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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13. 2023

1. 강남옥상을 뛰어넘기로 결심했다.

 2019년에 릴리즈된 영국 @storror 팀의 Roof Culture Asia 다큐멘터리는 당시 나에게 충격과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게 했다. 루프컬쳐 아시아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4대 도시 - 싱가포르, 홍콩, 서울, 도쿄의 빌딩 옥상들을 아무런 도구나 장비 없이 맨몸 하나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팀원들 간의 인간애,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성장 마인드, 어떤 난관에도 꿈을 성취하기 위해 인내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감동적인 이야기. 그리고 옥상이라는 폐쇄적이고 위험한 공간이 인간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예술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장면들은 숭고함 마저 느껴졌다. 

 

 이 다큐멘터리는 국내 파쿠르 커뮤니티와 트레이서들 사이에서도 오랜 시간 회자되었으며, 스토러 팀이 방문했던 서울의 옥상들을 직접 답사해보는 것이 한 동안 유행이었다. 일종의 팬심으로 스토러의 발자취를 쫒는 친구들도 있었고, 거리와 높이 등 물리적인 실제를 경험함으로써 스토러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자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후자에 속했다.  답사를 하면서 그들의 탁월한 신체능력과 정신력, 평범함을 넘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창조성에 경외감이 들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내가 한국의 장소들을 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타국 친구들이 와서야 알게 되었을까?' 하는 반성하는 마음이 커졌다. 일종의 서세동점의 역사가 파쿠르라는 서브컬쳐에서도 재현된 샘이다.  


 대개 사람들은 스토러 팀의 위험천만한 옥상 점프가 건물주와 시민, 아시아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판단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인간은 어떤 탁월한 현상과 진보적인 모험을 경험할 때 종종 두려움에 휩싸여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시전한다. 나는 작은 파쿠르 세계에서 스스로 지식과 문화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남 따라하기, 수입에 의존하는 종속적인 나의 한계를 보았다. 파쿠르는 프랑스에서 시작됐지만 파쿠르 세계를 이끌고 있는 생각(철학), 제도와 시스템, 물건 등 파쿠르 관련 산업 전 분야에 걸쳐서 내가 최초로 시도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지금 누리고, 생산하고 있는 것들은 이미 누군가 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CTRL+C & CTRL+V 습관에 각주와 주석을 단 수준이다.  스스로 자기검열을 해보자면, 그동안 한국에 처음으로 파쿠르 교육체계와 지도자과정을 보급하고 코치들을 육성해 왔다고 자부했지만, 이것조차 영국, 덴마크, 프랑스 등의 파쿠르 선진국의 이론과 지식을 열심히 수입해 온 일이다. 파쿠르 제너레이션즈가 그러하며, ADAPT Qualifications 자격과정도 그러하다.  


 파쿠르 수련자로서도 지난 17년 동안 파쿠르 기술과 움직임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창조한 것이 없다. 파쿠르의 언어와 기술 이름도 영어와 불어에 종속되어 그대로 쓰고 있다. 언어에 종속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인데, 이름을 모르는 움직임이 발견되면 스스로 이름 붙일 생각보다도 서양에서 부르는 사례부터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사례가 없으면 보편적이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어 실천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은 사례가 없는 영역으로 건너가는 일인데 사례나 도망갈 안전지대부터 찾으려하니 새로움이 싹트지 못한다.  그나마 외국에서 수입을 그만두고 스스로 만든 것이 하나 있다면 파쿠르 신발 브랜드 정도(?) 나는 스토러처럼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최소한 그들의 수준만큼 상승하여 나의 고유한 길, 독립적인 사유를 생산해내고 싶은 것이다.




강남 옥상을 뛰어넘기로 결정한 것은 2020년 1월의 일이다. 당시 나는 2020년 4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국제체조연맹의 파쿠르 세계 선수권 대회에 한국을 대표하는 스피드코스 선수로 출전을 앞두고, 남산에서 정기적으로 체력훈련 중이었다. 하지만 대회가 코로나 인해 무기한 연기되면서 나는 ‘목표’ 중심적인 삶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더 경험하게 됐다.  내가 20살이었던 시절,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맨파워갭(Manpower gap)을 성공했을 때 찾아온 공허함과 무기력함은 목표가 성취되고 난 다음의 삶을 상상해보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내공이 있었는지 금새 기운을 차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대회와 선수라는 타이틀을 위해 파쿠르를 시작한적도, 연습한적도 없었다. 자기 밖에 있는 외부의 가치들을 획득하는데 평생을 바치는 세상 사람들(모두가 그렇다는것은 아니다)의 속물적인 태도와는 다르게 나는 파쿠르는 순전히 내가 좋아서 시작했고, 좋아서 연습했다.  나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정해진 규율과 역할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되려, 존재함은 정해진 틀을 깨고 밝혀지지 않은 모호한 영역으로 건너갈 때만 충격적인, 놀라운 현상으로 드러난다. 

