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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Jun 30. 2019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은 인생최고의 스승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은 인생최고의 스승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적 현상이다. 

탄생이 삶의 일부이듯 죽음도 삶의 일부다. 

죽음은 무대 위에 세워 공연하는 배우와 같이 삶의 유한성을 일깨워준다. 

죽음은 개별 인간의 고유함을 잃지 않고 각자의 서사시를 완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다. 

죽음은 진리를 알려주는 인생 최고의 스승이다. 

죽음은 사람을 진실 되고 겸허하게 만들기에 죽음을 알면 삶도 자동적으로 알게 된다.

예술가들은 종종 죽음을 삶과 결부시켜 각인시키려하였다.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이란성쌍둥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시작은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불가분의 관계이다. 

삶과 죽음이 분리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고민은 행복의 굴레와 연결되어 있다.

죽음을 마주하기에 새 생명의 기쁨도 있다. 죽음의 두려움이 지금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어느 여객선이 큰 풍랑을 만나 배가 요동치며 사람들은 아우성쳤다. 이 때 할아버지는 평안한 얼굴로 기도하고 있었다. “ 할아버지 두렵지 않으세요?”

 할아버지는 대답하기를 “ 내게는 두 딸이 있다. 큰 딸은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작은 딸을 찾아가는 중이다. 만약 배가 뒤집혀 천국에 가면 큰 딸을 만날 것이고 이 배가 무사히 도착하면 작은 딸을 만날 것이다.”

     

왜 죽음이 무엇보다 두려울까?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삶의 소멸성으로 인한 공포감의 엄습이다. 

더욱더 미처 알지 못하는 영혼의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는 무지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누구나 편안하고 고통 없이 잠자듯 죽는 것처럼 좋은 죽음을 기대하고 소망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형태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죽음에 대하여 부정하거나 두려움과 불안 등으로 죽음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어떤 분은 죽음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한다.

죽음을 수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아통합을 이루려는 사람이며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며칠 전 기르던 강아지‘몽이’가 죽었다. 가족이나 다름없던 반려동물의 죽음에 아내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딸이 시집가기 전에 분양받은 푸들로 벌써 14년이 지나선지 정이 깃들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별 연습을 했음에도 막상 반려견의 죽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반려견이 죽었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의 강도는 어떨까? 가 궁금해서 연구결과를 찾았다.

미국 녹스 대학의 프랭크 맥앤드류 교수(심리학)는“반려동물은 절대적인 사랑과 위안을 주는 동료나 다름없다”면서“이들을 잃었을 때 느끼는 심리적 충격은 주변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친한 친구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기에 슬퍼하는 사람에 대한 주변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동물이 죽었을 때 느끼는 슬픔이 이럴 진 데 만약 가족의 죽음은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길 것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의 죽음을 목도하고, 그의 죽음 이후 펼쳐지는 상황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어느 순간 그 상황이 내 앞에 불현듯 도래하리라는 예감 때문에 두려워한다.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슬픔을 남긴다.

     

죽음은 삶처럼 흔하다.


장자는 인생을 ‘꿈속의 꿈’으로 보고 죽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두려울 것도 싫어할 것도 없다.”

     

석가모니는 어린자식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살려 달라는 어머니에게 말한다.

“이 마을 집집마다 찾아가 사람이 죽어나간 적이 없는 집’을 찾으면 살려내겠다고 한다. 이 세상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창작연대 미상의 고대가요로 학창시절에 배웠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죽음을 문학으로 표현하는 좋은 사례다.

     

여보 물을 건너지 마오(公無渡河)

당신은 그예 물을 건넜네(公竟渡河)

물에 빠져 죽고 말았으니(墮河而死)

아아 당신을 어찌할거나(當奈公何)

     

어느 새벽 옛 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흰머리를 풀어헤친 사내가 술병을 들고 거센 물결 속으로 들어가고 아내인 듯한 여자는

 따라가며 말리는 장면이다. 

그러나 아내의 만류를 뒤로하고 사내는 물길에 휩쓸려 자취를 감춘다. 

남편의 죽음 앞에서 슬픔에 잠긴 여인은 공후(箜篌)를 뜯으며 슬픈 노래를 한바탕 부르고 나서 

남편의 뒤를 따른다. 즉 <공무도하가>는 바로 이 여인이 남편의 죽음을 앞에 두고 부른 노래이다.

