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하길 시골 가서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불멍'이라는데 막상 해보려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당 한편에 불 피울 자리(파이어 피트)를 마련해야 하고 장작을 미리 준비하여 불을 피우고 타고 남은 재를 치워야 하는 등 제법 손이 많이 간다.
앞마당은 잔디로 덮여 있고 뒷마당은 조망이 별로인 시골집은 백숙이나 가끔 삶아서 먹는 용도로 녹슨 화덕이 하나 있을 뿐 벽돌이나 시멘트로 만든 모닥불 자리가 없다. 낭만이라고는 전혀 없는 남편과 게으른 내가 겨울에 어쩌다 손님이 오면 피우려고 그런 수고를 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같이 쌀쌀한 계절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장작불을 보며 따스한 잉걸불에 손도 녹이고 고구마를 구워 먹는 감성이 왜 없겠는가? 다만 귀찮아서 참고 있을 뿐인데 마침 귀촌 카페에서 알게 된 회원이 얼마 전 시골살이를 접었다며 우리 동네에 있는 카페에서 모닥불 놀이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시 가본 시골집은 일주일 사이에 단풍이 산 전체로 내려왔고 화살나무 울타리는 빨갛게 물이 들었다. 커다란 벚나무는 이파리를 떨어뜨려 마당에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차에서 내려 그 풍경을 보는데 마음이 순간 철렁하면서 쓸쓸하고 스산한 기분에 휩싸였다.
봄부터 새순이 돋고 여름에 무성하던 그 나무들이 이제 겨울을 준비하는 걸 보니 내 마음이 왜 이다지도 시리고 허전한 건지 가을이 짧은 게 참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을씨년스러운 계절은 잠깐으로 족하다.
시골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동네 카페는 평일엔 한가하다. 원래는 펜션이었는데 바리스타 강사였던 아들이 카페로 개조해서 맛이 좋은 커피를 만들기에 주말엔 손님이 꽤 많이 온다. 주차 안내를 하는 분이 카페 주인의 아버지인데 우리 동네 전직 이장님으로 얼마나 친절하신지 집이 바로 카페 옆이라 언제든지 계신다.
여름엔 계곡 바로 옆이라 물소리가 상쾌하고 겨울엔 모닥불로 손님들의 마음을 유혹해서 동네 사람인 나까지 열심히 가게 된다. 커다란 가마솥을 바닥에 심고 벽돌로 주변을 다져서 만든 모닥불 자리는 지금부터 겨울까지 늘 장작불이 피워져 있다. 대여섯 명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있는데 둘이서 온 연인들은 저쪽에 따로 화로가 있어서 거긴 장작을 사서 두 시간 정도 자기들끼리만 불을 쬐다가 갈 수 있다. 고구마도 조금씩 팔기 때문에 구워 먹으면 눈과 입이 즐겁다.
이장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시더니 장작과 낙엽을 수북이 가져와서 활활 타는 불을 만들어주셨다. 덕분에 두 시간 넘도록 단풍을 보며 불멍을 하며 이 가을을 넉넉히 즐기고 오니 시골집에 굳이 마련하지 않아도 커피 값만 있으면 동네 카페에서 이렇게 즐기는 게 훨씬 낫다고 만족하는 중이다.
서리가 내려 고추도 끝나고 얼갈이와 쪽파만 조금 뽑아 왔다. 이제 곧 된서리가 내려 모든 초록이들은 색을 잃고 조용히 시들 것이다. 기나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