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오직 자유를 외친 영웅에서 찾다
스코틀랜드 독립영웅! 윌리엄 웰레스의 위기 리더십
평화 통일을 오직 자유를 외친 영웅에서 찾는다.
윌리엄 웰레스(1272~1305)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이자 1996년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 촬영, 분장, 효과 및 사운드 편집, 작품 등 5개 부문에서 오스카를 수상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 기사이다.
윌리엄 웰리스의 출신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지만 하급귀족이나 몰락한 가문으로 추측한다. 그가 태어난 13세기 말 스코틀랜드는 혼란스러웠다.
영국의 역사를 간단히 살려보면 영국 땅 잉글랜드는 오랫동안 유럽에서 이주한 앵글로 색슨 족이 그 곳에 살고 있던 이베리아인을 몰아내었다.
이후 치열한 갈등과 잉글랜드의 폭정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반감을 사고 있었다.
알렉산더 3세 왕이 1306년 어린 손녀 마가렛을 남긴 채 사고로 죽게 되자 4살짜리 마가렛을 왕으로 추대하고 수렴청정하게 된다.
영국 왕 에드워드 1세는 자신의 아들을 마가렛과 결혼시키려 했지만 마가렛이 죽게되자 취소한다.
마가렛이 죽자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자신이 왕기 되기 위해 서로 싸운다.
그런 와중에 잉글랜드 전제 군주 에드워드 1세(별명: 롱생크, 긴 다리 에드워드)는 스코틀랜드의 최고 귀족이 되어 스코틀랜드를 공격하고 스코틀랜드 왕가 대대로 물려온 스콘 궁의 운명석을 런던으로 가지고 갔다.
자신을 반대하는 스코틀랜드의 귀족을 학살한다. 그 와중에 웰레스를 제외한 가족들이 전원 몰살당한다. 그의 삼촌 로널드 웰리스는 그를 데려가 무술, 라틴어, 불어를 가르치게 된다.
잉글랜드 병사 2명과 시비가 붙게 되자 웰리스는 그들을 죽이게 되고 체포령이 내려진다. 그리고 그의 아낸가 살해당하자 동료들을 모아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웰리스는 같은 독립대장인 앤드류 더 모네이와 함께 스털링에 집결한다.
1297년 스털링 다리에서 숫 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의 기병진을 와해시키고 뛰 따라오던 잉글랜드 병사들을 좁은 다리에서 막아 큰 승리를 얻는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해 웰레스는 스코틀렌드의 국민적 영웅이 된다. 이후 스코틀랜드의 여러 도시들을 해방시켰다.
잉글랜드 요새인 요크 성을 점령하여 에드워드 1세의 동생 목을 잘라 에드워드 1세에게 보낸다.
분노한 에드워드 1세는 1298년 웰레스와 풀 커크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잉글랜드의 기병대는 스코틀랜드 궁정병을 와해시킨 후 승리한다. 그 결과 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웰레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쫓겨나 여러 유럽을 전전하게 된다. 프랑스 근위병으로 근무하여 잉글랜드 군사들과 싸우기도 한다. 결국 웰레스는 잉글랜드에 매수당한 저항군의 배신으로 전투에서 지고, 포로가 되어 런던에서 공개 처형을 당한다.
사진: 이주하 작가
잉글랜드를 반역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된다.
‘범죄자의 왕’이란 의미의 나무관을 쓰고 재판받는다.
이곳에서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나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왕에게 반역자가 아니다. 그는 나의 왕이 아니다. 나는 그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는 결코 나에게 신사의 예를 받을 수 없고 나의 생명이 이런 박해받는 육신 속에 있는 한 그는 결코 충성의 예를 받을 수 없다”
1305년 8월 22일 처형당하는 날 옷이 벗겨진 채 저잣거리로 끌려나와 목이 졸려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풀리기도 하고 사지가 찢어지게 된다. 집행관을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자비를 구하라고 했으나 웰리스가 거절하자 그를 거세하고 배를 갈라 내장을 모두 꺼내서 불태웠다.
이런 공포심에 반발한 스코틀랜드인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월리스의 죽음을 헛되지 않고 숭고하고 의로운 정신을 받들게 된다.
스코틀랜드 왕이 된 로버트 더 브루스에 의해 1314년 베녹번 전투에서 잉글랜드에 승리를 거두고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웰리스의 위기리더십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비전과 꿈이다.
웰리스가 잉글랜드 폭정에 대할 할 때에는 가상한 용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독립을 위한 절실하고 중요한 비전을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둘째, 조직력이다.
조직이나 부실한 무기 몇 점으로 군대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사람들을 훈련시켜 잉글랜드와 싸워 이겼다. 소위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지만 훈련과 조직을 장악하여 최대의 효율성을 보인 것이다.
셋째, 소통의 리더십이다.
당시 무모한 전쟁을 바라지 않던 많은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내분을 잠재웠다.
마지막 네 번째는 솔직함이다.
스코틀랜드의 전력이 절대 열세였던 것을 솔직하게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알렸다. 잘못된 리더들은 당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잘못된 희망으로 “나를 따르라”는 거짓을 한다.
현재 스코틀랜드는 영국을 구성하는 연합왕국(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웨일스ㆍ북아일랜드)의 하나로, 그레이트브리튼섬의 북부 지역을 차지한다. 면적 78,783㎢, 인구 5,062,011명으로, 수도는 에든버러이며, 경제적 중심지는 글래스고이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의 뿌리 깊은 민족적 반감은 지금도 존속하고 있다.
잉글랜드와는 별개의 자치법으로 통치되며, 독자적인 사법제도와 보건ㆍ교육제도를 비롯해 국교회제도(國敎會制度) 또한 독립해 있다
스코틀랜드는 2014년 9월 19일 분리 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 '스코틀랜드가 영국 연방에서 분리 독립해야 하는가'라는 단일 문항에 찬성ㆍ반대 중에 결정하도록 했다.
투표 결과 반대 55%-찬성 45%가 나오면서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무산되었는데 현재의 변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장.노년층과 변화를 원했던 청년 중년층의 의견을 이긴 결과이다.
이에 따라 307년 만에 영국 연방에서 떨어져 독립국가로서 자립하려던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도전은 무산됐다. 다만 스코틀랜드 자치정부가 영국 중앙정부로부터 조세권과 예산권을 대폭 넘겨받는 자치권 확대 약속을 얻어냈다.
비록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부결되었지만.
웰레스의 위기 리더십과 조국 독립의 정신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 누가 감히 영웅을 심판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