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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Aug 16. 2019

과거가 있는 사람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에게 과거는 없다

너의 시간을 함께 살다 보니, 밤에는 너와 같은 시간에 잠들기 일쑤다. 대신, 새벽에 일어나 엄마의 하루를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오롯이 엄마만 쓸 수 있는 새벽의 시간은, 일찍 잠든 덕분이다. 


그런데, 그 날은 너와 함께 잠들기 싫었다. 일찍 잠들기 아쉬운 마음이 드는 날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를 담은 ‘비커밍 제인’이었다. 


이렇게 밤에 영화를 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였는지, 지나치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탓일까. 그녀의 비밀, 어찌 보면 그녀의 과거를 내가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뛰었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들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대표적인 소설 '오만과 편견'은 영화 ‘비커밍 제인’과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였다. 앞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매 순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선택을 해 나갔던 그녀의 스토리는, 그녀에게는 고난의 연속이었을지는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빠져나올 수 없는 마력과도 같았다. 


제인 오스틴은, 끝까지 이어갈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이었던 톰 르프로이와 잠시 도피 행각을 벌였다가 하루도 안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한 부인은 제인 오스틴과 관련한 부도덕한 소문이 있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은 당당했다. 그리고 당시 여자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이야기를 한다. 스스로 돈을 벌어 살 수 있다고. 작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제인 오스틴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물론, 그녀는 천재 작가로 여겨지며 지금까지도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엄마는 누구든지 제인 오스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당시의 고정관념을 깨고, 돈이 중시되는 결혼보다는 사랑을 선택하고자 한 것. 누군가에게 기대는 삶을 살기보다는 자립하고자 했다는 것. 자신의 글 실력을 혹평하는 말을 듣고도 슬퍼하고 주저앉기보다는, 자존심 상해하고 다시 뜯어고치며 더 성장하고자 했던 것. 이 모든 것이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흘려보내지 않고 만들어갔기에,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비커밍 제인> 중


‘과거가 있다’는 말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무엇인가 숨겨야 할 것 같은 이미지이다. 슬프고 아련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과거가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지나온 시간 모두가 과거다. 그리고 과거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따라 지금의 내가 있다. 누구나 갖고 있는 과거다. 이러한 시간에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과거가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의 과거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비커밍 제인을 보며 새삼 느낀 것은, ‘과거가 있다’며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준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과거를 보낸 것에 대한 시샘은 아닌가 싶었다. 


모두가 과거라는 시간을 갖고 있지만, 누군가는 스토리가 있는 과거를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는 남들과 비슷한 과거를 보낸다. 누구나 똑같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굳이 ‘스토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간혹,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천재성을 드러내며 주목받는 사람들을 본다. 감히 넘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실력을 보면 처음에는 부럽고 질투도 나지만, 마지막에는 이내 나는 저런 천재가 아니지 라는 식으로 체념하고 만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니 가능한 것이라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편하다. 나는 애당초 안 되는 사람이라고 내가 결정지었으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엄마는 이제 ‘천재성’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많은 책을 읽어볼수록, 우리가 얼마나 많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천재’라는 프레임을 씌웠는지 생각하게 된다. 피눈물 나는 노력을 통해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하면, 그것이 오히려 평범하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일까. 나와는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기에 저렇게 성취했다고 믿는 것이 편하기 때문일까. 


엄마는 네가 과거가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자신 있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래서 너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너는 천재가 아니다. 어린 시절, 짧은 순간,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덧붙여 나가지 않는다면 시들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지금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과거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너만의 ‘비커밍 제인’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내일이면 과거가 될 오늘의 시간을 절대로 흘려보내지 말고, 만들어 나가렴. 



Photo by Klim Sergee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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