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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Apr 06. 2016

마지막 제사인 줄 알았는데..

반전이 있었다.


마흔셋의 큰집 조카는  자신이 부모님 대신 제사를 모시고 싶다고 했다.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면 함안 조가가 아니라는 발언에 시숙을 비롯하여 사촌 시숙들과 숙부님은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미 대세는 제사를 다시 모시는 걸로 기울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제사를 준비하고 수고하는 큰집 형님을 대신해서 나라도 한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댁 식구들이 즐비하게 앉아 있는 상황인데다 이미 판도가 기울어진 분위기에서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웠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시작했다.


"제가 암에 걸리기 전에는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참 힘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내게 무얼 하라고 기대하지 않으니 이제야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큰집 형님도 저와 같은 소화기 계통의 암이고 이제는 인생의 짐과 의무를 모두 내려놓고 새처럼 자유롭게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간소화해서 지낸다 해도 완벽하고 철저한 형님에겐 아예 없애지 않는 한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 지내기로 한 아주버님의 결정에 정말 혁신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조카가 다시 모시겠다는 얘길 들었을 땐 제사를 안 지낸다는 얘길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랐습니다."


대강 이런 발언이었는데 떨리는 가운데 내가 말을 끝내자 사촌 시숙 중 한 분이 불쾌한 표정으로 "일 년에 한 번인데 그게 어렵다고 몸 아픈 얘기까지 꺼내야 하겠느냐?"며 화를 내었다.


그러자 그걸 나무라는 발언이 오가고 마침내 벌떡 일어난 시숙은 집에 가겠다며 흥분하는 등 잠시 어수선했지만 곧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나중에 그 시숙은 내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앞으로는 제사를 간소화해서 서로 오가는 일에도 부담을 가지지 않고 편하게 지내며 시묘는 없애는 걸로 결론을 맺었다.


따라서 명절에 우리가 큰집에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처럼 부모님 제사에 꼭 참여하고 싶은 남편은 그것만은 양보하지 않았다.


큰집에서 지낼지, 조카의 집에서 지낼지 그도 아니면 질부가 제사음식을 준비해와서 큰집에서 지낼지는 모르지만 나이도 많고 몸도 아픈 형님이 더 이상 제사에 신경 쓰지 않고 홀가분하게 사시기를 나는 오직 그것만 바랄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큰집에서 우리 부부가 와서 자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남편을 설득하기가 여전히 어렵다.


주부의 입장에서는 손님이 자고 가는 일은 무척 부담스럽고 힘이 들기 때문인데 형집에서 자란 남편은 그 사실을 아무리 깨우쳐 주어도 납득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시숙의 표현처럼 이런 말이 있나 보다.


인간 막내는 개망나니라는~


나는 막내인 남편과 사는 죄로 늘 큰집 형님의 눈치를 받으며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외손자 돌 때문에 제사에 함께 못 간 시누이 집에 가서 신이야 넋이야 떠들어대며 경과를 보고할 일이 남아 있다.


시누이는 친정 제사에 가고 싶은 사람이라 아마도 이 소식을 반겨할 것이다.


사방에 봄꽃은 흐드러졌는데 어수선한 마음은 좀처럼 화사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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