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 Ji Youn Aug 23. 2019

나의 일상을 여행지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기

한창 바빴던 몇 개월을 보내고, 잠시 휴식할 수 있는 기간이 생겼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매일매일의 일정이 생길 예정이었기에, 아무런 계획이 잡혀있지 않은 이번 한 주는 생각만 해도 여행을 떠나기 직전인 것 마냥 들뜬 기분이었다. 


몇 날 며칠을 온종일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황금연휴는 아니었다. 엄마에게 생긴 여유라고 해도, 네가 유치원에 가서 열심히 까불고 있을 그 시간뿐이니 말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의무감에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과로 그 시간을 채웠었다면, 이번 일주일은 내 마음대로의 시간으로 꾸며보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의 시간’이라고 이름을 붙이다 보니, 뭔가 특별한 것을 해야만 어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갈 수도 없었다. 시간이 있어봐야 오후 3시 전에는 모두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안 되겠다는 결론이 나자, 우울해졌다. 


난 이제 노는 것도 못 하는구나.




우울한 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벌써 그 특별한 기간의 시작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마음은 급해졌다. 진짜 아무거나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공유 경제라고 이제는 도로에서 킥 보드까지 타는 시대인데, 엄마는 지금까지 공유 자전거를 두 번 정도밖에 타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월요일은 너를 유치원 셔틀에 태우고 일단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2시간 이용 금액을 결제하고 서울 자전거 따릉이를 탔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기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는 일단 피하는 것이 유리했다. 사람들이 없는 거리는 자연스럽게 공원 가는 길로 이어졌다.


토요일에도 우리 가족이 함께 왔던 공원이었다. 이틀 만에 다시 방문한 공원이, 엄마에게 주어진 특별한 시간의 스케줄에 넣을 만한 장소인가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탄 상태로 다른 옵션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8월임에도 가을의 냄새가 나는, 올림픽 공원


올림픽 공원은 예뻤다. 주말에 봤던 그곳은 아니었다. 심지어 영어 혹은 중국어를 사용하며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고 바로 앞의 공원에 나섰던, 여행지에서의 느낌이었다. 지금 이 시간은 특별한 한 주를 시작하는 스케줄에 넣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도 없었지만, 주변은 온통 노래였다.


자주 있던 곳에서 경험한 낯설음이 좋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는 이유 중 하나는, ‘반복되는’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커다란 변화의 상황을 만든다고 한 들, 돌아오면 다시 변할 수 없는 곳으로 복귀하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도 없다.


그래서 매일은 그럴 수 없겠지만, 가끔은 나의 일상을 여행지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사치는 꼭 무엇을 사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 마음을 조금 비틀어보아도 가능한 것이다.


한 가지 더, ‘내가 원하는 대로’가 무엇인지 제대로 정리해 보자는 다짐도 해 본다. 


‘내가 원하는 대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갑자기 생긴 자유의 시간을 당연히 여행으로 채워야만 제대로 계획을 잡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그러하니 나도 그렇게 해야 좋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맞다고 여기는, 특별한 계획을 짤 수 없음에 우울해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내가 그 상황에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맞았나 싶기도 하다. 올림픽 공원에 다녀온 하루를 돌이켜보면, 자전거를 타고 느끼던 바람과 나무 소리, 새 소리, 선크림 없이 받아들였던 햇빛, 눈에 담겼던 장면 하나하나가 다 내가 원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밖의 기준'으로는 우울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잠시나마 다른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내 안의 기준'으로는 전혀 우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의 일상을 여행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와 어울리는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대중적인 위시 리스트의 차선책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그래서 틈틈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체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해본다. 그래야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다가온 여분의 시간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hoto by Ibrahim Rifath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가 있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