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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Jul 21. 2017

고통조차 사랑하기! 고통은 잠시지만 위대함은 영원하다

고통조차 사랑하기, 고통은 잠시지만 위대함은 영원하다. 


내게는 고통만이 있다. 

그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고통은 내게 충실했고, 지금도 변함없다.     

어찌 고통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심장 아래가 뜨끔거리며 내 가슴이 아플 때면

고통은 언제나 내 곁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 고통이여 나는 끝내 너를 존경한다.

너는 절대로 내게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알게 되었다.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너는 가난한 내 마음의 화롯가를 

결코 떠나지 않았던 사람을 닮았다.    


고통이여!!~ 너는 더없이 사랑하는 연인보다 다정하다.

나는 알고 있나니 내가 죽음의 자리에 드는 날

너는 내 가슴속으로 깊이 들어와 나와 함께 가지런히 누우리라.

 -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 프랑시스 잠-    



인생은 고해이다.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 


고통은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으로 불쾌한 감정이다.

고통은 살아 있기에 당하는 땔 레야 땔 수 없는 숙명이다.    


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하고, 생각은 인간을 지혜롭게 만든다.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은 사람을 더 성장시킨다.

조물주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도 주었다.    


"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 니체 -  



크로아티아 격언 중에, ‘고통은 잠시지만 위대함은 영원하다’고 한다.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삶의 고통을 차라리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은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 


고통에 굴복하여 울기보다는 태풍이 지난 후에 평온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고통을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고통이란 거대한 파도를 넘은 후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 지 생각해야 한다. 

고통이 날 넘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자신을 새롭게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중요하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한마디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문제 해결의 답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외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권리도 있다.    



삶이 버거 울 때 위로란?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기내자?"라고 묻는 것이다.    


“힘들지” 라고 거들 기 보다는

“함께 찾아보자” 는 공감이 필요하다.    


비틀거리고 약해 있을 때 

“왜 그랬어?” 라고 충고하기 보다는

“포기 하지 마” 라는 같이 울어 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방황하여 넘어지고 비오고 바람 불어도

“우산 써”라는 말 대신에

“함께 비 맞자” 는 실천이 필요하다.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한 사회의 문명의 척도는

그 사회의 감옥에 들어가 봄으로써 판단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악의 감옥은 독방에 갇혀있는 것이다.


궁궐에 혼자 있다면 사글세 옥탑방보다 못하다.

홀로 쓴 왕관보다는 구멍 난 우산을 함께 쓰는 친구가 더 아름답다.

깨끗이 세탁한 옷이 비단 옷 입고 깜깜한 거리 다니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흔들림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고통 뒤에 숨겨진 깨달음은 희망을 품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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