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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 Oct 17. 2016

집이 완성되다.


브런치 독자가 삼백 명이 넘었다.


글을 써서 남에게 보여주는 사람의 입장에선 읽히는 독자 수와 덧글로 자신의 글을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이 보기엔 하찮게 보이는 숫자라도 나에겐 각별한 기쁨을 준다.


브런치에는 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따뜻한 그림일기를 쓰는 작가도 있고 박학다식한 내용으로 영양가 있는 글을 쓰는 분도 많다.


요즘 내가 자주 보는 글은 29세의 암환자의 일기 같은 글인데 젊은 나이에 겪은 절망과 고통을 처절하지는 않지만 울림은 깊게 쓴 글이다.


같은 암환자인데 글의 퀄리티(?)가 나와는 왜 이렇게 다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구독자 수도 당연히 나의 세 배쯤 된다.)


며칠 동안 궁리해 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다.


나는 태생적으로 밝고 유쾌한 사람이다.


소설을 쓰든 수필을 쓰든 글이라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인데 나는 수다스럽고 친화력이 좋아서 사람과 어울리길 좋아하니 글도 조잘조잘 침 튀기며 말하듯이 가볍고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뭔가를 생산해내려면 먼저 흡입하는 양이 풍부해야 하는데 글을 쓰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고 소화해야 한다.


많이 읽다 보면 절로 쓰고 싶어 지니까 브런치에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책벌레이다.


나는 책 읽은 분량도 적을뿐더러 광범위하지도 않아서 다만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즐겨 쓸 따름이다.


하지만 이젠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마흔 후반에 위암이 발견되어 수술하고 항암 하느라 고생을 하긴 했지만 오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쉬게 되면서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다.


평생소원하던 전원생활도 시작하고 모아놓은 돈으로 집도 짓고 암 카페에 글을 쓰면서 작가님 소리까지 들으며 내가 원하던 것을 모두 이루었다.


암에 걸려보니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이 감사이고 자신과 삶이 소중하게 여겨지면서 그런 마음을 글로 다 풀어냈더니 회원들의 열성적인 지지도 받았다.


하지만 사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더 이상 꺼내놓을 것이 없다.


이제 예전 같은 체력이 회복되고 수술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기쁨과 감사에 푹 젖어살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암 걸리기 전의 나로 돌아가려는 것 같다.


재미가 빠질대로 빠진 글은 더 이상 카페 회원들의 관심을 끌 수도 없는데 한번 맛본 욕심은 쉽사리 나를 놓아주지 않아 계속 글을 쓰게 만든다.


그만 써야지 다짐할수록 더 집착하게 되는 나를 보니 남의 경우라면 마음껏 비웃어 줬겠지만 그게 나 자신이니 어리석음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다.


고뇌하고 사색하지 않으며 책도 깊고 넓게 읽지 않고 메모장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내가 무슨 배짱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당분간 책이라도 열심히 읽으며 내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다짐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약점이자 고민이다.


내 남편은 황태자, 애국자, 점쟁이, 울보 등등으로 주로 흉보았으나 요새 남성 갱년기가 한창인 남편이 밉기 시작하니까 남편을 소재로 하는 글을 더 이상 쓰기 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힘들게 하던 첫째는 요즘은 집을 나가 기숙사 생활을 하더니 철이 들었는지 신랄하게 까대던 딸 욕도 어느새 자랑질로 바뀌어 조심한다고는 했으나 티가 안 날 수가 없었나 보다.


암 카페는 새로운 회원들이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낯선 이름들이 등장하다 보니 저마다 관심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 눈에 보인다.


때로는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길들여진 나는 조그만 에피소드가 생겨도 득달같이 글을 써대며 읽는 사람을 피곤하게 한 죄가 이미 크다.


죗값을 받느라 마음이 위축되고 잘난 것도 없이 설쳐댄 내 모양새가 부끄러워 딱 죽을 지경이다.


막상 집이 다 지어지니 좋기는 한데 남편이 더 좋아라 하니까 어째 흥이 식는데다가 돈 들어갈 일이 줄을 서있지만 남들은 속도 모르고 얼마나 좋으냐며 부러워한다.


이제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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