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했지만 ...비운의 과학자 하버 이야기

독가스를 발명한 노벨상 수상자

by 김진혁

세상을 구했으나... 비운의 과학자 하버 이야기

독가스를 발명한 노벨상 수상자


독일인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공기 중의 질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한 업적으로 1918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사람들은 합성된 암모니아를 화학 비료의 원료로 사용함으로써 식량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인류의 식량 생산을 늘려 인류를 기아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그가 발명한 암모니아는 폭탄의 원료로도 사용되었고 독가스로 무기화되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인명을 앗아가는 아이러니가 생겼다.


프리츠 하버는 1868년 12월 9일, 브로츨라프(Wroclaw)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유복한 유태인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사업으로 큰 부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3주 후에 사망했고 고모들의 손에 의해서 길러졌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그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어려서부터 화학실험을 즐겨했고 일평생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1910년에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물리화학-전기화학 교수가 되었고 1918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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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타락


하버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쟁 연구에 뛰어 들었다. 대위(captain) 계급장을 달고 전쟁부에 있는 화학부의 부장이 되었다. 그의 과업은 염소 가스 같은 치명적인 독성 가스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평화로운 시기에 과학자들은 세계에 속한다. 하지만 전쟁 중에 그들은 그의 국가에 속한다.”고 했고,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졌건 죽음은 죽음일 뿐”이라고 하고 연구의 정당성을 믿었다.


하버의 첫 부인. 클라라 하버는 1915년 남편이 독가스를 만들어서 전쟁에서 사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듣고

이런 일이 “과학의 이상의 타락”이고 “삶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학문을

오염시키는 야만의 상징”이라고 하면서 남편을 강하게 비판했다.

클라라 하버는 남편과 계속 다투다가 남편의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저항하지만

하버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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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한 말년


전쟁이 끝난 뒤에 하버에게도 어려움이 닥쳤다. 화학무기의 아버지가 전범으로 몰리게 된다.

특허로 인한 로열티 수입도 줄어들었고 1933년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유태인들에 대한 탄압은 본격화되었다.

독일을 위해 평생을 일했지만 유태인이었던 하버는 빌헬름 카이저 연구소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이스라엘로 가던 도중에 1934년 1월 19일에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과학의 딜레마


1968년, 카를스루에 대학은 프리츠 하버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을 열었는데,

학생들은 “살인자를 위한 행사. 하버는 가스전의 아버지다”는 피켓을 들고 이에 항의했다.

그는 자신의 전쟁 연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역사는 그를 야만인으로 응징하는 현대 과학의 딜레마가 된 것이다.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가 기부한 노벨상은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권위로 인정받지만 정작 노벨의 인생은 악평의 연속이다.

기존의 불완전한 화약의 단점을 보완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탄광과 채굴현장의 생산성을 상승시켰으나

동시에 다이너마이트가 대량 인명 살상의 현장에도 활용됐기 때문이다.

다이너마이트가 많은 사람들을 해치는 장면을 본 노벨이 괴로워했고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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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의 일생을 영화로 그려내다.


향후 인공지능으로 자율무기와 살인로봇의 개발에 관한 논의가 일어날 것이다.

살상용 무기가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개발 노력하겠지만 그의 영향력은 아무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인류의 진보'

라는 공식은 일종의 금과옥조로 여겨질 것이라는 기대는 어렵다.

이런 과학의 딜레마는 21세기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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