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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Nov 14. 2022

먹는 음식만 바꿔도 삶이 바뀐다.

채식보다 엄격한 자연식물식

건강식으로 식단을 바꾼 지 다섯 달을 채웠다. 아침엔 샐러드를 커다란 접시로 하나 가득 먹고 반숙 달걀 두 개와 오트밀 한 그릇을 먹는다. 점심과 저녁은 나물과 두부 등 다양한 반찬을 현미밥 반 공기와 함께 먹고 있다. 위가 없으니 많이 먹지 않아도 배는 부르지만 식후에 운동을 하고 나서 허기가 지면 마음이 좀 슬퍼진다.


예전 같으면 쉽게 먹을 수 있는 빵이나 과자, 과일 등으로 간식을 즐겼겠지만 이젠 식사 후 공복 4시간을 지켜야 해서 다음 끼니가 돌아올 때까지 시계만 쳐다본다. 7시 반에 아침을 먹고 나면 다섯 시간 간격으로 식사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식구 중에 나 혼자 건강식을 하려니 뭔가 서글펐는데 진격의 첫째가 자연식물식을 시작하면서 우리 집 식탁은 또 한 번 요동쳐야 했다. 자연식물식이란 육해공의 모든 동물성 재료는 허용하지 않고 '자연 상태에 가까운' 식물성 음식만을 섭취하는 것으로 가공 식품은 거의 먹지 않는다.


고기를 좋아했던 딸이 석 달 동안 그렇게 먹는 걸 보면서 나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내가 운동과 식이를 하는 걸 보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딸의 실천은 나보다 더 엄격했다.


딸은 쌈채소를 우적우적 씹으며 현미밥을 잘도 먹고, 내가 찌개나 국에 멸치를 몰래 넣어 육수를 내면 비린내가 난다면서 먹지 않았다. 채식으로 예민해진 딸의 미각이 바로 알아채는 바람에 나는 들깨 미역국을 다시마와 멸치 두 가지 국물로 끓였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고생하던 지독한 두피의 가려움과 각질이 극적으로 호전되는 걸 딸의 뒤통수를 보면서 확인하고 나니 딸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을 좋아하던 딸이 식단까지 바꾸니 석 달 동안 7킬로나 체중이 빠지고 원래도 좋던 피부가 빛이 날 지경이다.


스스로 노력하여 바꾼 식단으로 고질적인 병을 치료한 딸은 지금 자기 효능감이 하늘을 찌른다. 가장 바꾸기 힘들다는 식단을 완전히 변화시켜 건강을 되찾았는데 세상에 못할 게 뭐가 있느냐는 식이다. 나 역시 혈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변화하게 된 생활이지만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현미채식으로 잘 챙겨 먹고, 밥 먹었으니 운동 좀 해 주는 습관이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상쾌함을 가져왔다.


하체 근육이 생기자 운동도 처음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스쿼트 같은 동작을 몇 달 전에 할 때는 얼마 하지 않아도 힘들어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이젠 오래 해도 힘들지 않다. 실내 자전거를 탈 땐 신나는 댄스곡을 틀어놓고 페달을 밟으면 다리가 알아서 빨라진다.         


딸은 꾸준히 하던 운동에 식단만 바꿨을 뿐인데 건강이 좋아지자 긍정적인 자아가 생기고 성격까지 편안해졌다.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하루하루 바쁘게 지켜야 할 식단과 운동이 있으니 나른하게 늘어져 있을 시간이 없고 운동을 하고 나면 산뜻한 기분이 종일 유지된다.


집에서는 딸 때문에 고기를 못 먹지만 주말의 시골집에선 장작불에 오가피를 넣은 닭백숙을 고아 남편과 맛있게 먹었다. 마당에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서 비가 내리기 전에 모두 쓸어 모아 비닐에 담아뒀다. 내년 봄 텃밭에 잡초를 방지하는 용도로 덮어줄 낙엽이다.


늦가을의 시골 마당에서 낙엽을 쓸다 보면 도시의 길거리에 쌓인 낙엽을 치워야 하는 분들의 수고가 생각이 난다. 교사 시절 11월에 주번을 맡게 되면 아침마다 낙엽을 쓸고 담아야 해서 청소해야 할 범위가 훨씬 넓어져 힘들었던 기억도 난다.


가을은 이제 완전히 깊어졌다.    



산골의 산책길


돌담 아래에도 낙엽은 쌓인다.


커다란 벚나무 세 그루에서 떨어진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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