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이의 등장
뉴페이스의 등장
사랑이가 우리에게 찾아오고 약 두 달쯤 후의 일이다. 어느 날 엄마가 기숙사 앞마당에서 꼬질한 치즈색 새끼고양이를 발견했다.
끊임없이 야옹거리며 요란스럽게 등장한 사랑이와는 달리, 이 새끼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하게 몸만 웅크리고 있었다. 너무 작고 조용해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 정도였다.
무전취식에 무단점거까지
아기고양이는 털이 거칠고 매우 지쳐 보였다. 사람을 피하지 않길래 몸을 닦고 사랑이를 위해 사뒀던 사료와 물을 줬다. 고양이는 허겁지겁 사료를 먹어 치웠다.
그런데 밥만 먹고 나면 갈 길 갈 줄 알았더니, 이 녀석 역시 누구처럼 꿈쩍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뻔뻔한 털북숭이 손님들은 우리 카페가 고양이 하숙집인 줄 아나 보다.
두 고양이의 만남
노란 고양이는 사랑이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당시는 사랑이를 컨테이너에 넣어놓고 키울 때였어서, 사랑이를 데리고 나와 뉴페이스 고양이와 만나게 해 주기로 했다.
사랑이 가끔 카페에 출몰하는 덩치 큰 고양이들에게는 하악질을 해대고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 고양이와는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고양이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낯도 안 가리고 원래 남매였던 것처럼 어울려 놀았다.
둘은 마당에서 술래잡기도 하고, 수풀 속에 숨으면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기도 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마당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두 작은 고양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그 뒤로도 둘은 하루도 빠짐없이 꼭 붙어 다녔다. 혈혈단신의 몸으로 이곳에 찾아온 두 고양이는 서로에게 둘도 없는 가족이 되어 주었다.
어울리는 이름 짓기
어떤 결정을 내리는 건 처음에나 어렵지 두 번째부턴 쉽다. 딱 봐도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 노란 고양이도 사랑이와 함께 키우기로 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가족이 되었다면 이름을 지어줘야 하는 법. 엄마는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노래 가사를 들며 '믿음이'나 '소망이'는 어떠냐고 제안했다.
엄마의 작명 센스에 경악한 나는 믿음소망보다 나은 이름을 찾아야만 했다. 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낸 끝에 '오랑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사(4)랑이 다음이니 오(5)랑이. 의미 부여를 해보자면 '사랑아, 내게 오랑!' 이런 식으로 연결도 되고.
오랑이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엄마와 다른 카페 직원들은 모두 귀엽다고 마음에 들어 했다. 오랑이도 사랑이와 함께 마당에 살게 되면서, 우리는 오랑이를 볼 때마다 귀여운 이름을 불렀다.
우리가 오랑이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오랑이는 우리에게 와서 가족이 되었다.
오랑이의 코멘트
믿음소망이나, 오랑이나... 거기서 거기거든?
내가 사랑이보다 덩치도 큰데, 사랑이 다음이라고 오랑이라고 부르는 건 싫다고! 하지만 '사랑아 내게 오랑' 같은 귀여운 의미면 인정할게요. 막 지어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엄마를 잃고 길을 헤매다가 이 카페를 찾아낸 건 기적 같은 일이에요. 그렇게 쉽게 나를 받아줄 거라고 생각 안 했는데.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랑이 같이 예쁜 고양이가 있다는 거였어요. 사랑이를 처음 보는 순간 너무 예뻐서 입이 떡 벌어졌다구요! 여러 의미에서 이 카페는 제게 지상낙원 같은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