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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Aug 04. 2017

하루 만에 읽는 가장 쉽고 친절한 세계사 이야기

하루 만에 읽는 세계사

     

역사란 과거의 척도이며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시대를 관통하여 연관성을 지닌 과거의 사건을 통해 앞으로의 삶을 예측할 수 있는  계기판의 역할을 한다.

     

역사를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난 시간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인식하고 미래준비와 문화의 발전을 찾을 수 있다. 세계사를 관통하는 문화에 따라 서양사, 동양사를 지역에 따라 유럽사, 한국사, 미국사로 구분한다.

  

   


이번 글은

미야자키 마사카츠가 지은“친절한 세계사”를 근간으로 인류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세상의 주인공 역할을 한 제국을 중심으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살펴본다.

    

 


1. 인류의 조상

     

인류의 최초 고향은‘아프리카 단일기원설’이 유력하다.

약 450만 년 전 직립두발보행 인류의 최초의 조상인 라미두스 원인이 출현했다.

이후 260만 년 전부터 한랭한 기후로 인해 빙하가 발달하고 해수면이 내려가는 빙하기와 온난한 간빙기가 반복되는 극심한 자연 변화 속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연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은‘루시’라 이름 붙여진 화석으로‘인류의 조상’이라 불리 운다.

과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 화석을 분석해, 현대 인류와 비교해 뇌의 용량이 3분의 1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두개골의 모양이나 뇌의 용량이 현대 인류보다는 유인원과 비슷하지만, 머리 부분을 제외한 몸의 골격 구조는 현대 인류와 매우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 직립보행(똑바로 서서 두 발로 걸음)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털도 많이 퇴화되어 원숭이에 비해 피부가 많이 노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주로 사냥과 채집을 통해 먹이를 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나무막대나 돌멩이 등을 도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약 20만 전에는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했다.

1987년 모계유전 성질을 가진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를 시행한 캘리포니아 대학 레베카 교수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의 조상이 20만 년 전 아프리카의 한 호모사피엔스 여성이라며 그녀를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이름 붙였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등장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2. 문명의 어머니 도시의 탄생

     

큰 강 유역이 최초의 인구 밀접 지역이 된 것은 당연하다.

제방 수로 저수지 등의 토목공사가 필요했다.

5,000년 전부터 대건조 지대였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현재 이라크), 인더스(현재의 파키스탄)에서는 관개농업이 번성했다.

비가 제법 오는 황하유역에서는 관개설비가 많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도시는 약 1만 년 전에 만들어진 요르단 강 유역의 예리코라는 곳으로 식량 확보 체제를 갖췄다.

이집트에서는 에티오피아 고원의 정기적인 강우로 인해 나일강이 범람하여 관개시스템이 필요하였고 150만 명에서 200만 명을 먹여 살리는 도시로 발달되었다.

     

메소포타미아는 그리스어‘MESO(정중앙)’와‘POTAMOS(강)’의 합성어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라는 ‘ 강 사이의 토지’라는 뜻이다.

두 강 하류에 있는 수메르 지방의 농업은 터키 동부 고산지대의 불안전한 눈 녹인 물에 의존해야 했다. 문명의 담당자인 수메르인은 우르, 우루크 등의 도시 국가에 서 물 전쟁을 반복해야만 했다.

  

   

3.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제국)

 

가장 오래된 제국이 기원전 6세기에 유목민 계 페르시아인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를 정복하여 이란 고원지대, 소아시아를 포함한 지역에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이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유일한 제국이었다. 약 200년 동안 지속된 아케메네스 왕조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하고 내분이 일어나 국력이 약해졌고, 결국 그리스 북경 마케도니아의 젊은 20대 왕, 알렉산더 3세의 원정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4.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제국

     

마케도니아 (그리스어: Μακεδονία) 는 그리스 반도의 최북방에 있던 고대 왕국으로, 서쪽으로는 에페이로스, 북쪽으로는 파이오니아, 동쪽으로는 트라케(트라키아), 남쪽으로는 테살리아 지방과 접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를 비롯하여 인더스 강까지 진출하면서, 마케도니아는 짧은 기간 동안 고대 근동에서 헬라스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그리스 역사의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된다.

