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마카시>를 보고 파쿠르에 입문하다.
길거리에서 파쿠르를 하고 있으면 행인들에게 “파쿠르를 왜 하나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대체로 “그냥 재밌어서요.”라고 가볍게 넘기지만, 나는 속으로 되묻는다. “당신은 언제 파쿠르를 그만두었나요?”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라. 혹은 주변의 아이들을 관찰해 보라. 똑같은 코스로 걷는 아이들은 없다. 직진하면 빠른 길을 지그재그로 뛰어다닌다. 앞서 가는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가 요리조리 피하는 놀이를 즐긴다. 걸어야 하는 곳에서 뛰고, 뛰어야 하는 곳에서 난다. 담장 위를 걸으면서 환호하고, 놀이터에서는 가장 높은 곳을 향해 겁없이 올라간다. 지형지물을 고정관념없이 겁없이 즐기는 감정. 그것이 파쿠르의 본능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 본능을 멈췄을 뿐이다.
공간을 이곳저곳 넘나다는 '자유'는 욕망을 마음대로 내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길 줄 아는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레이서(Traceur, 파쿠르 수련자)들이 파쿠르가 자유롭다고 외치는 이유는 자신의 껍데기 벗겨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속살이 드러난 자신은 어느새 미소짓고 있다. 즐거움을 알게된다.
나는 파쿠르를 왜 할까? 내가 파쿠르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얘기해 보고 싶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친구가 내게 영화 <야마카시>를 소개했다. 프랑스에서 2001년에 개봉한 영화 야마카시는 한국에 2003년에 개봉했는데 영화 개봉 이후 몇년간 청소년들 사이에서 ‘야마카시!’라 외치며 책걸상을 뛰어넘는 것이 일상일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끈 영화다. 그 영화가 내 운명을 바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야마카시>는 가난하고 병든 한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파쿠르 능력을 활용하여 부자집을 털어 병원비를 마련하는 서양판 활빈당 이야기다. 그런데 홍콩 무협영화에서 와이어로 소화해내야할 액션들을 특별한 장비 없이 맨몸으로 소화해내면서 전 세계 영화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더구나 영화 속 주요 출연자들은 배우가 아니라 실제 파쿠르의 창시자들이다.
캐스팅 배경도 흥미롭다. 뤽베송 감독이 파리 시내를 종횡무진하던 야마카시 멤버들을 우연히 보고 영화출연을 제안했다. 영화 시작부터 30층이 넘는 아파트 외벽을 맨손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과연 이게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지 놀라운 동시에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야마카시>라는 제목 때문에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일본 영화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후에 알았지만, 콩고 링갈라어(Lingala)다. 강인한 영혼, 강인한 육체, 초인을 뜻하며 링갈라 부족이 전쟁터에서 전투 시작 전에 외치던 구호였다. 파쿠르의 탄생과 성장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단어다.
영화 <야마카시>는 자유롭고 행복했던 초등학생 시절의 모험놀이를 떠오르게 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경찰로부터 쫓기면서도 건물과 건물 사이를 점프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에 불을 지폈다. 남들이 시키는대로, 정해진 대로만 살아온 나와 달리 그들은 진심으로 자유로워 보였다. 그렇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내 마음속의 영웅으로 자리잡았다. 파쿠르 창시자들과 야마카시 멤버들에 대한 덕질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