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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May 03. 2023

시골 생활의 오월 사랑

일 년 중에 가장 좋은 달이다.

텃밭에 모종과 종자를 심는 계절이 돌아왔다. 감자나 완두콩 같은 작물은 3월에 심어도 되고 씨앗을 뿌리는 건 4월에 해도 되나 늦서리를 피해야 하는 모종은 5월 초가 안전하다. 시장엔 모종이 4월부터 나와 있는데 종종 밤기온이 낮아 얼어 죽는 일이 많다. 그런데도 왜 모종을 파느냐는 질문에 상인은 "그래야 또 사러 오죠."라는 답을 한다.


초보 농부의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남들처럼 빨리 수확하고 싶은 욕심에 모종을 일찍 심고 물을 많이 주어서 죽이는 일이다. 그리고 급한 마음으로 충분히 가스가 빠지지 않은 퇴비를 연약한 모종에 뿌리면 십중팔구 말라죽는다. 이건 내가 자주 하는 실수인데 지난 주말에도 이제 겨우 다글다글 싹이 올라온 상추 모종에 웃거름을 퇴비 포대 채로 뿌렸더니 몇 시간 뒤에 상추 잎이 하얗게 되어 있었다. 다시 상추씨를 뿌리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농사 경력 십 년이 되어도 타고난 급한 성격은 어쩔 수 없어 모종들을 이다지도 못 살게 구니 지나고 나서 항상 후회한다. 올해는 작물을 풍성하게 수확하여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도록 욕심을 낸 결과이다. 주어진 대로 만족하며 소박하게 살기로 해놓고 실천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씨앗을 뿌려 싹이 올라오고 모종들이 튼튼하게 자라는 걸 보는 기쁨은 꽃 핀 걸 볼 때와 기분이 다르다. 꽃은 누굴 위해 저렇게 어여쁜가 싶지만 텃밭의 싹들은 주인인 나를 위해 잘 자라고 있으니 기특하고 뿌듯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변하는 계절 따라 농사는 시작되었고 여름이 다가올수록 많은 수확물들을 내어줄 것이다. 전원주택이 있어서 좋은 점은 텃밭에 농사를 짓는 재미와 꽃을 키워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일에 지친 남편과 딸들은 시골집에 가서 쉬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오늘도 두 딸은 아침 일찍 시골로 출발하고 주말까지 쉬다가 온다. 식습관 코칭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 첫째는 너무 바빠 눈 뜨자마자 잘 때까지 쉴 수 없어서  많이 지쳤다. 둘째는 실내디자인 일을 했는데 시골집에 새로 인테리어를 해주겠단다. 조명과 소품에 이어 소파와 선반이 들어오는 날이라서 오늘 언니와 함께 일찌감치 시골집으로 갔다. 비용은 내 집이니까 당연히 내가 줬다.


8년 전, 집을 지을 당시 타일과 조명을 고르라는 건축가의 말에 "저는 안목도, 취향도 없어요."라고 말하며 인테리어를 맡겼는데 나는 만족했지만 딸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요즘 트렌드에 맞춘 딸의 선택에 뭐든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만약 시골집을 팔게 될 경우엔 자신이 노력한 대가로 3%의 지분을 달라는데 숫자에 약한 나는 얼마쯤인지 모르고 알았다고 했다.


이렇게 나의 시골집은 온 가족들의 필요에 의해 사랑받고 있다. 봄비가 일주일마다 내려 모종 걱정을 내려놓은 나는 앞으로 벌레가 나오는 초여름까지 오월의 시골집에 자주 가서 텃밭을 돌보고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며 가장 좋은 시기를 즐길 예정이다. 그럴듯하지만 현실은 마당을 기어 다니며 수많은 잡초를 뽑는 내 신세는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이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는 너란 존재, 이름 모를 잡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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