알렉산더 3세는 인도 지역으로 원정을 나섰고, 이를 계기로 습윤한 갠지스 강 유역에 마우리아 왕조가 생겨났다. 알렉산더 3세가 동지중해의 요지인, 현재의 이집트와 시리아 지역을 편입시켜 건설한 알렉산더 제국이 빠르게 분열하면서 제국은 페르시아인의 파르티아 제국과 기원전 1세기에 형성된 ‘로마 제국’으로 나뉘었다.

     

     


5. 로마 제국 

     

로마 제국은 아우구스투스가 황제 지배 체제 혹은 원수정(principatus)을 사실상 시작한 기원전 27년부터 몰락까지의 로마를 일컫는다.

로마 제정 시대의 종식은 395년 동서 로마의 분할,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1453년 비잔티움 제국 멸망 등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로마 제국은 지중해 동부의 헬레니즘 문화권과 이집트, 유대, 서부의 옛 카르타고, 히스파니아, 갈리아 등의 기존 영토에 이어 브리타니아와 라인 강 서쪽의 게르마니아, 그리스 북쪽의 다키아까지 판도를 넓혔다.


이러한 패권주의는 로마 제국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의 문화를 고대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뜨려, 로마 제국의 건축, 법, 정치, 종교 등이 전해지게 되었다.(출처: 위키백과)

     


6. 진 제국  

     

황하문명에서 시작한 중국은 은, 주 나라와 춘추 전국시대를 거쳐 기원전 3세기에 진이 통일하였다. 진은 15년만에 내분으로 인해 망했고 전한, 후한을 거쳐 삼국시대에 이른다.  5호 16국과 남북조 시대, 이후 당으로 하나가 된다. 당 이후 송나라는 금나라의 침입으로 인해 북송과 남송으로 나뉜 뒤 원나라 몽고족에 의해 지배된다.


진(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6년)은 진 시황제에 의해 전국 시대를 통일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이다.

 전신은 지금의 산시성 지역에 있던 진 백작국이며, 그 국호는 초기 중심지인 진(秦) 땅에서 비롯됐다.

국력은 기원전 4세기 쯤 전국 시대 때 상앙이 행한 법가에 따른 개혁에 의해 급속도로 강성해졌다. 기원전 3세기 중후반에 진나라는 국력이 약했던 주나라를 시작으로 전국 칠웅을 모두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룩했다.

     

진나라의 지배기간 동안, 진은 무역을 증가시켰고, 농업을 발전시켰으며 치안을 강화했다. 이는 토지 지주제를 폐지했기 때문인데, 이로써 중앙정부가 국민들을 직접 통치할 수 있었다.

이는 만리장성과 같은 대형 공사들을 할 수 있게 된 토대가 되었다. 진제국은 또한 화폐, 도량형 통일 등의 많은 개혁을 했다. 군사력 역시 발전하여, 전술이나 무기, 운송체계 등이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예전 나라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분서갱유와 같은 일도 벌였다.

     

진나라의 군사력은 비록 강성했지만, 진나라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신하들은 그를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신하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싸웠고, 결국 신하들과 진 황제가 모두 사망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몇 년 후 국민들에 의해 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멸망했다.

국가의 짧은 지속시간에도 불구하고, 진은 중국 전체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또한 중국의 유럽식 이름인 China 역시 진나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출처: 위키피아)

     

7. 700년 동안 지속된 유라시아 제국

     

기마유목민의 활약은 7세기에 비잔티움 제국, 사산 왕조를 무너뜨리고 지중해 및 대건조지대를 통합한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유목민 이후에 본격화되었다.

그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은 그때까지 세계사에 없었던 유라시아 규모의 거대한 제국(유라시아 제국)으로 성장했다. 이후 유라시아 제국은 아랍인→터키인→몽골인으로 주역을 바꿔가며 7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 7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이 점에 주목하여 기마유목민에 의한 유라시아 제국시대를 ‘유목민 폭발 시대’라 명명했다.

   

  


8. 몽골제국

     

몸에 가벼운 가죽 갑옷을 걸치고 궁이나 검으로 무장한 기병이 집단적으로 싸우는 몽골인의 용맹함은 유라시아 세계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전투가 거듭되면서 몽골 제국의 지배영역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규모 영역을 연결하는 요지는 물론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이었다.