 나는 왜 강남 옥상을 점프하려 하는가? 내가 가장 잘하는 '따라하기'를 통해 적어도 스토러(Storror) 정도의 시선으로 세계를 사유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매일 밤 강남옥상을 뛰어넘는 상상으로 인해 잠을 설치게 되면서 심사숙고 끝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닿게 되었다.  


 파쿠르는 드넓은 세상에서 하나의 장르에 불과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Way of life' -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종종 우리는 시스템과 짜여진 판 속에서 일상을 보내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유일한 존재인지 쉽게 망각한다. 그런 망각 안에서 자신과 타인,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당연한 것, 지루한 것, 무기력한 것, 공허한 것으로 종속된다. 그렇게 자신의 유일함을 상실한 인간은 타인, 세계와의 관계맺음에 있어서도 호기심, 존중, 의미를 상실한다.

 따라서 파쿠르는 나에게 있어서 자기 존재의 유일함을 회복하는 수단이다. 유일함을 회복한다는 의미는 자신 뿐만 아니라 세계가 쉼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야말로 선고된 종말인 동시에 내면의 빛, 고유함을 증거한다. 

 알을 깨고 나온 새는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작은 계곡에서 태어난 물고기는 깊은 바다 속 심연으로 헤엄친다. 도시의 부품에 불과했던 나는 용기내어 옥상을 점프한다.  

 내 안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동시에 내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자. 요동치는 두려움, 심장의 고동소리와 고통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역동성을 반증한다. 내가 되고싶은 내 자신을 향해 건너가자.




강남옥상에 올라섰을 때,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탁 트인 시야는 강남 테헤란로를 바삐 오가는 행인들에게 발각되기 좋은 위치였고 빌딩 경비가 언제 옥상으로 올라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주변을 빠르게 돌아보고 내가 해야할 일을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위험평가부터 시작했다. 전력으로 질주해야하는 구간은 좁고 먼지 가득한 철판으로 되어있어 준비한 수건으로 깨끗이 닦고 도약지점에 미끄럼방지 테이프를 붙였다. 달리는 구간들이 견고한지 꼼꼼히 확인했다. 건너편 빌딩에서 카메라를 설치하는 의렬이가 왠지모르게 부러웠다. 저곳이 오늘 내가 건너가야할 곳이기 때문이다. 곧이어 응원하러 온 파쿠르 동료들도 건너편 빌딩 옥상에 올라와 서서히 얼굴을 비췄다. 그들의 얼굴에서 지금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대와 호기심.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그 양편의 감정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할 수 있는 용기.  나는 여기에 한가지 더 트리거(Trigger)를 만들었다. 내 가방과 스마트폰, 카메라를 건너편 옥상으로 던졌다. 지금 내가 서있는 빌딩은 경비의 통제로 통행이 막혔기 때문이다. 이제 내 가방과 짐을 찾으려면 건너편으로 점프해야한다. 점프를 해내지 못하면 옥상에 그대로 갇히거나 경비에게 잡힌다. 옥상 건너편으로 가방과 카메라를 던졌다.  


도약지점 먼지 청소 & 테이핑


 이제 남은 것은 내 점프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적절한 워밍업과 점프 거리 및 높낮이에 대한 친밀화작업, 그리고 충격을 대비한 착지법 복습이다. 평소 자주하던 네발 움직임을 바탕으로 협응 및 가동성을 확보하고 프리시전 점프, 러닝점프로 심박수와 체온을 끌어올렸다. 마지막으로 바닥에 내 신발 사이즈(265mm) 기준으로 14발 거리를 표시해두고 그 선을 뛰어넘는 러닝점프를 반복했다. 강남옥상 뛰기 전 워밍업  강남옥상은 약간 높은 지점에서 낮은 지점으로 도약하는 도전으로, 약 17발 거리인데 맨땅에서 14발 정도는 쉽게 넘어가야 안전하다. 여기서 안전이란, 시도횟수와 달성횟수가 100%로 일치해야한다는 의미다. 예를들어 100회 시도했을 때 100회 성공해야 자신의 기술이 '안전'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워밍업을 끝내고 옥상 난간에 올라섰다. 이제 최상의 점프력을 끌어올리고 정확하게 도약지점에 발을 배치하기 위한 스텝 계산에 돌입했다. 지난 1년 동안 이 구간을 달려서 도약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했다. 지금 이 순간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상상만해도 실제로 뛰는 것 처럼 심박수가 올라가고 잠을 자다가도 실제로 팔다리가 움직여 깰 정도로 상상했다.  


