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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무섭지, 귀신이 무섭나?

무덤 있는 시골 밤길 걷기

by 화이트

당뇨 전 단계를 진단받은 지 다섯 달째이다. 초여름부터 시작한 식이와 운동이 뜨거운 한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었다. 식사가 끝나면 무조건 걷는 것으로 혈당을 낮추려 노력하는 중인데 해가 짧아지니 저녁을 아무리 일찍 먹어도 벌써 어둑어둑하다. 아파트에서는 주변을 두어 바퀴 도는 것으로 밤 운동을 대신하지만 시골에 가는 주말이 문제다.


산골이라 일찍 어두워지니 달 없는 밤에는 가로등이 드문 시골길이 어둡다. 그래도 운동을 건너뛸 수 없는 처지라 서늘한 산 공기를 맡으며 걷기 시작한다. 깜깜하니 멀리 가지는 못하고 집과 가까운 거리를 왕복할 수밖에 없는데 길가에 무덤이 하나 있다. 무덤까지 열 번 정도 왕복해야 운동량이 채워지니 무서워도 팔을 열심히 흔들며 걷는 수밖에 없다.


속으로는 '혈당이 무섭지, 귀신이 무섭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걷다 보면 무덤이 있어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태풍이 오는 중에 사람 없는 공원에서 우산을 쓰고 혼자 걷기도 했고, 삼복더위에 땀투성이로 운동하던 때도 있었는데 선선하고 조용한 가을밤에 무덤가를 걷는 것쯤은 거기에 비하면 힘든 일도 아니다.


계단 오르기를 오전 오후에 두 번씩 하고 나서 요즘은 15층까지 올라도 숨이 차지 않고 다리도 거뜬하다. 점심 후 실내 자전거 역시 몇 달 동안 꾸준히 탔더니 30분 동안 6킬로를 달리는 기록을 완성하게 되었다. 처음 타기 시작했을 때는 다리에 근육이 없어서 힘만 들고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야간 달리기는 무릎이 살짝 아파와서 경보로 바꾸면서 하고 있다. 근력이 없던 내가 이렇게 삼시 세끼 나눠서 운동을 하니 몸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식이는 운동보다 실천하기가 좀 더 어려웠다. 햇고구마가 유난히 맛있어서 탄수화물을 줄이는 식사가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아까워 한 입만 먹고 만족하는 자제력이 생겼다. 밥 양이 적다 보니 아무래도 운동 후 허기가 오는데 아몬드 한 줌이나 돼지감자 차를 마시며 심심한 입을 달랜다.


마침 당뇨에 좋다는 돼지감자가 우리 옆 밭에서 저절로 자라 서리가 내리길 기다려 캐보았다. 왜 돼지감자를 뚱딴지라고 하는지 캐면서 알았다. 키가 사람만큼 큰 줄기가 쓰러지면 호미로 그 밑을 살살 캐기만 해도 보라색 돼지감자가 뚱딴지처럼 툭툭 나왔다. 뿌리가 단단하지 않은지 하나씩 굴러 나오는 것이 뚱딴지처럼 재밌다.


이걸 썰어 잘 말린 후 살짝 볶으면 구수한 돼지감자 차가 된다. 못생기고 번식력 강해서 텃밭에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지만 내게는 소중한 뚱딴지이다.


이제 찬바람이 불고 추워지면 운동하는 일이 힘들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더위를 못 참는 내가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견뎌온 시절도 있는데 눈발이 흩날리는 한겨울에 꽁꽁 싸매고 걷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용기를 북돋우고 있는 중이다.


무덤도 눈이 하얗게 덮여 있으면 덜 무섭지 않을까?


큰길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동네의 초입
마지막 수확인 쪽파와 얼갈이 그리고 처음 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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