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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Feb 24. 2016

내가 짓고 싶은 시골집

남편은 벽돌로 된 깔끔하고 현대적인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평생 건축일을 해 온 사람이니 나름대로 집에 대한 꿈이 있겠지만 시골에 가야겠다고 먼저 말한 내 생각은 달랐다.


시골집인데도 마치 아파트처럼 새시 문을 닫고 나면 외부와 차단되는 밀폐된 실내 공간이 나는 싫다.  


내가  원하는 집은 창호지로 된 문이 있고 툇마루와 아궁이가 있는 흙집이다.


시골집다운 정감이 있어야 하니 규모는 아담할 것이며 황토를 발라 친환경적으로 짓되,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요구사항만 갖추면 된다.


그동안 남편이 집을 지어줄 것으로 기대를 하다 보니 집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이 어려웠는데 내가 짓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보니까 갑자기 가슴이 뛰면서 즐거운 집 짓기가 되었다.


집은 건축주의 철학이 담겨야 한다더니 최종적인 결정은 결국 그 집에 살고 싶어 하는 내가 내려야 하는 것이 맞았다.  


나는 요새 틈만 나면 머리 속으로 구체적인 집 짓기에 들어가서 분주하다.     


현관과 별도로 산이 보이는 서쪽으로는 낮은 창호지 문을 하나 내고 그 문 바깥으로 조그만 툇마루를 놓을 것이다.


해질 무렵 그 마루에  걸터앉아 멍하니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면 나는 '아아.. 이제 다 이루었다.'라고 한숨을 쉬게 될 것이고, 다음 날 아침에는 눈이 부신 아침 햇살을 피해 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다 이루었으나 그래도 커피는 맛있네.'라며 벙긋거릴 것이다.  


툇마루 옆엔 아궁이를 놓아 저녁이면 군불을 때서 바닥은 뜨뜻하고 공기는 선뜻한 방에서 요를 깔고 잠을 잘 것이다.


불을 때고 남은 잉걸에는 농사지은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먹고 가끔은 생선도 석쇠에 올려 치지직 소리를 내며 맛있게 구워 먹을 테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창호지 문을 탁 젖히기만 하면 신선한 공기가 방으로 들어오고 몸을 일으켜서 신발만 꿰면 흙마당을 밟을 수 있는 그런 집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시골집이다.


비 오는 소리가 방안에서도 쏴아 들리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눈 감고 누워서 들으면 참 행복할 것 같다.


눈이 오는 밤이면 창호지를 바른 문 쪽이  훤해지면서 서늘한 기운이 끼쳐와 밖을 보지 않아도 '어머, 눈이 오나 봐.' 라고 짐작하게 되는 집


남편이 좋아하는 텔레비전 대신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를 켜고 조용히 책을 볼 수 있는 나의 집


봄이 오면 나는 집을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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