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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l 11. 2023

시골집을 안 지었으면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서울의 우리 동네 공원에서 찍은 노을도 멋있습니다만..

시골집을 짓고 여덟 번째 농사를 고 있다. 봄이 오면 올해는 무슨 작물을 많이 심어볼까 즐거운 고민을 한다. 우리 은 땅콩이 가장 넓은 밭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봐야 두 고랑이지만 남편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정성을 들여 키우는 작물이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멀리 해야 하는 나는 심고 캐기는 하지만 감자는 절반을 시누이에게 나눠줬고 옥수수도 밭 가장자리에 돌아가며 심긴 했지만 먼저 달라는 사람이 임자가 될 것 같다.


농사의 니은 자도 모르던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잦았기에 작물마다 실패하는 이유를 몰라서 답답했다. 토마토는 곁순을 따야 한다는 걸 몰라서 가지만 무성하고 열매는 별로 안 달린 적도 있었다. 매운 고추와 안 매운 고추를 함께 심으면 벌이 수정을 해서 모두 매워진다는 사실도 몰랐다. 꽃도 마찬가지여서 이웃 마을겹접시꽃이 화려하게 예뻐 모종을 얻어다 심었다. 그런데 동네에 많은 홑접시꽃과 교잡이 되어 다음 해에는 홑접시꽃이 피는 걸 보고 이걸 어디다 따져 물어야 하나 했다.


오이나 호박은 열매가 안 달리는 수꽃과 암꽃이 있고 나무도 암수가 있어서 같이 심어야 열매가 맺힌다니 음양의 오묘한 이치를 농사를 짓게 되자 알게 되었다. 이치를 깨닫고 나니 일단 궁금증이 풀려 속이 시원하고 막막하던 농사가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텃밭에 밑거름과 웃거름을 주고 작물을 보살피되 주말에만 오니까 적당한 무관심도 더해져 지난주에는 토종 오이를 스무 개나 딸 수 있었다. 작은 오이는 샐러드용으로, 많이 자라 씨가 들어 있는 오이는 속을 파내어 오이 무침을 하거나 장아찌를 담았는데 오늘은 부추를 넣어 오이김치로도 담아보려고 한다.


양배추 모종을 세 개 심어서 그중 하나가 먼저 결구가 되었다. 상추 수확이 끝나 양배추를 채 썰어 아침 샐러드로 먹었는데 모종 때부터 물 주고 망을 씌워 알뜰살뜰 석 달을 기다려 먹는 양배추라 별 맛이 없어도 맛있다. 맵지 않은 아삭 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으면서 이렇게 마음 놓고 풋고추를 먹는 건 농사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다. 찌개에 넣을 청양고추가 필요했기에 멀찌감치 심어놔도 여지없이 풋고추가 매웠기 때문에 올해엔 청양고추를 아예 심지 않아서 가능했다.


남편은 심어 놓은 나무들이 자라자 가지치기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전지가위도 종류대로 사서 마당만 나가면 나무를 자른다. 내가 시키지 않아도 유일하게 찾아서 하는 일인데 스트레스도 풀리고 서서 하는 작업이라 힘들지 않은 것 같다. 두 그루의 소나무와 여섯 그루의 유실수를 자르고 그것도 모자라 옆 밭에 있는 사과나무 가지를 자르더니 올해엔 열매가 많이 달렸다. 블루베리는 지난해에 전정 작업을 해줘서 다섯 그루에서 서너 번이나 딸 수 있었다. 올해는 새들도 산에 먹을 것이 넉넉한지 블루베리를 쪼아 먹지 않아서 양파망을 씌우지 않고도 넉넉하게 먹을 정도로 남아있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농작물이 잘 되고 수확량이 늘어나니 마음이 이렇게 풍족할 수 없다. 내가 못 먹는 작물이지만 많이 심어 주변에 나눠줄 생각에 농사가 갈수록 재밌다. 비가 오락가락하면 잡초가 기승이라 시골집 주차장과 뒷마당이 자갈밭에서 초록마당으로 변해가지만 내버려 둘 생각이다. 우리는 주말에만 가니까 괜찮은데 이웃들이 사람 안 사는 집이라고 흉보는 게 걱정일 뿐이다. 잡초와 싸워서 이길 수 없으니 서리 내릴 때까지 참으면 된다.


주말 시골집이 있으면 남편이 말하는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왕복 두 시간 동안 남편과 나는 일주일의 밀린 얘기를 한꺼번에 한다. 그래서 우리 둘 사이엔 딱히 비밀이 없다. 남편이 시누이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까 시누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면서 부러워했다. 남편이 현장에서 힘든 일이나 심정을 말하면 아무래도 좀 더 배려를 하게 되고, 내 이야기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남편에게 한참 동안 수다를 떨 수 있다.  


가진 돈을 다 털어서 시골집을 지어버려 아이들을 따로 독립시킬만한 여유 자금이 없는 것과 농사짓느라 관절에 무리가 오는 것을 조심하면 답답한 서울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세간에는 시골 생활의 단점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고 대가 없는 결실이 없는 법이니 벌레에 물려 가렵고 땀으로 범벅인 농사지만 시골집이 아니었다면 무엇을 하며 지냈을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오트밀과 통밀빵을 대신해서 콩물을 먹기 시작했다.


애호박 두 개가 빠졌다.

         

문제의 홑접시꽃은 키가 커서 묶었다.


왼쪽 사진이 겹접시꽃이고 오른쪽은 홑접시꽃


올해 처음으로 핀 국대접보다 큰 수국


방울방울 토마토



잡초를 말끔히 뽑은 후에야 보이는 고구마순



땅콩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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