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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pr 17. 2023

텃밭 채소로 자연 식물식하는 우리 집

피기 전에 따는 화살 나무 순

시간이 많이 쌓였다. 내가 건강식을 시작한 지 열 달이 되었고 나보다 두 달 뒤에 딸이 자연 식물식을 시작했으니 그동안 우리 집에서 먹어 치운 채소와 과일 그리고 고구마로 산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당뇨와 건선의 치료 방법으로 선택한 식이였지만 병뿐만 아니라 일상과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준 식단이다. 생채소와 나물의 식단은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순하고 평화로워서 번거롭지 않았다. 나는 기름기 없이 심심하게 먹는 반찬 덕분에 밥 양을 줄일 수 있었고 딸은 고기 대신 탄수화물로 부족한 배를 채우며 건강해지는 경험을 함께 했다.


먹는 일이 이다지도 중요한데 주부 경력 30년인 나조차도 현미채식을 왜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되는지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마침내 몸이 고장 나서야 공부를 하고 나서 입맛을 고칠 수 있었다. 딸이 말하길 눈에 보이는 피부병이 니었으면 자신도 식단을 바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 등에 업혀 처음 한 말이 경상도 말로 "좀 도!(줘)"였다고 한다. 조그만 손을 내밀어 남이 먹고 있는 음식을 향해 첫 입을 떼었다니 타고난 식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웃의 카이스트 나온 딸은 첫 말이 "책"이었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나는 그저 걸신들린 사람일 뿐이다.


정해진 식단대로 먹는 건 날마다 똑같은 옷을 입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라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고정된 식사를 해도 언제나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밤마다 내일 아침에 먹을 샐러드와 달걀과 오트밀과 통밀빵을 생각하며 기대에 차서 잠든다. 딸은 아침에 과일식을 하는데 역시 맛있고 달콤한 사과를 먹을 생각에 기쁘게 잠든다고 했다.  


아침 운동으로 장보기를 겸한 걷기를 다녀와서 딸들이 먹을 첫 식사를 준비하려면 바쁘다. 나물을 삶고 무치고 연근을 데치고 채소국을 끓여 쌈채소와 함께 한 상 푸짐하게 차려서 점심을 먹는다. 통밀가루에 반죽한 쑥전과 울타리로 심은 화살나무 순을 따서 홋잎나물을 무치니 봄밥상이 맛있다. 딸은 오이향이 싫다고 안 먹었는데 채식과 더불어 입맛이 변해 오이무침을 맛있게 먹는다. 콩나물과 오이무침과 홋잎나물을 넣어 현미밥과 비비면 고급진 식감으로 식당에서 사 먹을 수 없는 비빔밥이 된다.


이런 식단으로 채운 하루하루가 쌓여 딸은 건선을 자연 치유하게 되었고 나의 혈당은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텃밭에 뿌려놓은 쌈채소와 샐러드용 루꼴라가 며칠 전 내린 비로 조그맣게 싹이 올라왔다. 이제 온갖 푸성귀가 밭에서 수확될 터이니 우리 집의 채식 식단은 본격적으로 생기를 찾게 될 것이다. 조선 오이, 양배추, 가지, 아삭 고추, 부추, 모둠 상추, 유럽 상추, 쪽파, 파프리카, 감자, 호박 등을 심고 수확할 예정이다. 농사를 지어도 남편과 내가 주로 먹었을 뿐이었는데 이젠 딸도 함께 먹으니까 작물을 더 신경 써서 키워야 할 이유가 생겼다.


작년은 당뇨 전단계 진단과 손목 골절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변화된 식이에 적응하고 운동하느라 마음도 몸도 모두 격랑의 시기를 보냈는데 세월이 지나고 딸이 식단 관리에 합류하니 모든 것이 수월해지고 편안하다. 시골 살이를 홍보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지만 이젠 건강하게 먹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식단 홍보로 방향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시골에서 가져온 텃밭 채소로 채식 밥상을 날마다 차린다는 내 말에 모든 걸 다 가진 분이라는 암카페 어떤 회원의 말을 얼마 전에 들었다. 어린 순이 활짝 피기 전에 따야 해서 '부지런한 며느리도 세 번 밖에 못 딴다'는 홋잎 나물을 조금 나누어 드렸다. 꼭 비빔밥으로 해서 드시라면서 말이다.        


홋잎나물과 월동 시금치
아기 손바닥만한 머위잎
돌나물과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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