 어제 밤 늦게까지도 스토러 팀의 영상을 반복재생하면서 그들의 발 배치와 스텝 수, 보폭, 팔다리 협응, 자세를 분석했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내가 상상한대로 달리는 구간을 정확하게 발을 배치할 수 있었다.  준비된 나는 사전에 약속한대로 의렬에게 동그라미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달리던 도중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바람에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높은 빌딩 옥상에 올라서서 도약지점으로 뛰어가면 갈수록 점점 더 낭떨어지의 높이가 시야로 들어오면서 건너편 착지지점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착시현상이 나타났다. 여러번 강남 옥상을 답사하면서 익히 예상했던 것이지만 막상 점프하려 하니 심리적 압박이 상당했다. 지금 이곳은 사소한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곳은 실패가 없는 곳이다. 삶 아니면 죽음만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전력으로 달리다가 두려움이 엄습하여 중간에 다리를 풀거나 공중에 떴을 때 멈칫거리는 행동이다. 한 지점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건너편으로 한번에 도약하는 제자리점프와는 다르게 달리는 구간이 긴 러닝점프는 이런 사고가 흔히 벌어진다. 첫발을 강한 확신을 갖고 내딛더라도 두번째, 세번째 발을 내딛여 감에따라 불안과 두려움이 침투하면서 에고와 타협하게 된다. 두려움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바닥에서 러닝점프를 연습했다가 다시 옥상 난간으로 올라와 스텝을 밟아보는 행위를 몇번 반복한 끝에 이런 행동들은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극한의 긴장감 속에서 잠깐 찾아오는 무심한 몰입의 상태만이 시간의 제약을 벗어난다. 출발지점에 올라서서 무릎을 꿇고 잠시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신, 아내, 가족, 친구, '나' 자신에게도 의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잠깐이지만 생각이 사라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무겁고 꺼림칙한 두 팔로 동그라미 신호를 보냈다. 


 도약지점까지 망설임 없이 뛰어갔다. 달리면서 최선의 점프를 위한 탄력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느낌이 발바닥에서부터 어깨까지 느껴졌다. 도약지점이 가까워졌을 때, 잠깐이지만 앞으로 뻗어가는 추진력이 강해서 더이상 멈추거나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능적으로 힘차게 발을 도약했다. 


도약의 순간


눈은 이미 건너편 착지지점을 보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 보다 높이, 멀리 점프하는 바람에 발에 상당한 충격이 전해졌다.(다쳤다는 의미는 아니다) 동시에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이 복받쳐 올라왔다. 예술가들은 어떠한 해석, 말로도 그 대상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때 '숭고(Sublime)'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리기 마련인데 이제 왜 그런지 몸으로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Slow Motion
Insta 360 One R


지금 이 순간을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파쿠르 동료들의 거친 환호소리와 기쁨에 정신을 차렸다. 눈시울이 붉어진 나는 지난 1년 동안 단 한번의 점프를 위해 감수해야 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강남옥상 점프보다도 강남옥상 점프를 수 없이 머릿속으로 반복해야만 했던 1년간의 고통에서 드디어 해방됐다.


[강남 루프갭 Ep.최종화]

https://youtu.be/jllA3KeFWuI 




“강남옥상을 무슨 생각으로 뛰었나요?”


이 도전은 '생각'이 있으면 죽는다. 옥상을 점프하려는 상황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생각은 그 기저면에 두려움이 뿌리내리고 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생각도 도돌이표처럼 두려움으로 귀결된다. 

 두려움의 작용은 '에고(Ego)'가 하는 일이다. 에고는 자신의 생존의 질과 양을 확장시키는데 최적화되어있다. 에고의 속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타인과 구분지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 우월감을 확장시키려 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넘어선 행위를 해야하거나 위기를 경험할 때, 에고는 생존 위험으로 인식하고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일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은 무엇이 위험한지 알려주는 청신호(생존을 위한 자기보호)지만, 문제는 극한의 위험에 직면하게 됐을때, 에고의 배타적인 성질은 폭력으로 나타난다. 나는 에고로 인해 파쿠르를 하다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은 트레이서들을 종종 본다. 사람들의 칭찬과 시선을 의식해서 점프하다가 심하게 다친 트레이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면서 유튜브와 SNS의 영향력을 점점 늘리기 위해 스스로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다 다치는 트레이서, 모임에서 질투 혹은 타인과 경쟁의식을 가지고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다치는 트레이서들... 하지만 옥상의 아찔한 높이와 압박감은 강력한 에고 마저도 들어설 틈 없이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옥상의 위엄 앞에서 자신을 수식했던 모든 것들이 해체된다. 옥상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얼마나 큰 야망과 꿈을 가졌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얼마나 높은 지위를 가졌고, 얼마나 많은 돈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너편으로 건너가려면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여기서 '나'는 세계와 연결된 소중한 존재지만, 동시에 해체를 경험하면서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본질'을 부정하게 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법칙과 영원불변의 이데아가 있어서가 아니라 쉼없이 변화하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만 '나'라고 확인될 뿐이다. 정해진 '나'는 없다. 모든 존재는 입체적이고, 다양한 맥락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세상에 어떤 의미, 가치도 입혀지지 않고 던져진 '나'는 그 자체로 불안하고 공허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가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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