가 뭘 해야하는지 방향이 보인다. '파쿠르를 널리 알려야 한다' 아니, '나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이념으로 파쿠르 세계의 다양한 모습과 색깔들을 소외시켜왔던 사냥꾼 기질을 조금 내려놓아야지. 이런 무거운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갑자기 어깨 너머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김지호 코치님이 파쿠르할 때 웃는 모습이 참 존경스러워."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때, 한 없이 즐겁게 웃는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의 웃음에 관하여 흥미롭게 생각한다. 아마도 고통스러운 육체적 훈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거나 오랜 시간 똑같은 웃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내가 처음 웃음을 짓기로 결심했을 때는 타인으로부터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는 겁쟁이였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주인공처럼, 어떠한 갈등도 없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적어도 웃는사람 얼굴에 누구도 침뱉지는 않을 테니까. 분노, 정색, 경멸, 무시 등 그렇게 나의 모든 감정들을 웃음 하나로 숨겼다. 그렇게 억지로 웃음을 짓게 되었을 때,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 모든 상황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도,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도 웃음으로 인내하면 좋은 경험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나는 어떤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웃었다. 의식적으로 웃어왔던 나에게 무엇이 자연스러운 웃음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질쯤, 파쿠르를 시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활짝 웃고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웃음뿐만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억압해 왔던 행동, 생각까지 활짝 열었다. 아직 나의 일상에는 인위적인 웃음과 자연스러운 웃음이 공존하지만 적어도 웃음의 힘을 안다. 스스로 웃을 수 있는 자쾌(自快)야말로 오랫동안 파쿠르에 정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내가 즐거운 일은 다른 사람들도 즐겁다. 파쿠르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자쾌를 힘으로 삼아 큰 포부를 갖는다면, 변방에서 중심을 장악하는 힘이 먼 꿈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