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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Jul 29. 2023

장마철엔 집안으로 비가 샌다.

시골집에도 아파트에도 비가 샌다.  

시골집의 로망으로 몇 가지가 있다. 벽난로, 흔들 그네, 조적 욕조, 천창이 그것인데 모두 해봤다. 결론은 안 하는 게 낫다. 벽난로는 미세 먼지와 재 치우기, 장작 때문에 생각보다 귀찮다. 흔들 그네는 손님이 왔을 때 포토 존으로나 쓰일 뿐, 비 올 땐 비가 들이쳐서 못 앉고 여름엔 모기 때문에 오래 못 앉아 있는다. 조적 욕조는 기름보일러를 때는 시골집에선 온수가 감당이 안 돼 물 받을 일이 없다. 오늘 주제인 마지막 로망 천창은 다락방에 누워 달빛과 별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나 작은 창으로는 달을 시간 맞춰 보기가 어렵고 별은 마당에 나가서 보는 게 훨씬 잘 보인다.


문제는 천창의 실리콘 테두리가 세월이 흐르면 굳어져서 틈이 벌어지고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엔 그 사이로 빗물이 샌다. 새는 빗물은 집안으로 똑똑 떨어져서 빗물 받는 통을 네 개나 받쳐 두어야 했다. 천창에서 새는 비는 서까래를 타고 점점 아래로 내려와서 처음엔 다락과 계단에 물받이를 두었다가 거실까지 물통을 늘어놓게 되었다.


시공기술사라는 남편은 장마 초기에 비가 새니까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천창에 실리콘 코킹 작업을 하느라고 했다. 하지만 입으로 작업을 지시하는데 익숙한 남편은 실제 시공엔 믿음직하지 않아서 오히려 비는 더 새고 말았다. 비는 세차게 퍼붓고 집안에서 실로폰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빗물을 보니 심란하기가 결혼을 도로 물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 너무 꼼꼼해서 후벼 파느라 시원시원하게 일을 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지붕에 올라가 실리콘을 처덕처덕 발라서 아예 천창이 열리지도 않도록 밀봉을 시켜버릴 걸 남편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빗물 떨어지는 위치를 잘 맞춰서 커다란 대야를 받쳐 놓고 걸레까지 잘 깔아놓은 뒤에 집으로 돌아오니 지은 지 삼십 년이 된 낡은 아파트는 다용도실 문 위에서 물이 떨어져 부엌 바닥에 물이 흥건하다. 건축물의 하자 소송에 법원 감정일도 하는 남편의 설명에 따르면 뒷베란다에 접한 외벽에 금이 가서 비의 방향이 벽으로 향하면 틈새로 비가 샌다는 것이다. 우리 집 말고도 여러 세대가 비가 새서 이번 장마에 집집마다 난리가 났다. 밤새 거실로 비가 떨어진 줄 몰라서 로봇 청소기며 공기청정기가 망가진 집도 있었다.


비가 많이 올 땐 아파트에 있으면 시골집 천창에 비가 새는 게 걱정이고 시골에 가있는 주말에 비가 오면 서울 아파트에 비가 샐까 걱정이라 장마철엔 근심 걱정이 떠날 새가 없다. 남편은 시골집에 비가 샌다는 말은 남에게 절대로 하지 말라고 펄쩍 뛰며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어찌나 심란하고 실망스러운지 하지 말라는 짓을 이렇게 하고 말았다.


다행히 남편 주위엔 모두 건축일을 하는 사람이라 이번 주말에 전기 기사인 후배를 데리고 시골집으로 가서 거실 조명을 새로 고 천창의 코킹 작업도 같이 하겠다고 했다. 지붕에 올라간 김에 딱따구리가 쪼아서 구멍이 난 벽도 해결을 하라고 해야겠다. 딱따구리가 둥지를 만들어 들락날락하는 걸 남편이 봤다고 했다. 장마철이 되면 무섭게 자라는 잡초는 내가 뽑으면 되지만 남편 손을 빌려야 하는 이런 일은 여러 번 부탁을 하고 말을 해야 하니까 성격이 급한 나는 그럴 때마다 화를 못 참고 남편을 들볶게 된다.           




딱따구리가 쪼아서 구멍이 난 벽



장마 초기에 벌써 풀밭이 된 주차장



하지만 장마 끝에 무지개


남편 후배가 바꿔 달아준 조명



교체하기 전의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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