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림자

왕족인 궁예, 귀족 출신 견훤을 누루고 고려를 세운 왕권 뒤에는 아버지의 좋은 영향이었다.

by 김진혁

어버지의 그림자


가족이란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이다.

부모로부터 자유로운 자식은 없고 자식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밟고 자란다.


통일 신라 말기가 되면서 국가 기강이 무너지고, 체제가 와해되었다.

지방 호족 세력이 성장하여 조정의 힘은 미약해지고,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대표적 호적으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 후고구려를 세운 왕족 출신 궁예, 궁예의 부하로 활약하다가 쿠데타를 성공시켜 고려를 만든 왕건이다.


이 세 사람 중 나라를 통일한 사람은 좋은 부모 밑에 자란 왕건뿐이다.


궁예는 진골의 집안에서 태어나 ‘나라를 망칠 놈’이라는 예언과 함께 타고난 힘과 재주로 사람을 모아 당시 가장 강력한 국가 후고구려를 세웠다.

젖 먹이던 종이 궁예를 몰래 받아 들다가 잘못하여 손으로 눈을 찔렀고 그래서 한쪽 눈이 멀었다. 신체적 결함과 아버지 없이 태어나 버려져 자란 탓에 끊임없는 의심과 불신 포악한 성격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미륵으로 자처했으며, 관심법(觀心法)이라는 특유의 술책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결국 주변의 모든 인심을 잃고, 아내와 아들까지 죽이고 부하인 왕건에 의해 내몰려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후백제 왕인 견훤은 평민 출신이었지만 <삼국사기>에서 “체격과 용모가 웅대해지고 특이했으며, 기개가 호방하고 범상치 않아 호랑이가 젖을 먹여 키운 아이였다” 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자개는 상주 가은현 사람으로 농사를 지며 생활하다가 상주를 다스리는 장군이 되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한 아자개는 권위적이고 변덕이 심해서 아들과는 나쁜 사이 였다.아자개는 왕건에게 귀순하였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견훤도 왕권을 잘못 승계시켜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갇히는 꼴이 되었다. 아들을 적으로 만드는 신세가 된 그는 왕건에 의탁하며 울화병으로 죽게 된다.


고려를 창건한 왕건의 아버지는 달랐다.

[고려사]에는 왕건의 용모를 가리켜 “눈이 부리부리하고, 이마는 넓고 툭 튀어나왔으며, 턱이 살쪘다. 목소리가 우렁찼다.”라고 표현했다.


무역을 통해 송악 지방의 부자인 왕건의 아버지는 부잣집 도련님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과 지도력을 갖추도록 철저한 교육을 시켰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사람 사귀는 방법과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전해 주었다.


아버지의 좋은 영향으로 인해 왕건은 부하들과 두터운 신뢰를 쌓았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룬다.

훌륭한 위인들 뒤에는 언제나 아버지의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국인의 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