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과대평가했던 것 같다.
어릴적 좋은 학군에서 남매를 키우고자 이사하신 엄마 덕분에 유독 부유한 친구들 사이에서, 유복하지 못한 집에서 나고 자란 나는 빈부격차를 빨리도 체감하게 되었지만, 그들보다 뭐든 빨리 배우고 주변의 인정도, 예쁨도 쉽게 받았더랬다.
아버지는 평생 이해하기 어려운 분이였고, 엄마는 늘 통장 잔고를 걱정하셨지만 나는 괜찮았다. 멋내기 시작한 어린 딸에게 돈을 털어 18K 귀걸이를 사주시던 엄마와 친구들과 간 콘서트 현장에서 전화기 넘어로 음악을 들려주던 오빠와 시트콤 같은 일상을 보내면서 어릴때부터 다른 이들보다 내가 더 행복해질꺼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나에겐 늘 있었다.
원하는 대학을 가고 적당히 이름 내놓기 좋은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 강도높은 업무에 찌들고 피폐해지면서도 다양한 이들과 연애도 하고 또래 친구들과 교류도 하면서 버티던 나는 회사 내에서는 별다른 목표를 찾지 못한채 아직 내 행복의 정점은 오지 않았다며 결혼을 기다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갑작스런 공황장애를 지켜보며처음에는 머지않아 둘이 잘 이겨낼꺼라고 자신했지만, 생각보다 더딘 차도에 그도 지치고 나도 지치는 날이 반복되고, 남편이 갑자기 말수만 줄어도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일이, 여분의 약을 가방에 챙기는 일이 점점일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 건강건진센터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X-ray 사진에 이상한게 보인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전화를 받고, 한 달 동안 대형병원 세 군데를 전전하다 암진단도 받았다. 이상했다. 행복은 나의 것인데.. 30대에 암진단이라니..
처음에는 억울했다. 나 진짜 남한테 피해 되는 일 안하고 착하게 살았단 말이다. 아니다. 속으로는 불평불만,욕을 막 했어도, 적어도 속으로 삭히고 나 개념있게 살았단 말이다. 세상 나쁜 놈들은 건강하게 부유하게 잘 만 살던데 왜 나한테 이런? 요양 아닌 요양을 하면서 이런 불행이 왜 내게 왔을까 수없이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왜 내게는 불행이 오면 안되는데? 너는 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암을 진단 받을때 담당의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런 병에 걸리기엔 너무 젊다고 생각하죠? 제 환자 중에는 8세 아이도 있어요.” 그는 내게 아무렇지 않게 수술설명을 하며 사망 확률은 몇 프로구요 이런이런 위험이 있어요.” 라고 기계처럼 말했었다.
나는 죽지 않았다. 다행히 항암도 받아 않았다. 내가 죽으면 남편에게 다 준다고 약속했던 내 예금도 아직 내 소유다. 그리고 여전히 좋은 일, 나쁜 일 다 겪으며 살아간다. 바꿘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힘든 일들을 꾸역꾸역 무식하게 버텼다면 이제는 적당히 내 자신을 위해 피해 간다는 것과 뉴스 속 불행을 겪은 사람들을 보며 진심으로 함께 눈물 짓는 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