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이 많은 두백 감자를 종자값으로 만 오천 원 주고 3월 말에 심었다. 이웃이 맛있다며 준 자색 감자도 함께 심었다. 하지가 지나고 주말이 되자 시누이와 함께 감자 수확에 나섰다.
판로를 걱정해야 할 감자
전날 비가 와서 감자에 흙이 묻어 그늘에서 말리는 중이다. 마른날에 캤으면 뽀얗고 깨끗한 감자를 봤을 텐데 주말 집이라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많이 수확하기는 농사를 시작한 후로 처음이다. 올봄에는 일주일마다 비가 와서 가뭄이 없는 덕분이다. 햇감자를 삶아 포근포근할 때 먹는 맛이 좋아서 해마다 감자를 심는데 이웃이 준 자색 감자는 분이 많아서 더 맛있다.
잡초와 함께 키운 감자라 뱀이 나올까 봐 빠른 속도로 캐니 시누이는 나더러 일당 받으러 일 하러 가도 되겠다고 했다. 혹시라도 뱀이 나오면 겁 많기로 유명한 시누이가 비명을 지를 테고 그러면 이웃들이 더 놀랄까 봐 빨리 캤다고 했다.
시누이는 오래전에 개를 키우는 집에 놀러 갔다가 곁에 온 개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놀라서 청심환을 먹어야겠다고 했다가 개 주인으로부터 사람보다 개가 더 놀랐겠다고 개부터 먹여야겠다는 항의를 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뱀도 없고 흡혈 파리인 삐용에게 물리지도 않고 잘 캤는데 얼마나 서둘렀는지 다음 날 이삭을 캐보니 한 바구니나 나왔다. 주먹 두 개를 합친 듯한 왕감자도 나왔다.
감자~감자~왕감자~
먹는 즐거움보다 수확할 때 만족감이 더 커서 시누이에게 감자를 많이 주려고 했더니 땀 많고 더위 타는 내가 얼마나 수고하며 농사를 짓는지 아는 시누이는 끝까지 사양해서 양껏 드리지 못했다.
호박잎으로 먹는 시골 밥상도 맛있고 올 때마다 쑥쑥 자라 있는 옥수수와 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등이 반갑고 예쁘다. 그뿐인가. 뒤꼍의 화단에는 봉오리였던 꽃이 방긋 피어 있다.
바람꽃과 접시꽃
이제 곧 농작물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그것으로 충분히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감자 캔 자리에 알타리를 심어 김치를 담으면 된다. 농사 밑이 걸다고 사 먹는 것에 비해 맛도 좋고 양이 많아 나눠서 먹어야 할 정도로 푸짐하다. 남편은 나무에 전지 작업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했다.
체리 나무를 자르는 중
시골 생활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아침과 저녁인데 모기가 없는 오전에는 데크에 무중력 의자를 펴놓고 책을 읽곤 한다. 저녁에는 잔디밭에 모기장을 펼치고 누워서 어두워가는 하늘을 보고 개구리 소리를 듣는다. 시원한 밤공기가 얼마나 선선하고 상쾌한지 모른다.
아침과 저녁 시간에 보내는 시골 일상
오늘 비 오는 마당을 보면서 읽은 책 <사물의 언어>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바위 위로 콸콸 흐르는 계곡에서 차갑고 깨끗한 샘물을 떠 한입 가득 들이킬 때의 느낌과, 수돗물로 텀블러를 채우는 일상적인 경험을 비교해보라. 피할 수 없는 필연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조건을 단다면, 계곡물 한 모금에 정서적인 면이 훨씬 더 강렬하게 배어 있으며 둘 중 더욱 호사스러운 경험이라고 말할 것이다.
오늘날 호사의 창출에 바탕이 되는 것은, 수돗물의 세상에서 계곡물의 경험을 인위적으로 되살릴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디자인에 관한 책이지만 계곡물과 수돗물의 차이로 시골과 도시의 생활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사서 고생이라지만 호사스럽기 짝이 없는 시골 살이는 이렇게 좋은데 나만 하기는 어쩐지 아까워 자꾸만 글을 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