몽골의 20만 기마군단을 지탱하는 60만 마리의 말이 제국의 원동력이었는데, 그렇게 많은 말을 사육할 수 있는 목장은 중화 제국은 물론 이슬람 제국에도 없었으므로 결국 말을 몽골 고원에서 계속 길러야 했다.

     

이로써 몽골 고원이 일시적으로 중화세계, 이슬람 세계, 러시아 지역, 그리고 유럽을 연결하는 요지가 되어 세계사를 움직였다.

제2대 칸, 오고타이 칸(재위 1229년~1241년)은 몽골 고원에 수도 카라코룸을 건설하고 바투(1207년~1255년)를 파견하여 러시아의 키예프 공국(9세기~13세기)을 정복했다. 그 후, 바투는 폴란드도 침입하여 ‘발슈타트 전투’(레그니차 전투, 1241년)에서 독일 및 폴란드 제후 연합군을 무찔렀다.

또한 오고타이 칸은 1234년, 중국의 북반부를 지배하던 금도 정복했다.(p.150)

     


9.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대서양 해역

     

15세기 유럽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지구 표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대양으로 진출하면서 유라시아의 ‘작은 세계사’는 세계 규모의 ‘큰 세계사’에 접속하게 되었다.

대서양의 새로운 사태를 주도한 것은 인구 100만 명의 작은 나라 포르투갈이었다.

멘히크 왕은 외양선을 건조하거나 항해용구를 개발하고  항해사를 야성하여 아프리카 서안 탐험에 조직적으로 나섰다.


‘아프리카 연안의 해도 비밀로 작성한 후 서안 무역을 독점하고자 했다.  

엔히크 왕자는 40여 년 동안 독신으로 지내며 탐험사업을 추진해서 잡화상이란 명칭을 듣게도 했다.

     

대서양을 개척한 콜럼버스도, 마젤란도, 원주민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였다.

막탄 섬에는 마젤란과 전투를 벌인 수장, 라푸라푸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마젤란의 뒤를 이은 엘카노(1476년~1526년)는 그 후 몰루카 제도에서 대량의 향신료를 사들여 한 척밖에 남지 않은 빅토리아 호로 희망봉을 우회하여 1522년 9월, 3년 만에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출항 시에 약 250명이었던 선원은 고작 18명밖에 남지 않았다. 마젤란의 항해는 현재의 우주여행에 필적할 만한 대모험이었던 것이다.

제2차 항해는 지휘자 엘카노가 태평양 위에서 목숨을 잃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로써 태평양은 너무 막대하여 유럽 국가들이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바다의 시대를 주도한 포르투갈, 스페인인에 의해 바뀌어가는 아메리카 대륙,‘바다의 시대’를 본격화시킨 해운 대국, 네덜란드가 당시 세계사의 주역이었다.

     


10. 영국이 이끈 ‘유럽의 세기’  


스페인과 싸워 승리한 해양제국 영국은 세계의 중심지로 발 돋음 하게 된다.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을 통해 변화하는 영국은  영란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자메이카 섬을 정복하여 식민지로 만들었다. 1651년 ‘항해법’을 제정하여 네덜란드의 중계무역에 큰 타격을 입혔다.

크롬웰이야말로 경제면에서 네덜란드에 뒤쳐져 있던 영국을 군사력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대서양 세계를 탄생시킨 근대 시스템인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는 강력한 힘의 우너천이 됐다. 산업혁명과 파운드의 시대, 철도와 증기선의 등장으로 영국은 역사를 주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영국 vs 독일의 패권 다툼으로 변해가는 세계에서 신대륙에서 거대해진 미국이 탄생한다.

영국에 종속적으로 세계사에 편입된 아프리카와 태평양국가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11. 미국의 부상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유럽의 몰락으로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미국이 부상한다.


대공황이 계기가 된 제 2차 세계대전 끝난 이후에는 달러가 세계통화가 되었고 소련과 냉전 시대를 이끌었다.



1970년 석유위기, 달러쇼크, 정보혁명 등이 겹쳐서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은 붕괴된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가 초래되어 불안정화를 보이고 있고, 다시 태어나는  아시아와 제 3의 새로운 세력이 탄생하고 있다. 특히 태평양을 둘러싸고 긴장이 격화되고 있다. 세계사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태평양의 시대가 나타난 것이다.

불투명한 지구 신시대의 모습을 보는 이 때 미국과 중국은 G1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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