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의 기술

세월과 자연이 만든 예술, 카파도키아

터키 여행의 하이라이트

by 김진혁

다섯째 날 세월과 자연이 만든 예술 카파도키아


1. 카파도키아는 어떤 곳인가?


우츠히사루전경.jpg

사진: 카파도키아 전경


버스로 안탈리아에서 출발하여 4시간 정도 걸려 콘야를 경유한 후 카파도키아에 도착했다.

카파도키아/괴레메(Cappadocia/Göreme)는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고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험한 광야에 찾아들었다.


이곳은 히타이트 시대로부터 땅의 주인이 계속 바뀌었다.

높은 산악으로 인해 물이 귀했지만 포도를 길러 척박한 땅에서 생명을 유지한 것이다.

땅속에 있는 지하도시에서도 물을 구할 수 없어 포도주로 연명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200여 개의 지하 도시가 있다고 한다.

마을 복판에는 원조 터키탕이 있고 와인 저장소도 있다.

기암괴석 지대에는 낙타 바위, 수도원, 샌들교회 등이 있어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1) 데린구유 지하도시


데린구유.jpg

사진: 데린구유 내부


중앙 아나톨리아의 카파도키아에 있는 황량한 평원 아래에는 부드러운 화산암 속에 파서 세운, 완전한 도시들이 숨겨져 있다.

이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데린쿠유(깊은 우물의 뜻)이다.

히타이트 때부터 비잔티움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하도시가 만들어졌다.


이 도시에는 2만 명에서 3만 명의 사람들이 살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초의 터널과 동굴들은 4천 년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기름진 화산성 토양에서 경작을 하기 위해 왔던 정착민들은 혹독한 날씨를 피해 기꺼이 지하로 들어가 보호를 받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쳐들어오는 적들로 인해, 노출된 위쪽 땅이 여러 차례 히타이트와 트라키아인,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싸움터가 되면서 지하에서의 생활은 점점 더 영구적인 방편이 되어 갔을 것이다.


데린쿠유는 8층까지 내려가는 지하시설물로 55미터의 깊이까지 파졌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배당과 주방은 조금 큰 공간이었지만 침실은 몸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지상에 있던 집들을 연결했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어둡고 깊은 수천 개의 '방들'이 연결된 것이다.

이러한 방들은 기초적인 생활 설비만을 제공했던 것이 아니라 교회, 학교, 공동 부엌, 회의 장소, 심지어 마구간과 포도주 제조 구역까지 갖추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자급자족 공동체가 되었다.

대단한 것은 그 당시에 복잡한 환기 갱도 시스템이 있어 공기를 호흡하기에 알맞은 상태로 유지해 주었다는 것이다.


2) 파샤바아


버섯비위.jpg

사진: 버섯바위


파샤바아는 터키어로 "장군의 포도밭이란 뜻"이다.

버섯모양의 기괴한 바위들이 솟아 있는 골짜기. 화산폭발로 퇴적된 지층이 오랜 시간 비와 바람에 의해 쓸려 나가면서 이런 특이한 지형을 만들었다.


아래는 흰색이고 버섯부분은 검은색으로 화산재가 덮인 것이다.

파샤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기둥 위의 성자’라고 불리던 시몬이 수도한 곳으로 알려진 교회다. 기독교도들이 살았던 교회에는 아직도 벽화가 남아 있다.


3)우츠히사르

우츠히사르.jpg

사진: 우츠히사르


고대부터 감시탐으로 사용해 온 천연요새.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지역답게 주변 전망을 파노라마처럼 즐길 수 있다.


2. 셀주크 제국의 영광 콘야

카파도키아 교회.jpg

사진: 카파도키아 교회


로마시대에는 이코니움(Iconium)이라고 하였다.

앙카라 남쪽 240km, 소아시아의 아나톨리아고원 남쪽 해발고도 1,027m에 위치한다.

12∼13세기에는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로서 번영하였으며,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셀주크 왕조시대의 섬세한 유적들 콘야에서 조우하는 유적들은 이스탄불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거대한 모스크가 언덕 곳곳에 웅크리고 있다.

콘야에서 재배한 밀과 과일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에게 해 지역으로 실려나가고 양모와 염소털이 많다.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한 쇼핑을 100% 캐시미어를 사기로 했다. 아주 싼 가격으로 여러장 선물용으로 구입했다.


이곳은 아나톨리아 종관(縱貫) 철도의 개통(1895)으로 부흥하였다. 제당·시멘트·식육·융단 등의 공업이 활발하며 지금은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산업도시이다.

성경에서는 이코니온이라 불렸고 사도 바울로의 제1회 전도지이다.


콘야는 옛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실크로드의 중간지점이다.

터키에서 가장 신앙심이 많은 지역으로 술을 파는 식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독실한 이슬람교도들의 성지순례로도 유명하다.


콘야1.jpg

사진 :세마


세마가 유명하다.

이슬람의 신비로운 춤사위 '세마' 조명이 시작되면 원통 모자를 쓴 무용수들의 춤사위는 시작된다.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흰 꽃봉오리처럼 아름답다.


오른팔을 하늘로, 왼팔을 땅으로 향한 채 세마 무용수인 세마젠들은 빙글빙글 팽이처럼 맴돈다. 이들이 쓰고 있는 원통형 모자는 묘비, 흰색치마는 장례용 덮개를 의미한다는데 속세에서의 해방을 뜻하는 춤은 완급의 미가 적절하게 뒤섞여 있다.

엄숙함을 중시하는 세마가 진행되는 동안은 소리를 내거나, 관람을 방해하는 빛을 만들지 못한다.


콘야.jpg


콘야는 이슬람의 한 종파인 메블라나 교단의 발상지이다. 11세기 이후 셀주크 왕조 시기에는 수도로도 번성해 예술, 학문이 꽃을 피웠으며 도심에서 만나는 유적들은 대부분 당시의 산물들이다.


메블라나 박물관.jpg

사진: 메블라나 박물관


메블라나는 1207년 아프카니스탄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슬람의 유명철학자가 되어 꾸란을 가르치며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가 남긴 일곱 가지의 가르침을 통해 이슬람이 추구하는 정신을 찾아본다.

다음의 것들을 지킬수만 있으면 세상은 정의롭고 행복해 질것이다.


첫째, 남에게 친절하고 도움 주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라.

둘째, 연인과 사랑을 태양처럼 하라.

셋째, 남의 허물을 덮는 것을 밤처럼 하라.

넷째, 분노와 원망을 죽음처럼 하라.

다섯째,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기를 땅처럼 하라.

여섯 번째, 너그러움과 용서를 바다처럼 하라.

일곱 번째, 있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행하라


위대하고 기묘한 자연의 현상을 보면서 새삼 느낀다.

여행은 인간을 순수하고 강하게 만든다. 여행하는 도중 인간의 영역이 얼마나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여행을 떠나게 하라!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황금 빛 태양의 축복, 터키의 보석 휴양지 안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