     

패티슨(Pattison, 1977)은 죽음의 과정을 설명하였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을 설계하고 자신의 활동을 조절하기 위하여 자신의 수명을 예견한다.

실제적 죽음의 궤도에 이르면 죽음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껴 죽음에 대한 불안이 최고조에 다다른다.

죽음의 시점에 이르는 최종단계에서는 불안이 거의 소멸되고 죽음을 맞이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Ross, 1926~2004.8.24)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일찍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그녀는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평생 놓지 않았다.

     

"죽음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혜 대신 기계에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나약함, 한계, 실패,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의 죽음을 일깨워주는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얼굴보다 기계가 우리와 더 가깝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그녀의 질문을 통해 죽음은 불길한 일이며, 두려운 사건으로 인식되어졌다.

또한

그녀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단계 정서적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로랑 구넬의 ‘사는 법을 배운 날’은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생의 의미를 탐구해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실존에 완전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당장 오늘부터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심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필력에 감탄한다.

     

"자신의 에고에 집착하고 있을 때가 바로 지옥이며, 반대로 자신 안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타인에게 표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천국" 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 못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고 한다.

주인공 조나단은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다른 방식을 통해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자신의 에고에 집착하고 있을 때가 바로 지옥이며, 반대로 자신 안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타인에게 표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천국" 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장영희 교수가 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나는 새삼 좋은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누구의 마음에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게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지 깨닫기 시작했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따뜻한 마음, 아끼는 마음으로 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준다면 수천수만 명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사람이 되는 일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을 다하고 죽었을 때 신문에 기사가 나고 모든 사람이 단지 하나의 뉴스로 알게 되는 유명한 사람보다 누군가 그 죽음을 진정 슬퍼해주는 좋은 사람이 된다면 지상에서의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절실한 사랑은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승화된 파토스는 죽음의 질량을 낮추고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창출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겠어요.

   어떤 희생이 따를지 따져보지 않겠어요

    그것이 잘한 일인지 생각하지 않겠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겠어요.”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생전에도 많은 것을 사회에 환원했고 떠날 때에도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한

고(故(고))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은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약회사를 세우고 경영했음에도 불구하고 77세 나이로 숨을 거두었을 때 그가 남긴 것은 구두 두 켤레와 양복 세 벌, 손때 묻은 가방, 안경, 만년필, 그리고 지팡이가 전부였다고 한다.

     

짧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한 그의 유언장을 소개한다.

     

"첫째, 유일선의 딸, 즉 손녀인 유일림에게는 대학 졸업 시까지 학자금 1만 달러를 준다. 둘째, 딸 유재라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천 평을 물려준다. 그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미고 결코 울타리를 치지 말고 유한중/공업고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며 그 학생들의 티 없이 맑은 정신에 깃든 젊은 의지를 지하에서나마 더불어 느끼게 해달라. 셋째, 유일한 자신의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기증한다. 넷째, 아내 초미리는 딸 재라가 그 노후를 잘 돌보아주기 바란다. 다섯째, 아들 유일선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주위에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새롭게 깨닫고 실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

죽는다는 것은 철저하게 혼자서 걸어가야 할 외롭고 두려운 길이지만

내가 가야할 곳을 안다면 장송곡 대신에 기쁨의 행진곡을 들었으면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생으로 마감하고 싶다.

죽기 전에는 항상 비교 대상으로 삼았던 이웃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용서를 구하면서...

상속을 할 때 나만의 만족,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기준보다는 가족이 화합하고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계기를 위헤 명확하고 공정한 기준을 정해주고 싶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된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더 잘 살기 위함이다.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중히 여기며 가족과 화목, 보다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도록 노력한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나누는 의미 있는 삶을 만듭시다.

생애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는 것을 지금하자.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진실하자.

결과에 신경 쓰지 말고 나를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을 감찰한다.

     


마지막으로 소박하지만 정직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는 유언장을 남기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이 되어줘서 기쁘고 행복하다. 늘 감사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라”

이 세상 떠나는 날 가족으로부터 꼭 듣고 싶은 말이 있다.

'아버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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