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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Jun 02. 2017

하루 만에 문학으로 치유하기

사람은 소소한 행복 그리고 사소한 사랑으로 산다.

 

하루 만에 문학으로 치유하기

사람은 소소한 행복과 사소한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문학은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해 줄 수는 없지만 상처 난 마음은 치유한다.

따뜻한 수필, 좋은 시 한편을 만나면 마음의 상처가 위로받고 깊고 맑은 행복한 생수를 마시게 된다.

     

현대인들은 많은 상처를 감추고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채 살아간다.

일중독, 수다, 음주, 도박, 취미생활을 통해 잊으려고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많은 학자들은 이런 기억을 잊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창의적인 일을 하라고 충고한다.



이렇게 볼 때 문학이란 자율성과 창의성을 지닌 다양한 시각의 표출이기에 상처 치유에 기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은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고 말했다.

문학작품속의 인물을 자신에게 투사함으로써 감정을 이입하고 정서적으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읽고 듣고 쓰고 토론할 때 문학의 메타포가 발휘되어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치유와 치료를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치유(Healing)와 치료(Therapy)는 병을 낫게 하는 치료라는 공통점이 있다.

치료와 치유는 같이 일어날 수도 있고 따로 일어날 수도 있는 차이점도 있다.

     

치유(治癒)는 치료(治療)하여 병(病)을 낫게 한다.

의학적 수술을 통하지 않고 어떠한 외부적 자극이나 요소들로 인하여 몸 스스로 병을 이겨내는 것이다.



약물에 의한 치료방법과는 다르고 진단이 아닌 영적인 진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객관적인 병적 진단 자료가 없고, 주관적 판단에 의한 병을 스스로 나아짐을 의미한다.

     

치료(治療)는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 다스려 낫게 한다.

메디컬적인 진단을 통해 치료하고 객관적인 검증자료를 증빙한다.

국내 의료법에는 의료면허가 있어야 치료할 수 있다.

     

치유와 치료는 배타적이기 보다는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한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문학이나 예술의 치유란 중추신경에 미치는 감정을 이완하고, 편안한 뇌파장과 적절한 호흡을 통해 생리적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는 인류문명을 구원할 세 가지로 시, 자전거, 도서관을 든다.

자전거는 화석에너지를 대체하는 환경적으로 중요한 교통수단이고,

도서관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성을 통해 병든 문명을 구원할 수 있다고 본다.


시는 문학 특성상 진보적이고 기타 학문과 융합하고 끝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후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을 용감하게 항해하는 개척자라고 본다.

     

인생의 항해 중 방향을 잃은 이라면 톨스토이의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를 곱씹으면 도움이 된다.


성공하기 위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 돈을 벌고 좋은 것을 사기 위해 노력하지만 정작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걱정과 보살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는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라는 글귀를 통해 허망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용기와 치유의 광선을 만나는 것이다.

     

돈도 권력도 성공도 우리의 허전함을 채워줄 수 없다

오히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과 사랑이 문학이란 포장지를 통해 알게 된다.

     

조선후기 유학자 추사 김정희 선생은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다.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라고 한다.

     


지금과 같이 혼란과 분열의 시기에 일부 성공한 사람들을 자신과 비교함으로써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지금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내일의 태양은 내일 다시 뜬다.

     

분노하고 한탄하기보다는 치유의 대상을 통해 수양에 힘써야 한다.

치유의 많은 수단 가운데 빛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문학의 위력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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